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 / 허복희
어린아이가 새끼 참새를 붙잡았다
아이의 엄마가 그걸 보고 웃고 있었다
참새의 엄마도 그걸 보고 있었다
지붕에서 울음소리 참으려 보고 있었다
-가네코 미스즈, 『참새의 엄마』
우연히 마주친 『참새의 엄마』란 시 한 수가 강아지 ‘하나’를 데려오던 우리 가족들의 무정한 모습 같아 가슴이 아리다. 말 못하는 동물이라고 감정도 없진 않을 터인데 이별 연습도 없이 덥석 데려왔으니 얼마나 놀라고 두려웠을까? 강아지와 한 식구가 된다는 기쁜 마음에 두려움과 공포에 떨었을 강아지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낯선 사람들과 어디로 향하는지, 새끼를 떠나보내는 어미 개의 가슴은 또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을까.
강원도 홍천에서 ‘하나’를 처음 데려오던 날, 너무나 달떠서 강아지를 품에 안고 돌아오는 다섯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손바닥 안에 쏘옥 들어오는 강아지를 서로 안아보겠다고 아우성쳤다. 손이 닿을 때마다 몸을 동그랗게 말던 모습이 귀여워 너도나도 한 번씩 쓰다듬으려 웃음꽃을 피웠다. 졸린 듯 반쯤 감긴 까만 눈동자, 작은 숨소리까지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이라며 ‘하나’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좋아 보이는 비싼 집을 마련해서 예쁜 방석과 장난감, 간식 등을 넣어 주었다. 우리는 만족하며 강아지에게 엄청난 호의라도 베푼 듯 의기양양했다. 그러나 끝내 강아지는 제집에 들어가기를 거부하고 거실 한 귀퉁이에서 웅크리고 잠을 잤다. 용변 보는 일도 눈치를 보며 숨어서 해결했다.
며칠 후 건강검진과 예방접종을 위해 동물 병원을 방문했다. 수의사 선생님이 말랑말랑한 분홍빛 발바닥과 작은 유치를 살펴보고는 한 달 정도 되었겠다고 한다. 겨우 한 달이라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어미젖을 더 먹어야 할 중요한 시기에 주인은 새끼 세 마리를 부양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우리는 낮에 막내 아이와 함께 보낼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어린 강아지를 데려왔다. 너무나 가여운 생각이 들며 하나에게 잔혹한 일을 저질렀음을 알았다.
하나는 집 안에서는 절대 용변을 보지 않고 산책하러 나가야만 볼일을 본다. 보이지 않는 곳이나 베란다에 배변 패드를 깔아놓아도 소용이 없다. 산책할 수 없는 비 오는 날엔 굶기까지 한다. 예민하고 똘똘한 줄로만 알았는데 어릴 때의 공포심을 극복하지 못한 트라우마인지도 모르겠다.
야속하리만치 우리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적응을 못 했다. 하지만 경력 단절이 두려운 나는 일을 놓지 못했다. 도와줄 부모님도 계시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두 살배기 막내를 돌봐줄 아주머니 한 분을 모셨다. 한데 그분은 아이가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자주 집을 비운 모양이다. 한참 지나 말을 하고 전화를 걸 수 있게 된 날, 아이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듣고서야 그간의 일을 짐작게 되었다. 막내 아이는 빈집 공포증이 생겼고,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에 혼자 있지 못했다. 고심한 끝에 강아지를 길러 보기로 했던 것이다. 하나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아빠의 지나친 관심과 기대로 늘 저체중이던 첫째는 체력 단련을 위한 학원에 가지 않고도 강아지와 뛰어놀며 건강하고 밝아졌다. 둘째는 형과 동생 사이에서 관심받지 못한 서운함을 강아지와 뒹굴며 풀어내었다. 셋째도 차차 빈집 공포증이 사라졌다. 엄마 없는 빈자리를 강아지 하나가 모두 채워 주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수혜자는 나 자신이었다. 아이들이 방과 후 게임에 빠져 있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고, 집에 들어오지 못해 놀이터를 배회하고 있을 막내를 생각하며 입이 마르도록 뛰지 않아도 되었다.
사람들은 드센 사내아이들이 셋이나 있는데 개까지 키우느냐고 한다. 그러면 나는 강아지가 우리 아이들을 키웠노라고, 막내를 키운 보모였고 아이들의 다정한 친구이자 힐링 선생님이었노라고 말한다.
어느덧 첫째와 둘째는 성인이 되고, 막내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내가 분주하고 초조한 날이 줄어든 만큼 하나의 발바닥은 두껍고 거칠어졌다. 여기저기 다니며 물고 뜯고 놀아달라고 칭얼대뎐 짓궂은 모습은 사라지고, 다리를 죽 펴고 누워 지내는 시간이 많다. 막내가 들어와도 누워서 꼬리만 몇 번 들었다 내린다. 이제는 다 키웠다는 표정이다. 나이 들며 허약해졌는지 먹성도 많이 줄고 딱딱한 것은 입에 넣었다가도 뱉어낸다. 그간 무심했던 게 마음에 걸린다. 무엇보다도 자식을 키우는 어미로서 부모와 자식 간에 정을 끊어 놓은 것이 마음 아프다. 애완동물도 우리와 같은 감정을 지닌 생명체임을 간과한 것이 참으로 부끄럽고 미안하다.
하나의 나이를 생각하니 어미는 벌써 세상을 떴을 것 같다. 하나가 더 힘들어지기 전에 홍천에 한번 다녀와야겠다. 제 고향을 기억할는지 모르지만 꿈에도 그렸을 어미와의 기억을 떠올리며 마음의 평온을 얻었으면 한다. 나 또한 어미와 새끼를 생이별시킨 잘못을 조금이나마 속죄하고 용서받고 싶다.
코를 골며 곤히 잠들어 있는 하나 곁에 가만히 누워본다. 인기척에 잠이 깨어 물끄러미 바라보다 꼬리를 몇 번 흔들고는 다시 눈을 감는다. 팔베개를 해주려니 몸을 빼고 저만큼 떨어져 눕는다. 이제 만사가 귀찮은 건지 멋쩍은 것인지. 나와의 거리가 그만큼인 것 같아 못내 아쉽다. 내가 어렵고 힘들 때 우리 가족을 위해 선물로 온 하나.
“미안해, 그동안 고마웠어. 사랑해.”
하나의 귀에 대고 속삭여본다. 내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이 귀를 쫑긋거린다. 잠잠한 화해, 이 순간이 온전한 사랑일지 모른다.
다시 『참새의 엄마』를 읽어 본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두 마리의 새와 호기심 가득한 아이와 아이의 엄마가, 선명하도록 아픈 웃음소리가 짙어졌다가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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