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 이숙희
고향집 마당에는 감나무 세 그루가 있다.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 채 휘어져 있는 감나무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길은 늘 애잔하다.
어머니는 감이 조금씩 붉은빛을 띨 때부터 감 추수를 걱정하신다. 더욱이 바람이 서늘해지면 무서리가 내리기 전에 감을 따야 한다고 조바심을 치며 채근하지만 우리 오 남매는 누구 하나 시원스럽게 그 걱정을 덜어주는 이가 없다. 남동생은 직장 업무에도 일손이 모자라는 형편에 그 먼 길을 달려가 기름값이나 나오겠냐고 이참에 나무를 베어버리자고 한다. 딸들 역시 하나같이 시큰둥하니 어머니의 말씀을 흘려버린다. 아버지와 사별하면서도 담담하던 어머니는 가을만 오면 못내 서운한 기색을 보인다.
감나무는 아버지께서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심은 나무다. 당신의 생이 끝자락에 도달했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병마의 고통이 극심할 때 느닷없이 감나무를 심겠다고 하셨다. 언제 그 감을 따 먹을 수 있겠냐는 어머니의 지청구에도 당신은 못 먹겠지만 훗날 손자들은 따 먹지 않겠느냐고 했다. 당신이 태어나고 생을 마감한 그 집에 뿌리내려 오랫동안 머물고 싶었는지, 아니면 덩그마니 홀로 계실 어머니를 위할 요량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머니의 만류에도 기어이 감나무를 심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스피노자처럼, 아버지는 감나무를 심은 그해 여름에 먼 길을 떠났다. 아버지의 혼이 깃들었는지 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한 세월의 그리움을 먹고 감나무는 튼실하게 뿌리내려 해마다 붉은 감을 주렁주렁 매달았다.
고향집에 들어서니 어머니는 벌써 감을 따고 계셨다. 어머니를 도와 자루가 달린 간짓대를 들긴 했지만, 얼마 따지도 않았는데 목덜미가 당겨오고 팔이 무거워졌다. 정말이지 동생의 말대로 감나무를 베어버리면 좋겠다는 말이 저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어둔하기 그지없는 내 모습이 답답했던지 어머니는 싸리 바구니를 허리춤에 매달더니 냉큼 감나무에 올랐다. 팔순을 바라보는 노인네로 생각하기엔 너무 어이없는 행동이었다. 위험하다며 빨리 내려오라고 재촉해도 들은 척도 않았다. 노인의 용기에 비해 감나무 가지가 너무나 약해 보였다. 어머니가 딛고 선 가지가 흔들릴 때마다 마치 외줄 타는 곡예사를 보듯 오금이 저렸다. 아무리 만류하고 애원해도 소용이 없는 어머니의 의지에 손을 들고 말았다.
나는 그저 어머니의 그 무모한 용기에 애타게 나뭇가지만 올려다볼 뿐이었다. 어머니의 모습은 마치 나무에 내려앉은 한 마리 새 같았다. 닿지 않는 곳의 감 하나라도 더 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어머니가 머지않아 한 마리 새가 되어 우리 곁을 날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콧등이 찡했다.
어머니께서 힘들게 수확한 감을 여러 개의 상자에 나눠 담아 승용차에 실었다. 그제야 어머니의 얼굴이 흐뭇한 미소로 가득해졌다. 차량의 꽁무니를 향해 손을 흔드시는 어머니의 물기 마른 체구는 점점 작아져 백미러 속에서 사라졌다. 고향에 어머니를 홀로 두고 오는 마음은 차에 가득 실린 감 상자보다 더 무거웠다. 이제 어머니는 남은 가을이 다 가도록 앞마당에 나와 까치밥을 바라볼 때마다 자식들의 입에 들어갈 달달한 감 맛을 생각하며 미소 지으시리라. 하지만 제각각 흩어져 사는 자식들은 감 상자가 빌 때까지 홀로 남은 어머니의 모습에 목이 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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