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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편지 / 정임표

편지 / 정임표

 

 

편지를 받아 본지가 까마득하다. 편지를 주고받을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된 탓도 있지만 마음을 나눌 상대가 없어진 탓이기도 하다.

가끔 문우님들로부터 수필집을 배달 받는다. 책을 받았으면 읽고 그 소회라도 적어 답을 해야 하는데 그냥 책상머리에 두었다가 손에 잡힐 때마다 대충대충 읽고는 만다. 참으로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편지를 보내는 것은 마음을 보내는 것이다. 책을 주는 것도 마음을 주는 것이다. 나의 내면을 이해할 만하다고 내 속마음을 나눠주는 것이다. 저 사람이라면 통할 것 같은 마음, 공감할 것 같은 마음,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느껴지는 마음들이 있어서 편지를 쓰고 책을 보내는 것이다.

편지를 쓰지 않는 세상이 오고부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지함이 사라졌다. 모두들 핸드폰을 쥐고 빨리 말하고 신속하게 답한다. 도무지 생각할 시간, 마음을 담을 여유가 없다. 얼굴도 모르는 분으로부터 날아오는 청첩장처럼 어떤 때는 통신료만 올리려는 스팸전화도 결려온다.

통신과 인쇄술의 발달은 대량 생산, 대량 소통이라는 공급자 일방의 사회를 만들었다. 소통을 강요하며 돌아오는 마음은 생각지도 않는 채, 오던 지 말던 지는 네 알아서 하라는 모임, 결혼, 부음을 알리는 문자가 하루에도 수십 통씩 뿌려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지금 마음을 담아서 전하는 그릇의 소중함을 자꾸 잃어가고 있다.

가끔 술이라도 한잔, 차라도 한잔하자는 제안을 해오는 분들이 있다. 그런 제안을 받으면 무슨 중요한 의논이 있는가 여겨 진지하게 답변한다. 며칠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헛 인사가 대부분이다. 희롱 당했다는 생각이 들어 쉽게 기억에서 지워지질 않는다.

전하는 말에 진심이 담겨 있지 않으면 그 소리는 공허하다. 마음에 없는 친절, 입술로만 하는 칭찬, 의례적인 댓 글-

편지는 서신(書信)이라고도 한다. 글에는 "진심"이 담긴다는 것이다. 삐뚤삐뚤하더라도 연필에 침을 묻혀 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편지를 쓰고 싶다. 쓰고 나서 읽어보고는 무언가가 부족하여 다시 고쳐 쓰는 그런 편지를 쓰고 싶다. 혹여 우표가 떨어질까 염려되어 몇 번이나 손으로 누르고 또 확인해 보는 그런 편지를 한번 보내보고 싶다.

회사 우편함에는 내 마음은 아랑곳 않고, 네 마음만 전해오는 우편물들로 가득하다. e 메일 함에도 온통 광고뿐이다. 보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며 보내온 것들뿐이다. 보내는 진지함이 없으니 받는 감사함도 없다.

막상 편지를 쓰려고 보니 보낼 곳이 단 한 곳도 생각나질 않는다. 믿음이 담긴 글은 무겁다. 진지함을 담은 편지를 보내면 받는 사람이 도리어 어렵게 여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편지를 쓴다. 내 참 마음을 담아 수신인 없는 편지를 써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