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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6

[좋은수필]트집 / 권현옥

트집 / 권현옥

 

 

탁자를 덜컥 들여놓았다. 전통 마루처럼 짜 맞춘 탁자가 유행하여 시중에 나도는 것을 보고 샀다. 남성의 근육질같이 단단한 나무결이 무심한 듯 침묵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니 영락없는 전통 마루였다. 전통 마루 반 평을 뚝 떼어낸 것 같은 이 탁자에서 뒹굴거나 앉진 못해도 흡족했다. 둔탁한 촌놈의 형상에서 청량한 숨소리가 들렸다.

어릴 적 비 오는 날에는 대청마루에 코를 대고 그것을 비 냄새라 단정하였고 눈을 대고 마루 밑에 신발이 나란히 피해있는지를 확인하는 행복한 감상법을 가졌었다. 마루에는 틈이 있었기 때문이다.

햇살이 깊숙이 침투된 날, 빛은 마루 밑의 컴컴한 음지에 길을 내고 나는 실날같은 눈을 틈새에 들이대며 마루 밑에 떨어져 있던 이야기들을 보았다. 과자 조각 하나에도, 땅강아지나 돈벌레에도, 개미나 쥐에게도, 옷핀이나 실핀에서도, 휴식을 취하고 있는 강아지에게서도 이야기가 있었다.

틈으로 엿보이는 이야기나 느낌이 좋아 아파트 바닥에도 비닐장판을 걷어내고 마루를 깔았다. 그러나 촘촘하고 미끈한 게 찍히고 흠집이 날까 조심스럽기만 했다. 그래서 전통 마루처럼 짜인 탁자를 다시 덜컥 샀는가 보다.​

마루 탁자는 다용도로 쓰였다. 때로는 책상으로 식탁으로, 때로는 다과상으로 쓰였지만 보기보다 만족한 것은 아니었다. 종이에 메모를 하거나 우툴두툴한 결이 글씨를 방해했고 나무 조각끼리 맞닿은 경계의 홈 속으로 볼펜 심어 헛디딘 하이힐처럼 빠져 종이가 찢어지기도 했다.

그렇다 해도 나는 좋았다. 문제는 계절이 바뀐 뒤의 일이었다. 원래 이랬던가, 잘못된 제품을 산 건가, 하며 눈을 의심했다.

겨울이 되자 탁자에 틈이 생겼다. 조각조각이 꽉 맞물려 맞추어져 있던 경계의 줄이 공간으로 바뀌었다. 건조한 공기 때문에 나무 조각들이 말라 줄어든 것이다. 틈이 생기니 빠진 이빨 자리 같았고 손으로 이리 밀고 저리 밀어보니 달그락거리며 움직이기까지 했다.

그 사이로 빛이 들어갔고 탁자에서 한 일의 흔적들이 떨어졌다. 빛이야 무덤덤했지만 과자 부스러기나 번잡한 일상사의 흔적이 낙하하여 탁자 밑이 지저분해진 것에는 신사가 꼬였다. 틈이 있었기 때문이다.​ 탁자 위를 닦는 일보다 탁자 밑에 엎어져 팔을 휘둘러 흔적을 훔칠 때는 몹시 귀찮았다.

안성 지방에서는 갓의 양태를 잡는 일을 '트집 잡는다'했다. 부드럽고 수굿한 곡선을 위해서는 고도의 눈맛과 손끝으로 이 '트집 잡기'를 잘 해야 했다. 그 말의 줄기를 붙잡고 나도 나무 조각조각을 한쪽 끝으로 밀어붙이고 모아진 틈 위에는 화장지를 올려 가렸다.

한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도록 그렇게 지내다가 습기와 장마가 지루하던 여름, 다시 놀랐다. 틈이 없어졌다. 습기를 먹은 조각들은 틈도 다 먹어서인지 완고한 힘마저 발산했다. 다시 완벽하게 틈 하나 없는 탁자로 변했다. 나는 다시 엎드리지 않고 위만 닦아도 되었다.

틈집은 그 놓인 자리에 따라 숨통이 되기도 하고 트집 잡힐 일이 되나 보다. 어릴 적 더 마루의 틈새에서 이야기를 건지고 추억했던 그리움 때문에 산 이 탁자는 틈 때문에 잠시 나를 놀라게 했다.

생각해 보면 마루 탁자는 스스로의 숨통을 트기 위해 엿보일지라도 통로를 만든 게 아닌가. 틈집을 만들고 엿보게 한 것이다. 그러니 나는 트집 잡을 일이 아니라 너그럽게 엿보면 될 일이다. 틈집이 내보내는 것은 이해하고 틈으로 빠져버린 것은 추억하면 좋을 일이다.

공연히 깔고 앉고 눕고 해야 할 마루를 상으로 쓰고 있으면서 부스러기가 밑으로 빠지네, 늘었다 줄었다 하네, 하여 트집 잡을 일이 아니었다.

15세기 쓰임처럼, '트집'은 '잡을 일'이 아니라 '할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