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에서의 하룻밤 / 유시연
때때로 길은 나를 생의 이쪽과 저쪽, 혹은 지상과 땅 그 경계 어디쯤에 풀어놓는다. 짧은 여행에서 돌아온 나를 맞은 것은 적막과 우편물과 쉰내 나는 누룽지였다.
베란다에 둔 식물은 말라가고 겨우 살아남은 이파리 몇 개가 맥없이 늘어져 있다. 가방을 던져놓고 커피 한 잔을 마신다. 그러고는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월악산 계곡, 미륵불의 푸근한 미소에 끌려 하염없이 주저앉아 있다가 온 일, 까칠한 밤송이가 가득 흔들리는 장면, 천 년의 시간을 건너와 나와 마주한 인연의 구체성에 대해 묵상한다.
시간의 지층 저 너머를 통과한 듯 묵은 돌에서는 영원의 흔적이 느껴졌다. 전생이었든지 아니면 언젠가 와본 듯한 장소였다. 아주 오래전 지금은 헤어진 그와 함께 왔던 기억이 난다. 푸지게 열린 밤송이가 금방이라도 알밤을 떨어뜨릴 것만 같아 나무를 쳐다본다. 바위에 주저앉아 독경소리를 들으며 피안, 영원, 허무, 인생 같은 어휘를 떠올린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가고 다시 몇 사람의 일행이 바쁘게 다가와 사진을 찍고 주변을 둘러보는 그 시간, 나는 천 년을 버텨온 돌부처의 미소를 바라보고만 있다. 그러고 나서 찾아간 절에서 그 스님을 만난다.
“자고 가.”
어둑해질 무렵 찾아든 산사에서 노스님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건넨다. 대웅전에서는 늦은 예불이 시작되고 그림자를 끌며 마당을 돌아 나오던 내 귀에 풍경소리가 스며든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차츰 희미한 여백을 지워갈 무렵이다. 조금 늦은 시간이어서 개인 신도가 가족의 제사를 올리는 줄 알고 돌아서려던 참이다. 그때 노스님 한 분이 다가와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고, 서로 인사를 나눈다.
스님이 그 자리에서 종교를 묻는다. 친구는 종교가 없고 나는 천주교라고 대답했더니 스님이 부처님 법문을 들려주겠다며 말문을 연다. 바닥에 그냥 주저앉아 스님이 질문을 하고 우리가 대답을 하는 형식이 시작된다. 대웅전 안에서는 예불이 계속되고 빗살이 후드득 떠는 마당에 앉아 지붕 너머로 하늘이 차츰 짙은 그림자를 펼치며 대지를 감싸안는다. 저녁 공양은 하셨어? 스님이 묻는다. 아뇨. 내가 대답한다. 스님이 앞서서 공양간으로 안내를 해준다. 오십 대로 보이는 여자가 정성스럽게 음식을 차려내 온다. 우리가 식사를 하는 사이 스님은 스텐 대접에 찐밤을 가득 담아 옆에서 드신다.
저녁밥을 먹고 스님이 들려주는 부처님 말씀을 오래오래 듣는다. 가톨릭 신자인 나를 의식해서인지 예수에 대한 예화도 빼놓지 않는다. 우리는 자정이 넘고 새벽이 다가오도록 부처와 예수와 노자와 맹자를 말하다가 현상학과 하이데거와 십우도에 이르러 막을 내린다. 인생의 하반기에 ‘존재와 시간’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그의 철학적 신념을 진일보시킨 하이데거는 길 위의 여정에 있는 나에게 또 하나의 물음을 던지며 월악산 깊은 계곡 산사에까지 따라와 새벽녘까지 그의 흔적을 남기고 있어 불가사의하기만 하다.
친구가 하품을 하고 새벽닭이 홰를 치고 개가 짖고 풀벌레 소리 잦아들자 스님이 일어선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새벽을 깨우는 목탁소리에 일어나 문을 열어본다. 어슴푸레한 하늘이 숲속에 내려와 있다.
이번 여행 중 동행한 친구와는 십 년 만에 본다. 한밤중 전화 통화를 하다가 가방을 꾸려 떠나온 것하며, 만나는 인연들 모두 그들이 살아온 생의 이력을 낯선 인연에게 풀어낸다. 절에 오기 전 만난 식당 여주인의 어두운 얼굴이 떠오르자 잠시 그녀가 지나온 생의 언저리를 맴돈다. 그녀의 푸념을 몇 시간이고 들어준 일들은 내 생이 조금씩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식당 여주인은 지천명에 이른 나이였고, 시집간 딸이 사위에게 폭력을 당하며 산다고 하소연하더니 본인도 한때 남편의 폭력으로 인해 고통스러웠다고 말한다. 막걸리와 파전을 앞에 놓고 동행한 친구와 나는 식당 여자의 넋두리를 들어주다가 위로해 주다가 급기야 세 여자가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인다. 식당 여자는 중간중간 묵이며 오이김치, 막걸리 항아리를 내온다.
그 여행 중에 산사 공양간 아주머니의 넋두리가 발길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경험을 또 한다. 산사 객실에서 묵은 다음날 이른 아침을 먹고 떠나려는 데 공양간 아주머니가 따라 나오더니 자신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뱉어내기 시작한다. 엉거주춤 서 있다가 그녀 거처로 따라가서 이야기를 들어준다. 공양간 아주머니는 자식 셋을 두고 혼자된 이야기에서부터 온갖 고초를 겪은 내력을 눈물 글썽이며 뱉어내더니 직접 만든 식초며 금방 딴 애호박 몇 덩이를 넣어준다. 오십 년이 넘도록 가슴에 담고 살아온 애환을 한 시간 안에 담기에는 모자랐지만 이상하게도 이번 여정에는 주로 상처 가득한 사람들의 내력을 듣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미륵사지 보살이 천 년의 시간을 건너와 나에게 보여준 미소는 푸근했고 넉넉하다. 식당 여주인의 막걸리 인심과, 공양간 아주머니의 마음 씀씀이를 가슴에 품고 나는 보살이 되어 그네들 이야기에 가슴을 연다. 새벽녘까지 부처와 예수 사이를 오간 노스님에 이르기까지, 이번 여정에 나는 그들의 삶을 들어주는 것으로 보시를 한다. 그리고 성당 보살이 되어 돌아온다.
고독 속으로 걸어가라. 후배가 남긴 문자 메시지이다. 어느 순간 다시 길을 떠날 때 나는 이 구절을 기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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