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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6

[좋은수필]홍매화 / 小珍 박기옥

홍매화 / 小珍 박기옥

 

 

운이 좋았다. 코로나로 인해 봄 같지도 않은 봄을 맞고 있는 내게 지리산 화엄사의 홍매화를 볼 기회가 온 것이다. 화엄사는 원래 3색 매화가 유명하다. 일주문 옆 분홍매와 만월당 앞 백매, 그리고 각황전 옆 홍매이다. 날씨마저 좋았다. 구름 한 점 없는 춘삼월에 만개한 3색 매화향이 사찰을 휘감았다. 오늘은 홍매가 내 마음을 두드렸다. 느린 걸음으로 일주문을 지나 만월당을 거쳐 각황전에 이르렀다.

각황전은 현존하는 목조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로 웅장한 외양을 자랑하지만 그 보다는 건물 전체가 단청을 피하고 자연 그대로의 나뭇결을 유지하여 시선이 머문다. 사찰은 대저 검소하어 마음이 가는 경우가 많다. 화엄사가 그렇다. 특히 각황전이 그러하다.

고개를 들어 잠시 편액을 우러른다 각황전(覺皇殿). ‘깨닫는 황제’라는 뜻일 터이다. 임진왜란으로 화엄사 대부분의 전각이 불탔을 때 보수과정에서 왕실이 후원하면서 하사된 편액이다. 숙종이 직접 썼다고 한다.

기척을 느껴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홍매화가 보인다. 400년을 넘긴 매화이다. 매무새가 수수하다. 모진 풍파에 온 몸이 틀어지고 상처 투성이인 중에도 하늘을 향해 반듯하게 서 있다. 꽃도 한창이다. 너무 붉어 검은 빛이 도는 채로 혼신의 힘을 다해 꽃을 피워 올리고 있는 중이다. 하필이면 왜 홍매화일까. 홍매화는 꽃과 열매가 다른 재래종 매화보다 작지만 향기가 강한 것이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불현듯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 씨가 떠오른 것은 편액 탓일까, 매화 탓일까. 영조의 아버지 숙종은 재위 기간 내내 왕비를 통하여 신하들을 다스려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인의 후원으로 국모가 된 인현왕후와 남인의 지지를 받아 중전의 지위까지 오른 장희빈을 저울질하면서 당파 간의 갈등에 균형을 잡았다고 한다.

이 틈에 낀 숙빈 최 씨는 권력 배경이 없는 여인이었다. 어린 나이에 궁에 들어와 무수리로 험한 일을 도맡아 하다가 숙종의 눈에 띄면서 영조가 태어났다.

숙종 사후 살얼음판 같은 경종 시대를 극복하고 자신의 아들 영조가 보위에 오르기까지 최 씨의 삶이 어떠했을까. 보위에 오르고도 재위 기간 내내 정적들로부터 어미가 궁궐에서 물이나 길어 나르는 천한 무수리 출신이었다는 지적에 시달리는 아들을 어찌 보고 있었을까.

나는 최 씨가 숙종에게는 어머니 같은 위안의 존재가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최 씨의 성품 때문이다. 최 씨가 어떤 성품을 지녔는지는 숙종과의 만남에서 밝혀진다.

민비를 폐출하고 장희빈을 중전으로 책봉한 어느 날 밤 숙종은 궁궐 안을 거닐다가 불빛이 새어 나오는 궁녀의 방을 지나게 되었다. 그 안에서는 한 나인이 성찬을 차려놓고 상 아래에서 손을 모은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상히 여긴 임금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까닭을 물었다. 깜짝 놀란 나인이 부복하고 대답했다.

“저는 중전마마의 시녀였는데 내일이 그분의 탄신일입니다. 그분께서 좋아하는 음식을 마련했지만 바칠 길이 없어 소녀의 방에 진설하고 정성이라도 전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숙종은 비로소 폐비 민씨의 생일이 내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궁에서 쫓겨난 지 4년째 되던 해의 일이었다. 희빈 장 씨에 대한 총애와 서인에 대한 반감이 어우러지면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돌이켜보니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 숙종은 옛 주인을 잊지 않고 섬기는 나인의 정성이 가상했다. 최 씨와의 인연이 시작된 날이었다.

최 씨는 숙종에게 안정감을 주는 여인이었다. 아름답지만 가시가 잔뜩 박혀 있는 중전 장 씨와는 확연히 다른 인물이었다. 성정 자체가 부드럽고 온화한 사람이었다. 후일 영조가 된 연잉군에 대한 교육도 철저했다. 연잉군은 겨우 걸음마를 떼었을 때도 숙종에게 나아가면 반드시 무릎을 모아 앉았고, 물러가라는 명 없이는 하루 해가 다 가더라도 자리를 지켰다. 이에 숙빈 최 씨는 연잉군이 오래 꿇어앉느라 발이 굽을까 염려하여 넓은 버선을 만들어서 힘줄과 뼈를 펼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한다. 최 씨는 임금에게나 아들에게나 위안이었던 것이다.

두어 걸음 물러서서 편액과 매화를 연이어 바라본다. 각황전을 건립할 때 숙종은 손수 편액을 하사했다고 한다. 건물 옆에 홍매화 한 그루가 심어진 뜻은 무엇이었을까. 재위 기간 내내 당파싸움에 휘말린 임금과 그를 찾는 백성을 위무하기 위한 숙빈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임금 노릇이나 백성 노릇이나 고단하기는 매한가지였을 터이다. 숙종도 평탄한 삶을 산 임금은 아니었다. 당파싸움의 와중에서도 ‘깨닫는 황제’가 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건만 아들인 경종은 일찍 죽었고, 손자인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혔다.

숙빈 최 씨인들 그 설움을 어찌 견뎠을까. 세월이 흘러 인걸은 간 데 없고 사찰만 덩그러니 남아있는데, 매화가 되어 임금과 길손을 어루만지는 듯하여 한참을 우러러 그곳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