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6

[좋은수필]모월모시某月某時 / 맹난자

모월모시某月某時 / 맹난자

 

 

식탁에 앉으면 벽면에 걸린 은회색 테두리를 한 유리 액자와 마주하게 된다.

투명한 화기花器에 담긴 푸른 잎과 봉긋한 남색 붓꽃이 싱그럽다. 일현一玄 선생의 그림이다.

어쩌자고 조그만 나방 한 마리가 그 안에 갇혀 있다.

어느 틈새로 들어갔을까? 꽃의 나라를 탐한 어느 순정 어린 도련님의 월담이었을까. 아니면 초나라 시인 굴원처럼 고독한 국외자로서의 자기 추방이었을까?

검은 날개를 접고 액자 바닥에 추락한 놈은 사막에 갇힌 신세나 다름없어 보인다.

액자의 배접이 꺾인 부분은 마치 긴 구릉의 모래사막과도 같았다.

그는 왜 거기로 숨어든 것일까.

어느 날 또 한 마리가 그곳에 들어왔다​. 둘은 대체 어떤 사이일까?

가장의 유배지를 찾아 나선 암놈이라도 되는 것일까. 곡물에서 나온 듯한 나방은 농군처럼 흰 무명옷으로 바꿔 입고, 두 놈은 액자 바닥에서 서로 몸을 의지한 채 '사람인人' 자 형상을 그리고 있었다. 놀라웠다. 그런 며칠 뒤 몸을 서로 기댄 '인人' 자는 허물어지고 그들의 몸은 개체적 음(--)의 기호에서 '한일一' 자가 되었다.

머리를 맞대고 누운 수평의 긴 한 줄, 둘은 죽어서 하나가 되었다.

나는 상여 없는 흰 상열喪列을 보는 듯 아득했다. 숙연한 가운데 숭고한 아름다움이 저런 것인가 생각되었다. 순간 남편 대신 청나라로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다가 죽은 임경업 장군의 아내가 불쑥 떠올랐다. 감옥에서 자결한 부인의 심경은 어떤 것이었을까 가족의 연대를 생각하게 했다.

​ 모월모시某月某時, 나는 저들을 목격한 1인으로서 그들의 임종을 기록해야 할 어떤 임무 같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얼마 뒤 액자를 해체하고 그들의 시신을 해방시켰다.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그들이 잔해를 털어낸 것이다.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스크린 속에 포개진 남녀의 시신은 에스메랄다와 노트르담의 꼽추 콰지모도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sand'라는 글자가 퍽 인상적이었다. 모월모시, 우리의 존재도 그와 같이 해체되고 말 것이다.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내 눈앞에 다시 그 글자가 지나갔다.

허공에서 쏟아져 내린 글자에는 모래, 바람, 풍화風化, 먼지, 무無 자가 나풀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