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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탱자나무 도둑 / 이윤기

탱자나무 도둑  / 이윤기

 

 



내 질녀가 시집간 날 우리 형제들이 대구 집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 7남매, 종형제 5남매, 제종형제 5남매에 그 배우자까지 모두 자리하니 30여명이 되더군요. 맨 꼬래비인 내 나이가 조선 나이로 쉰두 살이 됩니다. 그 자리에 모인 형제들 나이를 합해 보니 간단하게 천오백 살이 되더군요. 천년 세월--- 이런 것이구나 싶데요. 잔칫집에 노래 나오는 게 우리 미풍양속입니다. 나는 형님들 누님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황진이’라는 노래를 아주 정성껏, 감정을 넣어서 불렀습니다. 정말 잘 부르고 싶어서, 양말 벗고, 가부좌 틀듯이 책상다리하고 앉아, 오냐, 형님 누님들, 오늘 내가 한번 감동시키자--- 이런 생각을 단단히 하면서 뒷동네에는 힘을 넣고, 배의 힘은 빼고, ‘황진이’를 불렀습니다. 잘 부르고 박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혼주이자 그 자리의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평소 막둥이 아우에게 사사로운 감정 잘 안 드러내는 내 장형께서 이러시는 겁니다.
“그 사람 그거--- 한번만 더 듣자---”
앵콜을 받은 겁니다. 딸 시집 보내고 울적해 있는 장형으로부터 받은 겁니다.


그래도 다른 노래를 부르라는 것이 아니라 같은 노래를 한번 더 듣자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불렀지요. 불렀더니, 이번에는 내 고향에서 우리 선산 돌보아주시는 고종형이 또 한번 더 부르라는 겁니다. 또 불렀지요. 최선을 다해서 또 한번을 불렀지요. 그게 끝이 아닙니다.
하여튼, 나는 그 자리에서 ‘황진이’를 네 번 불렀다는군요. 나는 다섯 번이라고 주장하는데 형님들이, 이 사람이, 욕심은, 네 번이야--- 하는 걸 보면 네 번이 맞는 모양이지요.


‘황진이’ 네 번 부른 뒤 발 옆이 뜨끔뜨끔해서 보았더니, 세상에 책상다리에 눌려 있던 오른쪽 새끼발가락 옆이 한 3센티미터나 까져 있는 겁니다. 체중을 거기에다 싣고 용을 너무 썼던 것입니다. 형님 누님들이, 내 발 옆구리 까진 것 알고는 혀를 차면서 이러더군요.
“저것이 저러고도 밥 먹고 사는 것이 신통하다--- ”

나는, 누가 뭐라고 하건 세계 최고의 유행가 가수를, 수년 전에 작고한 일본의 가수 미소라 히바리로 꼽습니다. 조선일보 이준호 기자의 저서 ‘후지산과 대장성’에 따르면 히바리의 어머니 이름은 키미에, 처녀적의 성은 김씨 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이걸 잘 모른다는군요. 유랑극단 춤꾼 소녀의 비애를 그린 그의 노래 노랫말에 이런 것이 있지요.

피리소리에 맞추어 거꾸로 서면/ 산이 보입니다. 고향 산이/ 나는야 고아. 거리의 떠돌이/ 흐르고 흐르는 유랑극단// 오늘도 오늘대로 단장한테/ 재간이 서툴다고 구중을 듣고/ 북채로 얻어맞고 하늘을 보니/ 나처럼 울고 있는 낮달.

10여 년 전에 혼자 이 노래를 듣고 있으려니 아내가, 뭘 그렇게 열심이냐고 하데요. 그래서 아내에게 이 노래말을 통역해 주는데--- 다 통역하지 못하고 그만 아내를 안고 펑펑 울어버린 일이 있습니다. 북채로 얻어맞고 하늘을 보니, 낮달이 저처럼 울고 있는 것 같대--- 하면서요.

소리북 치는 고수 얘기 한 자리 하지요. 내 친구 중에도 소리북 칠 줄 아는 친구가 여럿 있습니다. 그 중의 한 친구 이야깁니다. 함께 술 마시다가 아홉시도 안 되었는데 자리에서 일어서네요. 그래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북채 깎을 탱자나무 베러 가야 한다는 겁니다. 내 친구는 말하자면 탱자나무 도벌꾼입니다. 낮에 보아 두었다가 밤에 살그머니 가서 도벌한다는 겁니다. 재고 딸리기 전에 북채 스무남은 개 만들어 두어야 한다더군요.
내가 이상하다 싶어서 물었지요.
“탱자나무 북채가 왜 스무 개씩이나 필요해?”
탱자나무 북채, 이거 굉장히 단단합니다. 나도 소리북 가지고 장난을 더러 치는데 근 10년을 썼는데도 우리 집의 북채는 아직 말짱합니다. 그런데 고수 친구는 이러는 겁니다.
“나는 한 해에 스므남은 개 부러뜨려--- ”
맙소사--- 그 단단한 탱자나무 북채를 일 년에 스무 개나 부러드린다니--- 믿어지지 않아서 물어 보았지요. 그랬더니 이 친구 이러는 겁니다.
“탱자나무 북채--- 사람의 기기가 실리면, 그거 별거 아니다. 소리꾼의 박과 박 사이를, 머리카락 올 째는 듯이 치고 들어가면서 북통을 따악--- 하고 치면, 탱자나무 북채도 뚜욱뚜욱 하염없이 부러진다.”
아이고 형님.

발 까지는 줄도 모르는 채 용쓰면서 노래 부를 수 있는 것을 보면, 노래말 통역하다가 마누라 붙잡고 펑펑 울 수 있는 것을 보면 내게도 신명이라는 게 좀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고백하거니와, 나에게는 내 친구 고수처럼 박과 박 사이를, 머리카락 올 째고 들어가듯이 그렇게 째고 들어가 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말을 다루는 사람이니까 말로써 그렇게 째고 들어가야 하는데, 말로써 사람과 사람 사이를 흐르는 인정의 기미를 째고 들어가야 하는데, 나는 그래본 적이 없습니다.
정신이 번쩍 듭니다. 뭘 한다 하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요.
더 아름답기 위해서는 범하지 못할 법칙이 없다고 하니, 도벌 그 자체에는 면죄부를 줄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