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팀목 / 김영관
딸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다섯 살 둘째 손녀가 친구 집에서 놀다 이층 침대에서 떨어져 머리가 방바닥에 부딪혔다는 말에 119를 부를 사이도 없이 차로 달렸다.
3km 정도 거리인데 천 리나 되는 것처럼 멀었다. 왜 그리 신호등은 많은지, 왜 그리 차들은 많은지, 왜 그리 앞에서 비실대는 지, 거기에다 끼어드는 차하며, 횡단보도 신호마저 도와주기는커녕 방해만 해댔다.
나는 대학병원으로, 딸은 준 종합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의견을 나누다 대학병원은 접수 및 준비 과정이 너무 길다는 딸의 판단에 동의했다.
아이가 CT촬영을 하는 동안, 나는 큰손녀와 함께 대기실 의자에 앉아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때, 환자복을 입은 십 대로 보이는 여자가 다가오는가 싶더니 내 옆에 앉아 있는 손녀의 왼쪽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순간 멍했다.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며 안기고서야 정신이 뻔쩍 들었다.
병원 직원에게 항의를 하다 그가 정신과 환자라는 걸 알았다. 직원의 사과가 끝날 즈음 촬영실에서 먼저 나오던 아내가 훌쩍이는 손녀를 안으며 당신은 뭐 하고 있었냐며 나무랐다. 뒤따라 나오던 딸이 ‘아빠는 애도 하나 못 보느냐며’ 핀잔이었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뭉글거리는 가슴을 삭이기 위해 애먼 티브이에 눈총을 쏘다가 지난여름의 일이 떠올랐다.
연이어 몰아친 태풍으로 ‘신천’이 범람했다. 이른 아침에 누런 황토물이 자전거도로와 산책로를 지나 꽤 넓은 잔디밭까지 뱀의 혀처럼 날름거리며 서서히 삼켰다. 오후에 황토물이 빠지자 산책로가 궁금했다. 둑길을 걸으며 살폈다.
잔디밭은 마치 멧돼지가 먹이를 찾아 훑고 지나간 것처럼 헌데 투성이었다. 줄지어 심어놓은 조경수 밑동 아래는 하나같이 움푹 파여 있고 많은 나무가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다.
나무들을 살펴보니 버팀목이 실한 나무는 발등 아래가 움푹 파여서도 꼿꼿이 서 하늘을 떠받치고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세상 살아가는 데에는 누구나 이런저런 버팀목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의 버팀목은 당연히 가장이리라.
나는 아이 둘을 키우며 아버지의 또 다른 이름은 버팀목이라는 걸 조금씩 깨달았다. 그 버팀목은 가족 앞에선 언제나 어깨를 곧추세우고 늘 목소리에 힘을 주어야 하며, 가끔은 가족 몰래 눈물도 흘러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버지에 대한 어릴 적 추억 한 토막이 떠올랐다. 어느 추운 겨울, 밀기울 수제비를 먹고 잠을 자다 한밤중 배가 아팠다. 빨리 정낭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밖에선 찬바람이 윙윙거리고 특히 골목 안 대나무 숲에서 쓱~ 스르르~ 귀신 울음이 마구 마당을 휘젓고 있었다. 나는 울먹이며 아버지를 불렀다. 코를 골고 있던 아버지는 엉덩이를 받치고 우는 내 얼굴을 보시곤 방문을 열어젖히며 말했다.
“내가 보고 있으니 걱정마라.” 그리고 크게 헛기침을 몇 번 했다. 나는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의 힘으로 신발을 신고 정낭으로 가서 으스스 한 가마때기 정낭 문을 밀치는데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다행히 손녀의 검사 결과는 이상이 없었다. 그제야 나는 웃을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오늘 하루 가족의 버팀목이 된 것에 만족하며 앞으로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자고 다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