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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6

[좋은수필]화중행(畵中行) / 여승동

화중행(畵中行) / 여승동

 

 

그림을 그리다가, 그림 속을 거닐다가, 그림 속으로 잠이 든다. 풍경 속에 한 그림이 있고, 한 그림 속에 풍경이 있다. 세상은 언제나 그림 속의 그림이자 풍경 속의 풍경이다.

어느 것이 참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제가 그림 속에 있음을 알지 못하고 헤어나지 못한다. 그림 속에 있음에도 그것이 그림인지 풍경인지 알지 못하니, 그림 속에서 일어나, 밥 먹고, 일하고, 잠이 드는 것이 그림인 줄을 꿈에도 깨닫지 못한다.

그뿐이랴.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또 봄이 와도 우리는 여전히 그림 속에서 꽃을 보고, 꽃을 키우고, 꽃이 지는 저녁을 맞이한다. 저녁 식탁에는 과일이며, 채소들이며, 잘 구워진 생선이며, 싱싱하고, 따사롭고, 고소한 냄새들이 그림처럼 피어오르고, 우리들은 그림 같은 만찬의 냄새를 씹고 삼키며 향기로운 저녁을 마시다가 또 하나의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맛들어가는 것은 비단 냄새와 그림에서뿐만은 아니다. 아련히 젖어드는 소리, 음악은 또 어떠하랴?​ 그것은 귀엣말로 들려주는 영락없는 소리 속의 그림이다. 맛은 하나의 볼 그림이요. 소리는 귀를 통하여 열리고 닫히는 세상으로부터의 소리 그림이 된다.

눈으로 보이는 풍경은 질펀하다가도 가파르고, 넉넉하다가도 난데없이 헐떡이는 모습으로 변하기도 하지만, 소리로 들리는 풍경은 가끔씩 소란스럽기는 해도, 대체로 느리게, 혹은 빠르게, 보챌 뿐 금방 숨넘어갈 듯 채근하지는 아니한다. 소리 속의 풍경은 졸졸거리며 느긋하고, 감미롭고도 고요한 물결의 세상이 된다.

그리하여 눈으로​ 마주치는 긴장된 풍경들을 나지막한 소리로 달래고 읊조리며, 소리의 끝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나 꿈결같은 안식으로 잦아든다. 그림 속에서 일어나, 종일토록 걷다가, 지친 몸으로 그림 속으로 다시 돌아와 잠이 들고, 그림 속에서 그림 같은 꿈을 꾸고 그림 같은 잠꼬대를 한다.

날마다 비슷한 얼굴로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음식을 먹고,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끼리끼리 말을 주고받으며, 또래를 지어 다니고, 요모조모 무리지어 살아간다 할 것이니, 만나는 이마다 꿈속의 인형들이요, 나누는 것들 또한 그림 속의 조형언어들이다.

이런 기분을 뭐라 해야 할지, 그림 속에서 살다 보니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혹은 그림이 전부인 줄로만 알고 있으니 온통 그림밖에 없다고 해야 할까?​

어찌하였든,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너 나 할 것 없이 그림밖에 모른다 할 것임으로 그림은 유일한 존재의 풍경이자, 목숨의 고장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여, 우리들은 그림 밖으로 걸어나갈 수도, 그림 바깥을 꿈꿀 수도 없다.

꿈에서 깨어날 수도 없고, 꿈에서 깨어나고 싶은 생각조차 아니 드는 것이니, 꿈에서 깨어날 일도 없는 것이다. 그림 안에서 햇살이 들고, 구름이 끼고, 비가 오고, 천둥이 치고, 푸른 잎새들이 벌어나다가 어느덧 울긋불긋 물들어 떨어지고, 마침내 찬바람 건듯 불어 흰 눈이 펄펄 내리는 것이다.

숲속에 빽빽이 들어찬 나무의 군락과도 같이 도심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그림 안에서, 언어의 구름에 갇혀서 먹고 자고, 울고 웃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토라지고 그리워하며 하루 삼시 세끼의 기쁨과 슬픔을 씹고 마시고 삼키며 살아가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그물처럼, 바람처럼, 구름처럼, 집처럼, 덫처럼, 그러나 그곳은 여전히 아름다운 둥지가 되어, 자진토록 헤어날 수 없는 함정처럼 두고두고 갇혀서 사는 곳이다. 그곳은 우리가 잠깐 발버둥 치다가도 어느 순간 흔쾌히 포획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의 유일한 집이며, 땅이며, 하늘이기도 하다.

하나, 이 모든 것이 그림 속의 풍경임을 설사 안다 하더라도 우리들은 끝내 그곳을 벗어날 수는 없다. 다름 아니라, 그곳이 우리들의 영원한 고향이기 때문이며, 태어나서 지금껏 오로지 그곳에서만이 길들여져 살아온 우리​들 만의 세상이기 때문이며, 아무리 달아나려고 해도 달아날 수 없는 그림 속의 숱한 만남과 인연의 구덩이들이기 때문이다.

사랑하여 결혼하고, 핏줄을 잎잎이 틔워내고 이웃에게 손을 뻗어, 일터와 장터로 나아가, 온갖 인연들이 언제나 그곳에서 비롯되었으니, 강가의 모래알처럼 수많은 맺어짐과 떠남조차도 그림 속에서 생애를 다하기 때문이다.

혹여 사람들은 세상의 목숨이 다하는 날, 사람도 그림도 풍경도 다 잊고 허허로이 떠날 수 있으리라 짐작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조차 여의치 않으리라 생각되는 것은 기억 속에 남은 그림들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을 아무래도 알 수 없을 터인즉 어이하랴 싶은 것이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물론, 그 이전 어느 날, 태곳적부터 반짝이던 별빛을 우리가 기억하고 있을 터인즉, 억겁을 쏟아지는 햇살 속에서 우리가 태어나고 영글어 다시금 햇살의 그림 속으로 돌아간다 하여 우리들 기억의 목숨이 사라진다 할 것이랴.

날마다 숨을 들이켜며 생애를 그리고 간직하였을 공기방울 하나하나에도 우리들의 기억이 켜켜이 묻어 있을 터인즉. 우리가 쓸고 닦고 삶을 갈무리하였던 그림 같은 내 집안의 문지방 하나하나에도 영겁을 달려온 시간들이 퇴적되어 있을 터인즉, 먼 길을 달려 한 생生을 줄기차게 흐르고 흘러온 강물 같은 발자국에도, 그 흔적들 사이사이로​ 분분히 쌓였던 먼지 부스러기 하나하나에도 지울 수 없는 암각화 같은 영겁의 그림자들이 아로새겨져 있을 터인즉…어찌 잊는다 할 것이랴? 어찌 잊을 수 있다 할 것이랴?

그리하여 마침내 생애의 끝자락마저도 또 하나의 풍경이 될 터인즉, 그것은 더 큰 그림 속으로 나비처럼 날아 들어가 가는 일이라서, 모든 존재는 비로소 영원한 미로 속의 그림 같은 여행길에 오르는 것이 아닐까 짐작하여 보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