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 고해 성사 / 이양주
저녁이 되니 해도 제 깃들 곳을 찾아가는데, 나는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할까. 마치 삶의 이정표를 잃어버린 듯한 심정에 빠져 먼 이국의 하늘 아래 서 있다. 저녁 어스름과 함께 쓸쓸함이 밀려온다. 가로등에 하나 둘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어둠을 밝혀 나가는 불빛 속엔 저마다의 기도가 스며있다는 생각이 든다.
보랏빛이 감도는 공기 속에 어디선가 음악이 흐르고 있다. 소리에 끌려 걸음을 옮긴다. 음악은 성당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성당 구석구석을 가득 채우고 있다. 소리가 내 속으로 들어와 온몸을 울린다.
접신(接神), 아름다운 접신을 시도하고 있는 거다. 누군가 홀로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천상을 향한 기도를 올리고 있는 거다. 신(神)은 와 있겠지. 이미 오기로 한 장소이니 분명 와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선율이 담긴 기도문을 듣는 기분에 감싸이며 천천히 성당 안을 돈다. 저녁 빛이 스러지며 스테인드글라스에 새겨져 있던 성화(聖畵)를 부드럽게 지워 나가고 있다. 사람들이 밝혔던 촛불들은 이미 꺼졌지만 기도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맴돌고 있는 것 같다. 성물(聖物)들이 다가온다. 나는 미처 알아듣지 못하는데 자꾸 말을 걸고 있는 듯하다. 벽 쪽에 세워진 가구가 눈에 띈다. 오래되어 세월의 손때가 묻어 있다.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문이 있고, 한쪽 면에 창문이 있을 법한 자리에 아주 작은 구멍들이 촘촘하게 뚫려 있다. 밖에서도 안에서도 서로 형체를 볼 수 없다. 소리만 드나들 수 있는 창문이다. 고해소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본다. 작은 의자에 내 몸을 앉힌다. 고백하는 자의 말고 들어주는 자가 공존하는 방. 사방이 막힌 공간이 너무나 좁다. 가슴이 꽉 막힌다. 들어주는 자의 자리가 이렇게 좁고 어두운 줄 몰랐다. 그냥 여유 있게 들어주는 줄 알았다. 인간의 언어를 걸러 하늘로 연결하는 통로는 밝고 넓은 줄 알았다.
지신의 어둠을 털어내려는 자에게 어둠을 걷어내어 주려는 자고 함께 어둠 속에 있어야 한다는 말일까. 고통의 탄식을 쏟아 놓을 때 하나 된 마음으로 아파해야 한다는 뜻인가. 예수가 인간의 고통과 짐을 함께 하며 십자가에 못 박힌 채 기꺼이 내려오지 않듯이, 신의 심부름꾼으로서 고행을 하라는 뜻일까.
고백은 말하는 자만이 주인공인 줄 알았다. 듣는 자의 심중이 어떠한 것인지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고백의 자세를 생각해 본다. 자신의 중압감에서만 벗어나면 된다고 하는 이기적인 고백이라면 멈추어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말하는 자고 듣는 자도 진실하고 간절해야 한다고.
그때도 저녁 이맘때쯤이었다. 석굴암 안으로 들어가는 내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한 해 겨울 경주에서 전국 교사불자회 수련회가 있었다. 나는 강의에 초청을 받았다. 교사들에게 이순신 장군의 시조 ‘한산섬’을 창으로 부르는 방법을 가르쳐 주며 함께 수련에 동참하였다. 석굴암에서 저녁 예불을 모셨는데, 나는 사설시조 ‘팔만대장~’을 부르며 소리 공양을 올리게 되었다.
“팔만대장 부처님께 비나이다. 나와 임을 다시 보게 하옵소서…….”
나는 마음속에 두 가지 의미의 임을 품고 있었다. 단발머리 적 나를 두고 영영 떠나버린 어머니는 이승에서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애달픈 임이시다. 또 하나의 임은 내 속에 있는 나다. 나는 내 안에 이 세상에 처음 왔을 때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참 나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 풍파에 이리 흔들리고 저리 휩쓸리며 잃어버렸지만, 순수하고 지혜로운 자신이 있다고 믿는다. 나는 기도를 할 때면 진아(眞我)를 찾고 싶다는 염원을 한다.
석굴암 대불의 오른쪽 무릎 아래 자리를 잡고, 임을 부르는 곡조를 뽑는데 갑자기 목이 메었다. 내 속에 숨어 있던 온갖 슬픔이 주체할 수 없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면 목 놓아 한없이 울었을 것이다. 석굴암 안엔 함께 하는 많은 선생님들이 있었기에 울 수도 소리를 멈출 수도 없어 끝까지 이어가는데, 알 수 없는 기운이 밀려와 나를 감쌌다. 그 기운은 깊숙이 나의 심연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내 속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원죄라는 단어가 왜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살면서 내가 지은 죄가 있다면 다 사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나 자신도 알게 모르게 세상에 수많은 허물과 죄를 지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나를 괴롭히고 아프게 했던 죄를 수없이 반복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슬퍼하고 방황하며 스스로 어리석었던 죄, 스스로 지은 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연약한 눈물을 뿌리고 아파했던가.
노래를 끝내는 순간 나를 아프게 했던 무거운 나를 온전히 내려놓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석굴암 대불은 아무 말 없었는데 용서와 위로를 전해 받은 느낌이 들었다. 가벼워지고 편안해진 느낌과 함께 평화가 내 안으로 조용히 들어왔다. 나는 나를 떠났다가 다시 내게로 돌아온 것 같았다.
마치 한바탕 꿈을 꾼 듯 여운에서 깨어나 주변을 돌아보니 선생님들이 눈물을 닦고 있었다. 내 몫까지 대신 울어 준 게 아닌지. 나와 선생님들의 슬픔의 근원과 마음속의 기원이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란 생각이 든다. 선생님들이 자가와, 살면서 이런 느낌 처음이라고 고맙다며 내 손을 잡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가 내가 진정으로 해 보았던 고해성사가 아닌가 싶다. 기도란 구함이나 물음보다 참회가 우선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참회야말로 깨달음이한 생각이 든다.
고해소 문을 열고 나온다. 그의 기도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걸까. 파이프 오르간 수백 개의 바람이 통과하며 빚어내는 수백 개의 색깔을 띤 소리가 마치 교향악을 울리듯 성단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가 채워 놓은 신선하고 아름다운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신다.
십자가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온전히 들어주는 자, 신에게 두 손을 모은다. 해가 다 지도록 계속되는 그의 간절한 기도가 부디 하늘에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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