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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6

[좋은수필]수레국화꽃 / 김계옥

수레국화꽃 / 김계옥

 

 

가을은 국화의 계절이다. 구절초, 쑥부쟁이, 엉겅퀴, 개미취, 마거리트, 수레국화, 국화과의 꽃들이 핀다. 소슬한 바람을 안고 한 해가 가는 애수 속에 핀다. 국화는 오상고절의 기상이 있으며 하나의 소신이며 신념같이 핀다.

가을 국화는 벌 나비를 위해 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꽃을 피하기 위해 핀다. 국화 한 송이는 꽃다발, 꽃잎 하나가 꽃다발이다. 세상의 모든 국화는 이별을 위해서 핀다.

1983년,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에서 대청댐 공사를 하는 중에 터널을 뚫다가 동굴을 발견했다. 두루봉 동굴이다. 그 동굴 안에서 4만 년 전, 구석기시대에 죽은 7살 남자아이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그 동굴을 발견한 건설 현장 책임자 이름을 붙여서 ‘흥수아이’라고 명명했다.

흥수아이는 석회암 동굴, 조금 높은 언덕, 편편한 돌 위에 누워 있었다. 시신을 곧게 펴놓고 고운 흙을 뿌렸다. 그 위에 여러 가지 꽃을 덮었는데 학자들이 조사해 보니 꽃의 성분이 여석 가지나 나왔다. 그냥 동굴에 내버린 것이 아니라 죽음을 슬퍼하고 명복을 빌며 꽃을 꺾어다가 장례의식을 치른 것이다.

소년 머리 위에는 수레국화 한 다발이 놓여 있었다. 7살 된 흥수아이는 간니(영구치)가 나지도 않았다. 알칼리성, 석회암 동굴에서 뼈와 석회가 썩지 않고 뼈가 되었다. 현재 충북대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왜 수레국화인가. 수레국화 원산지는 유럽 동남부인데 수레바퀴 모양을 닮았다고 수레국화라고 한다. 수레바퀴는 윤회를 연상한다. 4만 년 전, 구석기시대는 힌두교와 불교가 탄생하지 않았다. 원시인들은 그때 ‘윤회’를 알았을까. 오묘한 일이다.

1922년, 10월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에 의해 이집트 왕가의 계곡에서 ‘투탕카멘’ 무덤이 발견되었다. 이집트 18대 왕조, 12대 왕인 투탕카멘은 아버지 아크나톤이 서거하자 9살에 즉위했다. 네프레티티의 딸 이복누이와 12세에 결혼해서 네프레티티는 새어머니이고 장모이다. 투탕카멘은 9년 동안 왕이 되었다가 18세에 의문의 죽음을 당한 비운의 왕이다.

투탕카멘의 무덤을 열었을 때 사방은 번쩍이는 황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바깥 성골함은 금으로 덮여 있었고 알 수 없는 기호로 장식되어 있었다. 왕의 석관을 싸고 있는 4중의 사당(shrine), 성골함 4개의 방에는 4겹의 금박을 입힌 나무상자 안에 붉은 화강암으로 만든 석관이 있었고 그 석관 안에는 세 겹의 관이 들어 있었다.

헤아릴 수 없는 금, 유리, 보석, 상감, 침상, 황금의자, 항아리, 세네트 놀이 기구, 내세에 시중을 들 샵티의 인형들, 모형의 배, 보물들이 방을 채우고 있었다. 특히 가장 앞쪽의 관은 110kg 황금으로 만들어져 있었으며 그 안에는 옷감으로 덮여 있는 두 번째 성골함이 세 번째, 네 번째 성골함을 겹겹이 감싸고 있었는데 그 마지막 관을 열었을 때 황금 마스크를 쓴 투탕카멘 미이라가 나타났다.

왕은 깃털로 된 옷을 입고, 양쪽에 왕홀을 쥐고 두건을 썼다. 이상적인 왕의 초상이었다. 하워드 카터가 투탕카멘의 관을 열었을 때 눈부신 황금 마스크보다 눈길을 끈 것은 투탕카멘의 머리 옆에 놓인 ‘수레국화’ 한 다발이었다.

소년 왕은 수레국화가 피는 계절에 세상을 떠났다. 이 수레국화 꽃다발은 소년 왕의 죽음을 확인한 어린 왕비가 갖다 놓은 헌화일 것이다. 하워드 카터는 투탕카멘 무덤을 들어갔을 때 가장 감동적인 것은 인간의 소박한 심정을 표현하는 관 옆에 놓여있던 ‘수레국화’, 작은 꽃다발 하나였다고 한다.

이 꽃다발은 남편을 갑자기 잃은 어린 왕비가 두 개의 왕국을 대표했던 미소년 왕에게 갖다 놓은 것이 틀림없다. 제왕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수레국화, 주위에 있는 수많은 황금과 보물과 어울리지 않는 수레국화(센토리아)…, 왕비가 할 수 있는, 그 마음을 표현하는, 수레국화 한 다발, 어린 왕비가 남편에게 최후로 바친 사랑의 정표였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고, ‘투탕카멘’ 발굴기에 그 소회를 상세히 적었다. 투탕카멘 옥좌에는 투탕카멘이 편안한 자세로 기대어 쉬고 있고 그의 아내 안케세나맨은 옆에서 어깨에 향유를 발라주고 있는 정다운 모습이 그려져 있다.

나는 이집트에 갔을 때 카이로에 있는 고고학 박물관 이층에 올라갔다. 황금 마스크를 전시하고 있었다. 관광객이 넘쳐나고 밀집해 있어서 숨도 쉴 수 없었다. 5, 6천 년 전의 고대 유물 속에서 나는 ‘황금마스크’를 보았다. 살아 있는 듯한 눈은 석영으로, 눈동자는 흑요석으로, 상감해 있었다.

마스크에는 청옥수와 홍옥수, 터키석, 금박으로 장식을 하였다. 그 세공술의 정교한 아름다운 극치에 홀려 정신이 아득했다. 흑요석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오싹하는 전율을 느꼈다. 3.300년의 긴 잠에서 깨어난 눈동자는 침묵했다. 1층 계단으로 내려오다가 미련이 진진津津해서 삼엄한 경비병을 밀치고 다시 올라갔다. 인파 속을 뚫고 한 번 더 보았다.

 

하늘로 가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깨어나지 않는 파라오의 긴 잠

터키색 빛깔의 나일을 적신다.

흙바람 속에 파묻힌 기나긴 생애

감추어진 빛나는 날개를 털며 일어서야 한다.

부활하는 것은 이곳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