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유기견의 원칙 / 최지안
우리 집 맞은편에는 집이 두 채 있다. 왼쪽 집은 울타리가 낮다. 마당엔 배롱나무가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진분홍 꽃을 피운다. 이 집엔 아이들 셋을 둔 부부가 산다. 자주는 아니지만 아이들이 나와서 공놀이를 하거나 배드민턴을 친다. 골목에서 들리는 아이들 소리는 언제나 기분을 좋게 한다. 초등학교 1학년인 막둥이가 징징 우는소리도 좋다. 그 소리를 들으면 아이들이 가득했던 옛날 골목길 생각이 난다.
배롱나무집 여자는 음악선생님이다. 소곤소곤 말하는 그녀와 가끔 마주치면 인사도 하고 한참씩 서서 얘기도 나눈다. 내가 아이들에게 책을 주면 우리에게 과일을 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먹을 것이 오고 가는 사이가 되었다.
오른쪽 집은 옹벽 위에 담장이 있다. 올려다보는 사람에게 위압감을 준다. 보안 카메라가 부착된 회색 벽과 검은색 지붕은 돈을 좀 들인 집이라는 걸 충분히 과시하고도 남는다. 다른 집보다 한 층 더 높다. 밖에선 보이지 않지만 집 정원에서는 골목을 훤하게 볼 수 있다. 그 앞을 지나다 보면 누군가 정원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커다란 오엽송 가지가 웅장하게 골목으로 휘어져 있다. 나무의 기세조차 사람을 주눅 들게 한다.
나무만 그런 것이 아니다. 건장한 체격에 구레나룻이 거뭇한 그 집 남자는 목소리까지 크다. 한번 소리치면 우리 집까지 흔들리는 것 같다. 휴대폰으로 전화하는 소리, 다른 사람과 얘기하는 소리가 집 안에 있어도 잘 들린다.
주차 시비가 있을 때면 남자의 목소리는 더 커진다. 자신의 집 앞에 다른 차가 주차되어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어떤 개새끼가 남의 집 앞에 주차해 놨어?”
나는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그 집 앞에 절대로 주차시키지 말라고 당부하곤 한다. 우리 집 앞은 가끔 용무를 보는 차들이 맘대로 대놓고 가지만 그 집 앞은 남자의 차만 주차되어 있을 뿐 늘 한적하다. 개가 되고 싶지 않아서인지 어느 누구도 그 집 앞에 차를 대지 않는다. 설사 멋모르고 주차를 하더라도 내지르듯 뱉는 남자의 위협적인 목소리를 듣는다면 다시는 그 집 앞에 차를 댈 수 없다.
새벽, 누런 바탕에 하얀 얼룩이 있는 커다란 개를 보았다. 듬성듬성 윤기 없는 털. 움푹 들어간 야윈 허리. 덥수룩한 꼬리를 살짝 흔들며 앞의 두 집 사이 경계로 사라졌다.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개를 보았다. 주로 저녁이나 새벽이었다. 유령처럼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시간에 남의 집 뚫린 울타리로 들어가거나 아직 다 지어지지 않은 옆집에 들어가기도 하였다.
어느 날.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대문으로 들어서니 고약한 냄새가 났다. 잔디에 퍼질러 앉은 똥 한 무더기가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출처를 알 길이 없었다. 어지간해야 치우든지 말든지 하지. 그 덩어리를 처리할 재간이 없었다. 개똥 치우라고 사람을 고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는 수없이 며칠째 그대로 두었더니 냄새도 없어지고 하얗게 굳었다. 나중에서야 그 개의 소행임을 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소심한 방어는 대문을 꼭 닫아거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집만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배롱나무 집에 물었더니 역시나 그 집에도 똥을 누고 갔다는 것이다. 음악 선생님도 문단속을 잘 해야겠다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작은 공감대가 우리를 가깝게 만들었다. 이상하게도 그 말을 들었을 때 개에 대한 분노도 수그러들고 마음도 편해지는 것이었다. 혼자 피해를 보았을 때와 누군가와 같은 피해를 보았을 때 왜 마음이 달라지는 것인지. 하지만 그것은 나 같은 사람의 생각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저녁이었다. 급하게 차 멈추는 소리가 났다. 이윽고 사람들 뛰는 소리가 들렸다. 부엌 창으로 내다보니 낯선 트럭이 와 있고 포획 망을 든 사람과 플래시를 든 사람들이 어수선하였다. 유기견을 잡으러 온 차였다. 저녁 설거지를 하다 말고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담이 높은 집 남자도 있었다.
개는 새로 건축이 한창인 집에 숨어 있었다. 서너 명의 대원들이 입구를 스티로폼 패널로 막고 개를 몰아갔다. 좀 엉성해 보였다. 이층 난간에 개가 보였다. 뛰어내리면 어쩔까 싶어 걱정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층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개는 사람들 틈을 뚫었다. 1층으로 내려온 개는 날 잡아보라는 듯이 스티로폼 패널을 훌쩍 넘어 뒷집으로 달아났다. 순식간이었다.
알고 보니 신고를 했던 사람은 담이 높은 집 남자였던 것이다. 그는 대원들을 다그쳤다.
“아니, 그걸 놓치면 어떻게 합니까? 다 잡은 건데 놓쳤네. 그 개가 얼마나 막대한 피해를 주는데요.”
막대한 피해라니. 과장된 것 같았지만 집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다리가 가려웠다. 구경을 하느라 모기에 물리는 줄도 몰랐다. 귀를 골목 쪽으로 열어 놓고 미처 하지 못한 설거지를 했다. 남자의 다음 말이 궁금했다. 분명 저리 순순히 끝내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귀를 쫑긋 세웠다. 역시 분이 덜 풀렸는지 말끝이 한참 짧은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거칠게 던져졌다.
“그 개새끼가 얼마나 피해를 주는데. 맨 날 우리 집 뒷마당에 와서 똥을 한 바가지씩 싸놓고 간다구.”
남자의 악에 받친 마지막 말이 골목을 흔들었다. 나는 하마터면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배롱나무집 음악선생님도 나처럼 입을 막고 기뻐하고 있을 것 같았다. 그 집에도 개가 똥을 누고 가리란 생각은 못 했다. 우리 집과 배롱나무 집이야 만만하지만 담이 높은 집은 그리 쉬운 집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녀석에게는 개답지 않게 원칙과 소신이라는 것이 있던 모양이었다. 한 군데만 아니고 골고루, 공평하게 똥을 나누어주고 다녔으니 말이다. 비록 고단한 유기견 신세였지만 평등의 원칙을 지키는 개였다. 순간, 제발 잡히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대원들은 급하게 자리를 떴다. '18'을 들먹이던 남자도 들어가자 골목은 조용했다. 어느덧 여름 저녁은 밤으로 바뀌고 가로등에는 날벌레들이 모여들었다. 담이 높은 집. 그 앞에 주차된 남자의 차도 서서히 어둠에 묻히고 있었다. 여름밤인데도 등이 서늘했다. 그 어둠 속 어디에선가 번뜩이는 두 개의 눈동자가 담이 높은 집을 보며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수필세상 > 좋은수필 5'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수필]도둑 고양이 / 정호경 (1) | 2023.10.22 |
---|---|
[좋은수필]모서리를 매만지다 / 송복련 (0) | 2023.10.21 |
[좋은수필]눈물은 낯을 가린다 / 조이섭 (0) | 2023.10.19 |
[좋은수필]정선 장날 / 우명식 (1) | 2023.10.18 |
[좋은수필]마침표는 시작이다 / 정근식 (0) | 2023.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