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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6

[좋은수필]짝퉁얼굴 / 박동조

짝퉁얼굴 / 박동조

 

 

나이가 들면 좋은 게 있다. 외모로부터 자유롭다. 나이가 들고 나서 깨달은 건 외모는 인생의 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혼기가 닥친 처녀총각에게 이 말을 들려주면 바야흐로 외모가 실력인 시대라는 걸 모르는 소리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젊은 날에는 못난이 인형을 앞에 두고 내 모습이 이럴까 연상하며 고민했었다.

내 나이 네다섯 살 무렵, 우리 집에는 시집가기 전인 고모가 둘 있었다. 고모들은 걸핏하면 나더러“코로 숨 쉬어 봐라!”하곤 했다. 나는 어찌해야 코로 숨을 쉬는지, 또 숨이 무언지 알지 못했다.“입을 다물어봐라”해서 시키는 대로 하면“아이고, 그것도 콧구멍이라고 숨을 쉬네."라며 깔깔댔다.

고모들이 시집을 가고 나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제사나 명절 때 친정에 온 고모들은 “우리 동조 못 생겨가 어따 치워 먹노”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럴 때 나를 감싸주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동조가 와 못생겼노! 얼굴도 뽀얗고 그만하면 됐재” 하셨다. 근동에서 알아주는 미인인 고모들이 못생긴 내 얼굴을 심심 파적 삼아도 나는 기가 펄펄한 말괄량이였다.

오빠는 내게 참 잘해 주었다. 그런 오빠도 내 외모를 앉아서 노는 공기나 아니면 운동장에서 발로 뻥뻥 차는 공쯤으로 알았다.“코는 자전거 앉을 판, 눈은 와이셔츠 단춧구멍, 입은 하마 입" 하고 놀렸다. 놀려먹는 오빠도 재미있어 했지만 놀림을 받는 나 또한 깔깔거리며 오락쯤으로 눙쳤다.

사춘기가 되고부터 어찌된 셈인지 오빠의 놀림이 한쪽 귀로 흘려지지가 않았다. 언제 뿌려졌는지도 모르게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싹을 틔워 가슴 한쪽에서 무성히 자라나고 있었다. 오빠는 농담으로 하는 자신의 말이 동생의 열등감에 비료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곁으로 오셔서 눈앞으로 손을 올렸다 내렸다 할 때가 있었다. 눈이 작아 떴는지 감았는지 짐작을 할 수 없어 혹시 잠든 거 아닌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럴 때는 서글픔이 스멀스멀 괴어올라 졸음이 확 달아나곤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사춘기의 열등감을 왈가닥처럼, 왈패처럼, 사내처럼 행동하는 것으로 극복했던 거 같다. 스무 살이 넘어서도 얼굴에 로션 하나 바르지 않았으며 복색은 남자처럼 하고 다녔다. 결혼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힌 뒤로 내게 외모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동료 여직원들이 성형수술을 하면서 나보고도 코를 높여라, 쌍꺼풀을 해라 바람을 넣었지만 타고난 얼굴을 굳건히 고집했다.

그러다 연애를 하게 되었다. 연애 감정이라는 게 희한했다. 왈패 같은 내가 거울을 보고 외모를 살피게 바꿔놓았다. 아무리 거울을 들여다봐도 못난 얼굴이 예뻐질 리는 만무했다. 그 무렵부터 내 얼굴은 화장품을 알았다.

하루는 그가 나를 보자마자 싱글벙글했다.“있잖아, 지나가는 자기 또래 여자들을 못난 여자와 예쁜 여자로 나눠봤거든. 열한 명 중에서 자기보다 못난 여자가 한 명 더 많더라.”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다리에 힘이 쑥 빠지면서 가슴으로 쏴하고 바람이 지나갔다. 내 외모를 두고 고모들이 놀림가마리를 삼아도, 오빠가 공깃돌처럼 심심풀이 삼아 갖고 놀아도 가슴에 이는 열등감쯤 아무렇지 않게 눙쳤던 꿋꿋한 내가 그의 말 한마디에 감정이 요동쳤다. 내가 얼마나 못생겼으면 그런 궁여지책으로 위로를 삼으려고 했을까 하는 생각에 연애고 뭐고 다 그만두고 싶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남편이 외모가 밥 먹여 준다고 생각할 만큼 생김새를 으뜸으로 치는 시부모님 밑에서 성장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 남편이 왜 나를 아내로 선택했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 사람 역시 외모지상주의라는 가랑비에 젖을 대로 젖어 있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훗날 나름 현실적인 계산속이 있었다는 걸 알았다. 내 모습이 온순해 보여서 자신의 급한 성정을 잘 맞춰줄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탁월한 선택을 했다는 말이 진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는 동안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는 자취를 감췄다.

내 눈은 지금 쌍 겹이 져 있다. 마흔 들어 수술로 얻은 쌍꺼풀이다. 사족을 달자면 예뻐지려고 만든 것이 아니고 속눈썹이 눈을 찔러 어마지두에 수술을 했다. 퉁퉁 부은 눈을 하고 누워있는 내게 아들이,

“어머니,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 됩니까?” 하면서 입이 툭 튀어나왔다. 눈썹이 찔러서 한 수술이라고 해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순수한 아이 눈에는 성형수술을 한 어미가 부끄러웠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처녀는 유명 대학을 나왔다. 취직을 하려고 몇 번씩이나 도전했지만 매번 최종 면접시험에서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이유를 짐작하는 엄마가 성형 수술을 하라고 권해봤지만 처녀는 자신의 얼굴을 고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자신의 능력을 알아보는 회사가 언젠가는 나타날 거라면서 이력서를 쓰고 또 쓴단다. 처녀의 엄마는 그런 딸을 보면서 죄인 같은 심정이 된다고 하소연했다.

젊은 사람들은 공공연히 외모가 능력이라는 말을 한다. 말이 되지 않는 소리지만 이미 말로써 자리를 잡았다. 성형은 이 시대의 거대한 봇물 같은 사조가 된 지 오래다. 방송에서 자신이 어느 부분에 성형을 했노라 당당하게 밝히는 남자 연예인을 보면 놀랍기만 하다.

그렇지만 성형을 한 미인이 내 눈에는 여전히 줄그은 호박으로 보인다. 핸드백이나 구두에만 짝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얼굴도 짝퉁이 있다. 드라마를 보면 비슷한 얼굴이 사람을 헷갈리게 한다. 한 공장에서 찍어낸 모습 같다. 잘못하면 사람의 생김새를 두고 진품명품을 가리게 생겼다. 내 눈도 쌍꺼풀을 했으니 진품으로 뽑히기는 영 글렀다. 그래도 잘 늙어 예쁜 할머니 소리는 듣고 싶다. 그날을 위하여 방긋 웃어본다. 웃음은 짝퉁이 아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