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하지 않게 / 김종완
조계사 만발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다닌 지 근 일 년쯤 되어간다. 세상사 가장 중요한 문제가 먹는 것일진대, 부처님의 가피를 새록새록 실감한다. 자원봉사자들로 운영되는 식당인지라 가격(이천 원)에 비해 질이 매우 우수하다. 좋은 쌀로 밥을 짓고 신선한 야채로 바로 요리를 하는데 인공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맵고 짜지 않아 자극적이지 않고 된장은 직접 담근 것이라 옛날 맛 그대로다. 욕심 같아서는 매일 이용하고 싶은데 사실은 그럴 수가 없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손님들이 있어 주변 식당에서 매식한다. 식당 음식이라는 게 아무리 식당을 바꾸고 메뉴를 바꿔보아도 곧 질리고 말아 차라리 단사표음(簞食瓢飮)하고 싶을 때도 있다. 인공감미료 탓일 게다. 그런데 조계사 만발식당은 질 좋은 쌀밥에 최소 대여섯 가지 반찬에 국까지 있으니 내 처지엔 딱이다. 밥을 먹고 나오면 그만큼 신선해진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생대구탕으로 유명한 부산식당 앞을 지나노라면 거리에까지 풍겨 나오는 생선 비린내가 역겨워 코를 싸매고 싶을 지경이다. 조금은 거만하게 그쪽을 꼬나보며, 그렇게도 살생을 하고 싶냐? 하고 속엣말을 할 때도 있다. 참으로 간사한 것이 사람 맘이다.
나의 이 행복한 식사를 번거롭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11월 14일, 민주노총 주최 민중총궐기 집회 다음에 격렬한 시위가 일어났고, 16일 밤 수배 중인 민주노총위원장 한상균 씨가 조계사로 피신을 해왔다. 갑자기 나의 식사 길이 험악해졌다. 경찰이 조계사의 모든 출입구를 감시하기 시작했고, 출입하는 사람들을 모두 녹화하기 시작했다. 녹화를 뜬다는 걸 알게 되자 죄지은 것 없이 공연히 켕겼다. 경찰은 녹화한 필름들을 일일이 검토할 것이고, 그러면 날마다 일정 시각에 나타나는 이놈은 누구냐? 하고 주목하게 될 것이고, 그래서 은밀히 동선을 파악해 보니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님께 절 한번 안 하고, 시주 한번 하는 일 없이 밥만 먹고 나오는 놈팽이라는 걸 들키고 말면, 여간 창피한 일이 아니다. 한 이틀은 조계사 안의 동태가 하도 궁금해서 일부러 들어가 보았다. 찾아오는 신도 수만 눈에 띄게 줄고 대신 기자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몇몇 보일 뿐 특이 사항이 없어 싱겁기까지 했다. 이후 정문 출입을 않고 골목으로 돌아서 만발식당으로 향했다. 골목에도 사복 경찰이 깔렸다. 그러면서 안 것이 하나 있다. 대한민국 경찰들이 여간 미남이 아니었다. 입고 있는 사복도 여간 멋지지 않고, 내가 늙어서 그런지 모두가 건강미 넘치는 청년들로만 보였다.
정문 앞엔, 어서 한상균을 잡아들이라는 푯말을 든 시위자들이, 도열해 있는 전경들보다 더 당당하게 서 있었다. 악해 보이지 않는 여성분이 험한 문구가 새겨진 푯말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아팠다. 신도회의 이름으로, 경찰이 어서 경내로 진입해서 범법자 한상균을 잡으라는 플래카드에서 저게 한국 종교의 위상이로구나 하며 세속화된 교회(사찰)을 본다. 신도들 스스로 소도(蘇塗)로서의 종교적 기능을 부정하는 것이다. 몇 번인가 전경들에 의해서 조계사가 겹겹이 둘러싸였다. 경내로의 경찰 진입이 초읽기라고 했다. 그러나 진압이 단행되지는 않았다.
민주노총은 2차 민중총궐기 집회를 12월 5일 평화적으로 열겠다고 했다. 경찰이 불허했으나 법원이 집회금지처분 효력정지를 받아들여 집회는 열리게 되었다. 12월 3일인가, 4일인가. 그날도 주간 선생과 함께 조계사로 밥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조 주간은 늘 그렇듯 인파가 넘쳐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길에서도 계속 뭐라고 떠들었다. 자기 딸의 회사 사장이 여간 치사한 게 아닌가 보다고 하더니, 어제는 직원들 회식시켜 준다면서 어느 식당으로 데려가더니 5천 원이던 밥값이 파격적(7천 원)으로 올라 안 되겠다면서 돌아 나왔고, 한 직원이 사장님, 저희는 항상 점심을 7천 원짜리 먹는데요! 했다든가 어쨌다는 얘긴데 나는 거기까진 건성으로 듣는 둥 마는 등했다. 그런데 약간 톤을 높인 그녀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제가 말했지요. 야, 그래도 너희 사장은 우리 사장의 따따불이다. 우리 사장은 허구한 날 이천 원짜리 밥이다, 했더니요, 온 가족이 합창을 하더라구요. 와, 진짜 악덕기업주네!”
그녀는 진짜 농담인 양 깔깔댔지만 농담이 농담이 아니다. 뼈가 시리게 아프다.
“맞네. 정말 미안해. 쩨쩨한 사장 오늘 한턱 쏜다. 부산식당에서 우리도 회식이다.”
조계사 앞 건널목에서 돌연 발길을 돌렸다. 그녀가 조계사 밥을 즐기지 않는다면 나의 일방적 태도에 치욕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죽도록 일 시키고 겨우 이천 원짜리 점심이냐?
역시나 부산식당의 실내는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1차 손님이 나가고 길에서 대기하던 2차 손님들이 새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중이었다. 이곳엔 테이블 다섯 개인 작은 홀과 뒤집은 ㄴ자 모양의 방이 있다. 세로 쪽 비좁은 방으로 들어갔다. 여기엔 상 다섯 개가 죽 잇대어 놓였고 세 번째 상 옆의 옴팍하게 들어간 공간에 2인용 작은 상이 가로 붙여졌다. 우리는 손님이 막 일어나는 그 2인용 상 앞에 앉았다. 종업원은 바빠서 우리 앞의 상을 치울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ㄴ자 꼭대기 쪽 상 두 개가 비었고, 그러자 종업원이 후다닥 달려와 치우더니만 이어 삼사십 대 훤칠한 사내 둘이 들어오고 주인아주머니가 부리나케 뒤따랐다. 상이 다 치워지기도 전에 주문을 받는 주인의 호들갑에서 상황이 파악되었다. 그중 한 명은 종로경찰서 직원이고 한 명은 강남의 어느 경찰 소속인데 서장님을 수행해서 종로경찰서를 방문했다가 점심시간이 되어 식당 사정을 살피고 미리 자리를 잡기 위해 선발대로 온 거였다. 자리가 잡히자 강남 사나이가 밖으로 나가더니, 한참 후 여섯 명의 사내를 몰고 왔다. 물론 모두가 사복 차림이었다. 언뜻언뜻 들려오는 그들의 대화로 파악하건대, 그중 나이가 좀 든 사람이 종로경찰서를 방문한 강남의 어느 경찰서장으로 이 자리의 주빈이고, 그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는 이가 이 자리를 마련한 사람으로 서장의 경찰대학 후배인 종로경찰서 간부였다. 그들은 검경의 기소권 갈등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두 사람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분위기였지만 대화를 경청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는 주인에게 볼멘소리를 하고서야 겨우 상이 치워지고 주문을 할 수 있었다. ㄴ자의 꼭대기 두 상은 경찰이 앉고 그 앞 가운데 상, 그러니까 우리 바로 옆의 상이 비자 고부 간인 듯한 여인 둘이 어린 사내아이를 데리고 들어와 앉았다. 경찰의 상엔 생대구탕이 가스불 위에서 끓고 있고, 양 경찰서의 직원들은 생두부 등으로 입가심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새삼스럽게 다시 느낀 건데 왜 이리 대한민국 경찰들은 잘생겼나! 서장이라면 솔찮은 나이일 텐데 싱싱하게 젊고 활기차 보였고, 그 후배의 자신만만한 태도는 서장 진급이 시간문제인 것 같았고, 얌전히 앉아있는 부하 직원들의 절제된 폼들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우리 상에도 냄비가 불에 얹어지고, 경찰 쪽엔 본격적으로 식사가 시작되면서 왁자해졌다. 상관이 부하 먹는 걸 챙기고, 부하가 황감해하면서 밥상 위에 민주주의가 꽃 피는 것 같았다. 상하관계가 분명한 자리일 터인데도 먹는 모습이 씩씩하고 산뜻해서 참 싱그러워 보였다. 나는 약간 씁쓸해졌다. 젊다는 게 대책 없이 예쁘게만 보이는 이 현상은 나이 든 자의 시샘일 터인데, 내가 왜 이리 추하게 늙어가는 거지!
그때였다. ㄴ자 입구의 두 자리가 비더니 검은 도포자락을 앞세운 일군의 사람들이 쳐들어왔다. 그래, 그냥 들어온 것이 아니라 쳐들어온 것이다. 동시에 조 주간이 벌떡 일어나 그쪽을 향해 쌩끗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 막 자리에 앉은 그 도포자락은 백기완 선생이었고, 그 옆에는 김중배 선생이, 그 맞은편에 유수호 선생 등이었다. 나도 엉거주춤 일어나 인사를 드렸다. 한두 번 뵌 적이야 있지만 어디 그분들이 우리를 기억이나 하겠는가. 그럼에도 정겹게 인사를 받아주었다. 백기완 선생이 헌거로운 목소리를 높였다.
“신자유주의가 영원할 것처럼 활개를 친들 결국은 없어지고 말어. 역사를 돌아봐. 영원할 것 같았던 것들 모두 다 사라졌잖아.”
맞은편의 역사학자라는 분이 말을 받았다.
“그거야 알지요. 다만 부대끼며 당대를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너무 힘이 든다는 게 문제 아닙니까?”
순간 나는 곽병찬 기자가 어느 글에서 썼던 김중배 선생의 말이 생각났다. 곽 기자는 어느 몹시 더운 날, 작은 모임에서 선생을 만났다.
“선생님, 많이 편찮으시다던데, 어찌 이런 모임까지?”
“초조해진 거겠지, 곧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나야 가지만, 내가 남기고 떠날 이 사회에서 어떤 희망의 불씨라도 보지 못한다면 죽어서 얼마나 가슴 아프겠어. 그래서 편히 죽으려고 작은 불씨라도 하나 찾아다니는 거지.”
백 선생 쪽 상에서 누군가가 단호하게 말했다.
“한상균 위원장을 경찰에 넘겨준다면, 조계사 망하는 거지.”
순간 나는 경찰 쪽을 보았다. 그런데 말이다. 마치 정지 화면이 내 눈앞에 펼쳐지는 듯, 갑자기 화면엔 음향이 사라지고, 숟가락질하던 그 동작 그대로 귀를 쫑긋한 채 정지. 직업 본능일 거였다. 방 안을 둘러보았다. 이런 걸 그로테스크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재야 선생들 쪽은 비장미가 흐르는 정적, 경찰 쪽은 급긴장의 매서운 정적, 그 가운데 앉은 고부와 어린아이마저 갑작스러운 변화에 충격을 받은 듯 침묵. 그때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우리 주간 선생의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웬 정적!”
그러자 그 소리에 마술이라도 풀린 듯 선생들은 다시 이야길 이어 나갔고, 경찰은 여전히 귀를 쫑긋한 채 말은 하지 않고 숟가락 젓가락만 놀렸고, 가운데 끼인 고부간은 묘한 분위기가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국자로 막 끓기 시작한 탕을 꾹꾹 눌렀다.
경찰들이 일어났다. 기대했는데 쓸만한 정보란 도시 없어 실망했다는 듯 결연하게 일어나더니만, 선생들이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는 것처럼 똑바로 걸어나갔다. 얼마 있지 않아 우리도 일어나 선생님들께 목례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휴~하고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웬 한숨? 글쎄, 모르겠다.
사무실로 걸어오면서 혼자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원로 재야인사들이 들어오자 서장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고, 다른 경찰들도 따라 일어나고, 서장이 다가가 악수를 청하며 말하는 것이다.
“선생님들, 안녕하십니까? 전 강남의 모 경찰서 서장 아무개인데 이런 자리에서 평소 존경하는 선생님들을 한꺼번에 뵙게 되었습니다.”
“강남 서장이 종로는 웬일이요? 점심 먹으려고 온 것은 아닐 게고?”
“내일 집회 때문에 업무협의차 왔습니다. 내일 집회가 공언한 대로 평화집회가 되도록 잘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도는 무슨? 일이야 젊은 활동가들이 하고 우리야 그냥 상징일 뿐이지. 재야운동이란 약속이 생명인데 평화집회를 공언했으니, 쁘락치들의 장난만 없다면 틀림없이 평화집회가 될 거요. 아무튼 내일 고생이 많겠수.”
“집회하시는 분들이 더 고생이시지요. 맛있게 잡수시고….”
약속한 대로 집회는 평화롭게 열렸고, 이후에도 한상균 위원장은 조계사를 나오지 않았으며 15일 경찰의 경내 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을 때, 조계종 총무원장의 긴급 기자회견으로 시간을 벌다가 16일 그는 제 발로 걸어 나와 경찰에 잡혀갔다. 그리고 조계사 주지가 기자회견에서 ‘다시는 조계사를 범법자의 피난처로 제공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기사가 신문마다 1면에 실렸다.
엘니뇨 현상으로 겨울인데도 이상고온이 계속되었다. 세상에, 나는 농담이랍시고 “돈 없어 스키장을 인수하지 않아서 다행이지, 인수했더라면 하루하루가 얼마나 불행하겄냐?” 하면서 세월을 죽이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영하 18도의 한파가 일주일 정도 몰아쳤다. 심심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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