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6

[좋은수필]풍경 / 조정은

풍경 / 조정은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다람쥐가 분주히 달려간다. 쪽빛 하늘과 홍조를 띠기 시작한 숲이 깊은 포옹을 하고 있다. 나무줄기가 수액을 빨아올리는 일을 그치자 잎은 곧 때를 알고 마지막으로 치장을 하는가 보다.

내가 지나쳐 온 가을을 되짚어 본다. 알밤이 떨어지는 밤나무 숲을 가시에 찔리면서 뛰어다니던 유년 시절, 가을걷이에 여념이 없으시던 노부모님을 안타깝게 지켜보며 농사를 지어 볼까 꿈꾸던 일, 뜻하지 않게 서울로 올라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단풍 든 산을 찾아 휴일마다 떠나던 이십 대, 아이를 등에 업고 단풍잎을 주워 책갈피에 끼우던 신혼, 그리고 지난 몇 년은 휴일조차 없이 생업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이렇게 한가롭게 산사로 오르는 길을 걸어 본 지가 얼마 만인가. 하늘도, 하얀 구름도, 산새들도, 저 햇살 속의 단풍도, 옛이야기처럼 아름답지만 이곳에서조차 나는 이방인이다. 덧없는 생각을 여기까지 끌고 와서 방황하고 있는 자신이 누추하다. 경내에 들어서니 아미타 부처님을 모신 미타전에 기와 불사가 한창이다. 기와가 너무 오래되어 잡초가 무성하고 비가 샌다고 비닐 포장으로 지붕을 덮어둔 지가 거의 2년은 넘었다. 이제야 겨우 불사금이 마련되어 낡은 기와를 걷어내고 새것으로 얹으려는 것이다. 예닐곱 명의 인부들이 기와를 뜯어 한곳으로 나르고, 처마에 알루미늄 관을 나란히 두 줄로 세워 놓고 그 관을 통로로 하여 기와를 한 장씩 내려보내면 밑에서 받아 수레에 실어 나른다. 그들의 몸짓이 어찌나 진중하고 유연한지 일을 한다기보다 경건한 의식을 거행하는 성직자들 같다. 전국의 사찰을 두루 다니면서 불사만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바로 그 아래 미타전에는 많은 신도들이 모여 재를 올리고 있다. 향내가 바람결에 스치고 독경 소리가 낭랑하다. 마침 음력 9월 9일 중양절이다. 삼월 삼짓날 왔던 제비가 강남으로 간다는 날이고 양수가 겹쳐 좋은 날이라고 한다. 맑은 가을 햇살에 지옥문도 활짝 열리는 걸까? 합동 천도재를 올리는 중이다. 잠시 그들이 부러웠다. 절기를 놓치지 않고 산사를 찾아 조상께 예를 다하는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참배도 않고, 하릴없이 빨간 단풍이 떠다니는 연못가에 앉아 지붕 위에서 기왓장을 내리는 인부들의 모습과, 아래 법당에서 재를 올리는 신도들의 모습을 번갈아 지켜본다. 인부들 중에는 여인이 한 명 끼어 있다. 짙은 검은색의 긴 머릿결이 햇빛에 반사되어 고와 보인다. 낯빛이 희고 이목구비가 선명하며 큰 키에 비해 호리호리한 몸매다. 그런 모습으로 무거운 기왓장을 다섯 장씩 익숙하게 들어 나른다. 남자들도 간간이 허리를 펴고 쉬거나, 나르는 기왓장의 숫자가 석 장이었다가 넉 장이었다가 불규칙한데 그녀의 몸짓은 한결같기만 하다. 여인에게 자꾸 시선이 가는 것은 내 마음의 저항인지 모른다. 한가할 틈 없이 달려온 숨 가쁜 시간, 모처럼의 한유도 즐기지 못하는 여유 없는 마음, 그리고 아무데서나 그저 주저앉아 버리고만 싶은 가당찮은 게으름, 그런 것들이 뒤엉켜 스산해지고 마는 마음을 저 노동에 열심인 여인에게 붙들어 매듯 유심히 바라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새참 시간인지 인부들이 사다리를 타고 내려온다. 독경 소리도 멎었다. 그런데 지붕 위의 여인은 오히려 휘적휘적 용마루로 올라간다. 잠시 허리를 펴고 하늘을 우러러보다가 목을 좌우로 돌린다. 그리고는 등을 보이며 산마루를 향해 오도카니 앉는다. 푸른 하늘가에 흙더미만 남아서 뭉툭해진 용마루가 작은 언덕처럼 보인다. 여인의 길고 검은 머리카락과 하얀 셔츠 자락이 가볍게 바람에 날린다. 법당을 나서는 신도들의 부산한 발걸음과 사뭇 대조를 이루는 참으로 한가한 모습이다. 그녀는 지붕 아래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들, 독경소리와 향내, 혹은 법당을 나서는 여인들의 신발 끄는 소리라던가, 상을 차리는 공양주의 분주한 손길, 그런 것들을 알고 있을까? 세사에는 관심이 없는 듯 홀로 하늘가에 앉았다. 그녀가 고독해 보인다. 술이라도 한 잔, 담배라도 한 대, 권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런데 저건 무엇일까? 갑자기 푸른 하늘이 하얀 소맷자락을 드러내어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는 것처럼 보인다. 순간 눈을 의심했다. 눈을 비비고 질끈 감았다가 떴다. 분명히 물안개처럼 혹은 낮은 구름처럼 하얀 무엇이 그녀의 어깨를 살며시 감싸며 넘실대고 있다. 나는 벤치에서 일어서서 그녀의 등 뒤를 유심히 살폈다. 아니 이럴 수가? 그것은 담배 연기였다. 그녀는 새참 대신 미타전 용마루에 걸터앉아 담배 한 대를 피워 문 것이다. 일주문만 들어서도 음주나 흡연이 금지되는 신성한 경내다. 더구나 고려 시대의 고불인 아미타 불상이 모셔진 미타전의 지붕 위에서 태연히 가을 풍경을 내려다보며 담배를 피우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비약적인 이야기 하나가 머리에 섬광처럼 스쳤다. 일본에 왕자 출신의 한 선사가 있었다. 그는 마련된 왕좌를 내치고 출가를 하여 갖은 고행과 정진 끝에 대오각성하였다고 한다. 깨달음을 얻은 스님의 행적은 일반인의 눈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기행으로 일관되었다. 그중에서도 어느 해 나라 안의 제일 큰 사찰에서 새로운 금불상을 조성하였는데 모두가 뜻을 같이하여 스님께 점안을 청하였다고 한다. 스님은 사양치 않고 점안식에 참석하였다. 점안식에 참석하러 모여든 수많은 불자들을 쓰윽 한 번 훑어보더니 단상으로 걸어 나갔다. 모두들 스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숨을 죽이며 바라보았다. 스님은 잠시 눈을 감고 대중을 향해 섰다가는 천천히 가사를 벗기 시작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완전한 나신이 되었다. 누구 하나 그를 저지할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이를 지켜보던 대중은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스님은 점안을 위해 마련된 연화대로 힘차게 올라갔다. 대중들은 경악 속에서도 어떤 이적을 기대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스님은 새로 조성되어 아직 눈을 뜨지 않으신 금불상의 정수리에 오줌을 갈겨버렸다던가.

왜? 그 스님의 이야기가 번개처럼 떠오른 것인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 여인은 담배를 태우고 있고 가을 숲은 달관한 노승의 눈빛처럼 초연히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도 이 가을 햇살에 익어가는 것일까? 그곳에 오래전부터 있었던 듯 그녀의 존재가 둘레의 풍경과 하나를 이룬다. 하기야 이 맑은 바람과 볕에 익어가는 것이 어디 도토리와 알곡뿐이겠는가.

나는 하릴없이 연못가를 서성이다가 산길을 되짚어 내려온다. 아침에 절로 향하던 마음이 그리도 황망하더니 절로 오르는 산길이 그리도 아득하더니, 어느새 나는 가을 햇살을 외투처럼 온몸에 걸치고 있다. 몸도 마음도 따뜻하다. 바스락 소리 내며 숲을 나서던 다람쥐가 쫑긋 귀를 세우며 나를 바라본다.

가을은 참으로 아름다운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