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고양이 / 정호경
쾌속 여객선 ‘데모크라시호’가 거문도 선착장에 닿자 바로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유촌리로 건너가는 나룻배가 우리 일행을 곧장 담아 싣고 떠났다. 그 해 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산등성이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는 여수 앞바다는 아득히 펼쳐진 초원 그대로다. 사방으로 둘러앉아 있는 섬들이 바람을 막아 파도가 꼼짝을 못하게 머리를 눌러 놓은 때문이다. 호수보다 잔잔했다. 바다는 흰 거품을 내뿜는 파도가 있어야 제맛이지 그렇지 않다면 뱃멀미 약은 무엇 때문에 만들어 놓았겠는가.
매일 내려다보는 바다 풍경도 이젠 해묵은 이발소 그림이 되어 흥미를 잃고 따분하게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데, 서울의 직장 동료였던 남기호 선생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고향이 거문도인 그는 피서 겸 낚시나 하려고 방금 열차에서 내려 여객선 터미널에 와 있으니 생각이 있으면 동행하자는 것이었다.
쾌속여객선이 여수항을 출발하여 두 시간 남짓을 파도를 가르고 달리니 거문도 부두에 와닿았다. 거기서 조그만 나룻배로 거문리에서 유촌리로 건너가는 시간은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뱃머리에 닿으니 이미 전화 연락이 되어 있었던지 60대로 보이는 깡마른 여인이 짐을 받아 머리에 이고 앞서가면서 무슨 말인가 큰소리로 계속 지껄이고 있었는데,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때 거센 해풍이 우리를 한쪽으로 몰아붙이기는 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바람 소리에 겹쳐서 지독한 섬 사투리 때문이었다.
거문도의 여러 섬의 중심지인 거문리와는 바로 이웃인데도 지붕의 얽음새를 비롯한 풍토가 사뭇 달라 보였다. 부두에서 짐을 받아 앞서가면서 계속 떠들어대던 여인은 남선생의 사촌 누나라는 것을 우리가 유숙할 집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남선생의 남동생 집도 근처에 있었지만, 거기에는 식구가 많아 이쪽 누나 집으로 숙소를 정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짐을 풀고 내일 아침 일찍 나갈 낚시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남선생 동생이 집으로 들어오면서, 방금 기상 예보에서 태풍이 올라온다고 하니 지금 곧 저녁을 먹고 어장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부랴부랴 떠난 밤낚시에서의 수확은 그 깜깜하고 높은 파도 속에서도 정말 상상외의 수확이었다. 새색시 손바닥만 한, 붉고 예쁜 참돔을 4,50마리씩이나 낚아 올렸다. 나의 지금까지의 낚시는 붕어낚시여서 바다낚시에 대한 경험이나 기술은 별것 아니었는데, 전문가 어부들이 쓰는 외줄낚시로 팽팽하게 끌어당기는 손맛을 톡톡히 보게 되어 지금까지의 붕어낚시와는 또 다른 맛에 매료되었다.
다음날은 예보대로 아침부터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오후에는 강풍이 불어닥쳤다. 어제 부두에서 산등성이 숙소로 올라오는 도중에 여기저기 눈에 띈 슬레이트 지붕에서 묘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은 어촌이니까 고깃배에서 사용하는 밧줄들을 쓰지 않을 때는 썩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붕에 널어 말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것은 이곳의 기상 사정을 전혀 알지 못하는 데에서 생긴 오판이었다. 오늘 같은 강풍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불어닥치기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한 지붕 단속이라고 한다.
거의 집집마다 굵은 밧줄을 지붕의 가로세로로 얽어맨 줄 끝에는 커다란 돌멩이를 매달아 놓았다. 바로 앞의 여객선이 닿는 거문리에서는 그런 지붕 단속을 해놓은 집은 하나도 볼 수가 없었는데, 불과 1・2킬로 정도의 거리 차이인데도 이곳의 풍토는 많이 달랐다. 제주도의 지붕 얽음새와 비슷하면서 또 달랐다.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섬의 풍토에 마치 이국에 온 듯한 느낌에 호기심이 일었다.
남선생의 자형 된다는 이 집의 주인장은 우리들보다 두세 살 연상으로 보이는, 일본 말을 가끔씩 섞어 쓰는 김씨라는 분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김 씨의 인생행로와 사람됨을 남선생에게서 이미 들어서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한쪽 무릎을 꺾어 세운 채 마루에 걸터앉아 먼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김 씨의 옆모습에서 뭔가 알 수 없는 우수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남 선생이 대뜸 입을 열었다.
“형님, 오늘 같은 강풍에는 어장이 뒤집혀 배를 띄울 수 없으니 형님의 낚시인 생 체험담이나 좀 들어 봅시다.”
김씨는 자세를 고쳐 앉으면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작년 이맘때께 꼭 일 년이 되였네잉.”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면서 구수한 남도 사투리로 말문을 열었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날이 가물면 바닷고기들도 식욕이 떨어지는지 입질을 하지 않았다. 뙤약볕 아래서 종일 공을 들이고 있어도 빈 배로 돌아오는 날이 계속되어 고민하고 있던 차에 이웃집 젊은이가 먼바다로 한번 나가보자는 제안을 해 왔다. 김 씨는 심심하던 차에 대뜸 며칠 분의 식량을 싸들고 초등학교 동창생인 그의 아내에게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처럼 작별 인사까지 하면서 해 질 무렵에 낚싯배의 엔진에 발동을 걸었다.
거문도에서도 두세 시간을 더 남쪽으로 내려온 망망대해 한복판에서 닻을 내렸다. 집에서 망치로 두들겨 손수 만든 갈고리만 한 낚시에 미끼를 꿰어 바다 깊숙이 던져 놓고 이틀 밤을 꼬박 새운 사흘째 되던 날 세 시경에 덜커덕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한쪽으로 휘청했다. 대물을 노리고 채비한 줄과 바늘이긴 했지만, 칠십 노인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이었다. 자고 있는 젊은이에게 고함을 내질렀다.
7월의 그믐밤은 지척을 분간할 수 없었고, 거센 파도만이 물귀신의 치맛자락처럼 펄렁거리며 뱃전을 내리치고 있었다. 한평생을 바다와 싸워 왔지만, 농담 섞인 그의 아내와의 작별 인사가 오늘따라 불길한 예감으로 마음을 흔들면서 팔의 힘을 서서히 빼고 있었다. 밧줄 같은 낚싯줄이 뱃전을 스칠 때마다 우두둑우두둑하는 소리가 가슴팍의 살을 뜯어내는 듯했지만, 낚싯줄을 늦추었다 감았다 하는 익숙한 손놀림은 동이 틀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런 긴장이 세 사간이 지난 아침 여섯 시 경에서야 바다 속의 그 괴물은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건 고래가 아니면 천년 묵은 바다거북이임에 틀림없었다. 죽을힘을 다한 두 사람의 버팀으로 일은 끝났다. 한동안의 침묵이 흐른 뒤 김씨와 젊은이가 혼몽한 의식에서 깨어났을 때는 동녘 하늘이 환하게 틔어 있었다.
“그래 얼마나 큰 놈이었기에 기절까지 했어요?” 하고 남 선생이 슬쩍 비꼬아 물으니까 김 씨 대신 그의 누나가 양팔을 벌리면서 말했다. 2미터 15센티에 105킬로나 되는 ‘돝돔(돼지돔)’이라는 것이 신문에도 났으니 믿어 달라는 표정이었다.
“돌돔이 그렇게 큰 놈이 있어요?” 의아한 표정으로 내가 물었다.
“돌돔이 뭣이여, 귀가 먹었어? 돼지처럼 살찌고 크다고 해서 ‘돌돔’이 아닌 ‘돝돔’이라는 것이여!”
내가 알고 있는 돔의 종류로는 참돔 ·감성돔 ·줄돔 ·황돔 ·혹돔 등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지금 김씨의 안색으로 봐서는 더 이상 따져 물을 수도 없었다.
“그래 그놈을 어떻게 처분했어요?” 하는 남 선생의 물음에 김씨는 허탈한 표정으로 머리를 떨구었다. 이 대물 어획 소식을 들은 김씨의 사촌 처남이 어느 틈에 알고 달려와서 대뜸 20만 원을 내놓고 가져가 버렸다고 한다. 커서 내 목숨을 잃을 뻔했던 대물이긴 했지만, 궁한 판에 20만 원은 적은 돈이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뒤에 들려온 소문이었다. 그 녀석이 서울에서 온 장사꾼에게 100만 원에 팔아넘겼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뒤 얼마 후에 김씨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아내가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운 지 한 달이 지난 뒤 김씨는 거지 행색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더라는 것이다.
사연인즉, 사촌 처남의 그 맹랑한 수작에 분통이 터진 김씨는 소주 병을 한 박스 싸들고 무작정 낚싯배에 올라 엔진에 발동을 걸었다는 것이다. 참을 수 없는 분함과 허탈감이 술에 범벅이 된 채 손에 잡히는 대로 무엇이 됐든 마구 바다로 집어던져 버린 뒤 술에 곤드레가 되어 잠에 빠져버린 몇 시간이 지난 뒤 술에서 깨어 보니 엔진이 꺼진 채 배는 파도에 밀려 정처 없이 흐르고 있더라는 것이다. 나침반을 찾았으나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간신히 엔진을 살려서 가다 보니 도착한 곳은 제주도 어느 조그만 어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하고 남 선생이 눈을 깜박거리면서 물으니까 김씨는 배시시 웃고 있었다. 나는 따라 웃을 수도 없는 이 따분한 분위기를 바꿀 양으로 장독대에서 우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두세 마리의 고양이를 가리키면서,
“집에서 고양이를 많이 기르나 보지요?” 하며 넌지시 물으니까,
“저 들고양이놈들이 다 도둑고양이들이여, 길에서나 집에서나 온통 저놈들 세상이란께. 장독대에 말릴라고 널어놓은 생선들을 저놈들이 다 물고 가버리는 것 안 봤는가? 그래서 여기서는 생선들을 빨래처럼 긴 간짓대 줄에 걸어서 말리지 않는가. 이제 내 눈에는 사람이나 들고양이나 모조리 날강도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 말이여. 내 말 알겄는가?”
김씨의 독기 어린 말에 웃음을 깨물며 비탈진 바윗길 아래 바다를 내려다보니 바다는 강풍에 뒤집혀 누더기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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