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노을이 질 때 / 한경희

노을이 질 때 / 한경희

 

 

잘 익은 홍시 빛으로 먼 하늘이 물든다. 활짝 벌어졌던 튤립이 제 몸을 감싸는 시간, 벗어두었던 외투를 껴입고 집으로 향한다. 내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때이다. 수없이 맞이하는 일몰이지만 매번 예사로 보아 넘겨지지 않는다.

예닐곱 살 무렵의 어느 여름날이었다. 낮잠에서 깨어보니 모든 것이 낯설었다. 가구와 공기의 질감, 바람 냄새까지, 집 안팎엔 아무도 없었다. 밤낮 칭얼대던 앞집 갓난아기의 울음도, 집주인 할머니의 밭은기침, 껑껑 대던 옆집 흰둥이 소리도 일시에 멈춰버린 듯했다. 꿈속인지 아닌지조차 가늠되지 않았다.

밖은 온통 주홍빛이었다. 행인들의 얼굴, 극장과 슈퍼의 간판, 심지어 쓰레기통과 공기 입자 하나하나마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누군가 잘 익은 홍시를 무더기로 하늘에 터트려 놓은 것만 같았다. 태양이 내뿜었던 훈김이 천지를 물들인 걸까. 아침부터 울어대던 어미 잃은 새가 하늘에 붉은 멍이 들도록 쪼아댔다. 나는 처음 보는 광경에 압도당했고, 곧 세상이 끝날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슬프지는 않았다.

무작정 거리를 헤맸다. 마음이 차분해지면서도 알싸하게 일렁였다. 한 세계가 무너지는데 이토록 아름답다니, 어린 나는 전율했다. 그 이율배반적인 감정은 내가 가진 어휘로는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 그때의 감흥이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일몰의 시간을 지배한다.

이십여 년 전, 지금의 친정 아파트로 이사하던 날이었다. 책장을 정리하다 밖을 내다보았다. 하늘엔 유월의 싱싱한 일몰이 낮게 깔리고 이었다. 뒤 숲에선 스멀스멀 어둠이 기어 나와 하루의 파장을 알렸다. 어디선가 관악기 선율이 울렸다. 등산로 입구에서 한 사내가 노을 속에 은닉한 채 트럼펫을 불고 있었다. 농익은 솜씨였다. 미간을 찌푸려 보았지만 나이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그 멜로디엔 쓸쓸함과 벅참, 회한과 설렘, 아쉬움과 소망 같은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 공존해 있었다.

사내는 해마다 초여름부터 초가을까지, 해 질 녘 그곳에서 연주를 했다. 누구도 조용히 하라며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그 멜로디는 듣는 이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보드랍고 착하게 다독였나 보다. 가장의 퇴근길을 달래주고, 종종걸음쳤던 아이 엄마에게 힘을 내어 저녁을 짓게 하는 영양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음대를 나온 자동차 세일즈맨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나는 친정을 떠나면서 그의 연주와도 이별했다. 지금도 노을 속에는 트럼펫 선율이 배어 있는 것만 같다.

얼마 전부터 오후가 되면 아파트 단지에 종소리가 울린다. 묵직하고 나직하면서도 쇠붙이 특유의 청량감이 묻어 있다. 종소리의 배음에는 하루를 위로해 주는 따뜻함이 스며 있다. 가만 듣고 있으면 낮 동안 들떠 있던 마음이 순하게 가라앉는다.

종을 치는 할아버지는 칠십 중반쯤으로 보인다. 아무 말 없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종을 흔든다. 허름하고 작은 트럭의 바랜 푸른색 포장 안에는 몇 판의 두부와 콩나물, 시금치, 파 등속이 가지런하다. 80년대에 오로지 채소나 생필품을 팔러 다녔던 트럭을 보는 듯하다.

지켜보는 내내 하나도 팔리지 않는다. 팔리기는커녕 누구 하나 눈길도 주지 않는다. 우리 아파트 옆에는 대형마트가 있다. 일면식도 없는 노인의 생계가 걱정돼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도 종을 치는 두부 장수를 본 적이 있다. 섬에 사는 친구네에서였다. 아직도 섬 도島 자가 지명 끝에 매달려 있지만, 그때 이미 간척사업으로 육지가 된 곳이었다. 완전하게 매립이 이루어지기 전, 조석으로 바닷물이 들고났다. 친구 어머니가 저녁밥을 안칠 무렵 먼 데서 종소리가 들렸다.

노크도 없이 함지박을 인 아주머니가 문을 열었다. 정강이엔 흠씬 젖은 몸빼 바지가 엉겨 붙어 있었다. 함지박에 매달린 작은 종이 칭얼대며 흔들렸다. 함지박 안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가 가득했다. 친구 어머니는 으레 그랬던 듯 두부 한 모를 양푼에 담았다. 아주머니는 동전 몇 개를 허리춤에 넣고는, 노을에 함뿍 젖어 찰랑거리는 바닷길로 들어섰다.

두부는 꿀맛이었다. 친구와 나는 한참 동안 두부 장수에 대해 얘기했다. 저게 뭔 돈이 된다고 위험을 무릅쓰고 팔러 오는지 모르겠다고, 세상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 두부 장사를 하느냐고…. 그때는 누군가 서 있는 자리가 대부분 원해서가 아니라 떠밀려 온 자리라는 걸 몰랐다. 멋지고 우아하게 살겠다는 다짐을 습관처럼 되뇔 나이였다.

그 무렵 내가 꿈꾸던 미래는 언제나 한 장면으로 요약되었다. 가정 선생님의 말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교사라는 꿈을 이루었지만, 너무 바빠 좋아하는 포도를 먹을 시간이 없다고 했다.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집에 가면 잠들기 바쁘다고. 냉장고에서 포도가 상해간다며 입맛을 다셨다. 내가 그린 삶은 치열한 전문직의 일과를 마치고 느긋하게 포도를 먹는 것이었다.

지금 난 아침부터 저녁까지 포도만 먹을 수도 있다. 둘 다 이루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어느 한 가지마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것도 알게 되었다. 왜 아주머니가 정강이를 적셔가며 두부를 팔았는지, 해지는 등산로에서 외판원이 트럼펫을 불었는지, 트럭 노인이 종을 울리는지, 이제는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다.

어느덧 트럭의 종소리는 해 질 녘 풍경이 된다. 물건을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종을 치기 위해, 초저녁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매일 오는 건지도 모른다는 착각마저 든다. 장사가 되지 않아 걱정되겠다는 내게 노인이 말한다.

"그래도 조금은 팔아요."

부디 저 종소리가 계속되길.

꽃노을이 사그라진다. 내 속의 일렁임도 가라앉는다. 우리 눈은 볼 수 있는 색보다 보지 못하는 색이 더 많다고 한다. 저 노을빛의 원형은 상상 이상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사위어가기 전 마지막에서야 찬란하게 태양이 빛나고 있었음을 알아차리는 서글픈 모순, 저물더라도 아름다울 수 있다고, 아니 저물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알려주는 자연의 미학, 노을.

나는 내가 예순이 되고 팔순이 되어도 노을을 보면서 이 알싸한 출렁임으로 설레었으면 좋겠다. 어린 날 내가 노을 속에서 찾아 헤매던 것은 그 일렁임의 정체였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찾아 헤매고 있는, 먼 훗날 꼭 붙잡고 싶은, 아니 끝내 잡히지 않았으면 하는, 그래서 영원히 내 가슴속에서 반딧불이처럼 반짝이는….

오늘도 나는 내일의 노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