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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6

[좋은수필]바람 스치는 소리 / 김선화

바람 스치는 소리 / 김선화

 

 

 

체험이다. 가슴 속 대청마루에 새로운 바람 지나게 할 공간은 인생 도처에 널려있다. 난 지금 호남선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서대전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거기서 조금 떨어진 유성의 한 세미나장에서 우리가 수필을 왜 쓰는지 따져보는 시간이 있다고 한 까닭이다.

차표를 미리 끊어놓을 새도 없이 분주한 일정을 대충 갈무리하고, 토요일 오후 기우는 시각에 불같이 일어섰다. 이건 순전히 ‘불현듯’이란 기운 탓이었다. 앓아누웠다가도 내 안에서 솟구치는 어떤 소리를 만날 때는 지체 없이 움직여야 하는 게 상책인데, 그것은 거의 직관에서 오는 기운이다. 이 기운이 도진 이상 이것저것 재봐야 뾰족한 수가 없다. 그럴 바엔 솔직한 내면의 소리에 따르는 방법이 그간의 경험으로 불 때 가장 현명하다.

더듬더듬 자동 예매 창구에서 표를 구하고 열차 칸과 칸 사이에 몸을 의탁했다. 철거덕거리는 쇠 이은선 위에 곱게 차려입은 내가 앉아있다. 길을 나서긴 잘한 것 같은데 아무리 돌아봐도 지금 처한 자리와 의상이 어울리질 않는다. 청바지에 무색 상의를 입고 아무 데나 철퍼덕 앉을 준비를 했어야 옳았다. 셔츠에 조끼를 입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따른다.

여느 때 같으면 상상도 못해봤을 일이다. 언제인가처럼 선한 눈빛의 승무원이 내 높은 힐을 대우하여, 빈자리가 나면 잠깐씩이라도 앉아가라고 따스한 눈빛을 얹어 권유할 줄 알았다. 아니, 그러기 전에 승무원을 만나면 내가 먼저 특석이라도 구해볼 요량이었다. 그러나 승무원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것은 자유석인데도 지정호 차가 있다는 점이다. 그것을 잘 지키려고 나는 열차 세 칸을 오갔다. 그러다가 연세 지긋한 아주머니 서넛이 객차와 객차 사이에 신문을 깔고 앉아 있는 옆을 지나게 되었다. 편해 보였다. 앞으로 한 시간 반을 고스란히 서서 갈 자신이 없었다. 이젠 내가 처할 자리를 아는 게 급선무다. 그들 틈에 끼자니 내 차림새로 따돌림 당할 게 뻔하다. 굳이 말을 섞고 갈 일도 아니지만, 얼굴을 마주 보고 무릎을 맞댈 터인데 어찌 꿀 먹은 벙어리처럼 굴겠는가.

하여 지정호 차를 뒤로하고 한 칸을 더 건너갔다. 대학생인 듯 보이는 두 청년이 같은 방향을 보고 앉아 있다. 한 청년은 출입 계단에서, 다른 청년은 짐을 얹어두는 용도인 듯한 알루미늄 층에 각각 가방을 깔고 앉아 여유롭다. 그쯤에 멈춰 선 채 객차 안을 보니 뒤쪽 구석진 자리까지 아이들이 들어차 있다. 이젠 다른 방도가 없다.

누구 곁에 앉느냐가 관건이다. 다리가 편하기로는 출입 계단에 걸터앉는 것이 나을 것 같고, 등이 편하려면 나도 귀퉁이를 택하는 것이 수월할 판이다.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간격이었다. 내가 어디에 앉아야 상대방이 덜 불편할지를 재는 것이다. 허벅지와 허벅지의 외벽(外壁)이 다소 가까운 곳에 나란히 앉는 것보다는, 약간의 간격을 두고 내가 차라리 다리를 접고 앉는 게 나을 성싶어 마음을 굳힌다.

이날따라 핸드백 안엔 널따란 보자기 한 개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나도 남들처럼 신문을 구해야 했다. 마침 알루미늄 층의 청년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꼭 내 작은아들 또래이다. 나도 좀 앉으려 한다니까 청년은 미소를 지으며 들고 있던 신문을 얼른 내민다. 그것으로 되었다. 양탄자라도 얻은 듯 흡족했다. 귀퉁이에 얌전히 신문을 깔고 7센티미터 놀이의 힐을 벗었다.

창밖으로 스치는 나무들과 하늘의 솜구름을 만난다. 가끔 열차가 쉬고, 또각또각 긴 다리가 지나간다. 더러 자리가 비는 모양이지만 나는 아예 이곳에 자리를 굳혔다. 자리가 낫다고 냉큼 들어가 앉는 것도 여간한 용기로는 어려운 일이다. 진작 승무원을 만났더라면 자리를 구할 수 있는지 점잖게 물었겠지만, 차가 두 번이나 쉬어 가는데도 유니폼 갖춰 입은 사람은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한번만 더 서면 서대전이다.

자리가 불편하다는 말은 아니다. 레일에 닿아 덜덜거리는 금속음이 때론 거칠어, 조금은 안정된 곳에 앉아 감상에 젖어보고 싶은 작은 욕망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여행하는 맛도 비교적 괜찮았다. 오히려 내면에서는 현재의 상황을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 다만 의상 때문에 남들 눈에 쉽게 띄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통로엔 청년들 둘 외엔 나뿐이라는 거다. 수다스런 아주머니들도, 껌을 짝짝 씹거나 거울을 자주 보는 아가씨들도, 은밀한 눈길을 주고받는 남녀 커플도 없다는 점이다. 서로가 방해받지 않는 선에서 신문을 읽거나, 창 너머 풍경을 바라보거나, 눈을 감고 사념에 잠기면 그만이다. 그래도 발목까지 닿는 폭 넓은 치마를 입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오감에다 오장육부까지 흔들흔들 깨어나 요동치는 열차 안에서 마흔아홉 된 여자 한 병, 9월 하순 3시 35분에서 5시 1분 사이를 그렇게 건넌다.

목적지를 3분 남겨놓은 시각에 그가 왔다. 훤칠하니 외모 깔끔한 남자 승무원이 내 앞에 서서 예의 바르게 경례를 한다. 나는 야속함을 감추고 물끄러미 그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다음 역 안내방송 소리가 들린다.

흔적을 지우며 일어서는데 접었던 오금이 아프다. 또 내재된 울림통에 바람이 스치는 소리가 나는 게다. 시도 때도 없는 안팎의 교감. 잠재된 의식의 층이 깨어나는 소리. 이처럼 여여(如如)한 것들이 나로 하여금 수필의 뜰에서 거닐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