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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청통형님 / 백금태

청통형님 / 백금태  

 

   

청통형님이 울었다. 서럽고 외롭다며 꺼이꺼이 울었다. 그 울음은 가슴 저 밑바닥에서 울려나오는 속울음처럼 처연했다.

시집의 오 남매가 중국 운남성으로 여행을 떠난 길이었다. 일행은 칠순을 훨씬 넘긴 큰 시숙 내외분과 큰 시누이 내외분, 회갑을 맞으신 둘째 시숙 내외분, 그리고 우리 부부와 손아래 시누이 내외 등 열명이었다.

몇 년 전부터 벼룬 여행이었으나 집집마다의 잡다한 생활사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번에야 용케 마음 맞추고 시간 맞추어 여행길에 나선 것이다. 청통형님은 일흔셋의 손위 시누이다. 소녀처럼 여리고 순수한 청통형님은 여행 날이 정해진 그날부터 소풍 기다리는 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평소 아픈 무릎이 형제들을 애 먹일까봐 병원으로 달려가 침을 맞고 약을 지어 먹으며 몸을 보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여동생한테로, 동생 댁에게로 “무슨 옷을 입어야 되제?” “옷 사러 같이 가자.”는 둥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기가 울렸다. 아이마냥 들떠 좋아하는 형님을 뵈며 우리도 덩달아 여행 날을 기다렸다.

청통형님은 불의도 비원칙도 용납하지 못하는 대쪽같은 성정을 가진 분이다. 관광버스에서의 놀이문화가 싫어서 동네 사람들과 여행 한 번 가지 않았다. 비행기를 타본 경험이라곤 미국에 거주하는 딸의 초청으로 한두 번 미국에 다녀 온 것이 고작이었다. 여행이라곤 형제들과 같이 가게 된 이번이 처음이니 소녀처럼 달뜨는 속내를 어떻게 감출 수 있으랴.

삼남 일녀중 하나 딸을 이억 만 리 미국으로, 그것도 노랑머리에 눈 파아란 서양인에게 시집보낸 형님은 항상 딸에 대한 그리움과 애절함으로 뭉쳐진 한을 가슴에 무주룩하게 안고 사시는 분이다. 형님은 딸의 빈자리라도 채우려는 듯 동생 댁들에게 애틋한 정을 쏟으신다. 막내인 나에게는 유독 더 살가운 정을 얹어 주신다. 내 나이에 스무 살을 더 보탠 형님은 친정어머니인지 시누이인지 구분이 안 될 때가 더 많다. 어쩌다 형님 댁에 들릴 때면 친정어머니가 딸에게 챙겨주듯 콩이며, 깨, 찹쌀 등 올망졸망 봉지를 싸느라 형님의 뒤꿈치가 땅에 닿을 새가 없다. 상할까봐 소금단지에 넣어 두었던 참기름 병을 꺼내 가방에 찔러 넣어 주신다.

여행 마지막 날 늦은 밤이었다. 며칠간의 여독에 지쳐 있던 나는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 들릴 듯 말 듯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 듯도 했다.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잠을 청하는데 바람 스치듯 문이 덜컹거렸다. 문을 열었다. 청통형님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이미 형님의 눈언저리는 벌겋게 짓물러져 있건만 그래도 쪼글쪼글한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다. 내 심장은 낯선 불청객이라도 맞은 듯 사정없이 벌렁거렸다. 순하디 순한 형님. 법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형님의 눈물에서 무언가 심상찮음을 느꼈다. 형님의 울음이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 기다렸다기보다 서럽게 우는 형님의 울음을 그치게 할 방법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얼마나 지났을까. 물결치던 형님의 왜소한 어깨가 잔잔해졌다. 원망 가득한 형님의 눈망울이 내 눈을 시리게 훑었다.

“자네가 그럴 줄 몰랐네. 큰 형님 말에 자네까지도 입을 삐쭉거리다니.”

청천벽력이었다. 그 말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나는 멀뚱멀뚱 초점 잃은 눈으로 형님을 쳐다 볼 뿐이었다.

그날 오후에 우리는 여행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중국 전통차 가게에 갔었다. 큰 형님이 전통차를 집집마다 한 봉지씩 사 주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의 대화였다.

“아지뱀하고 액시 둘이서 먹으면 이 차 한 달은 먹을 기다.” 큰 형님의 말이었다.

“뭐라고! 알았다. 황금아파트까지 택시타고 가면 된다. 태워다 주지 않아도 된다.” 큰 형님에게 톡 쏘아 붙이듯 말대꾸를 한 청통형님이 기분이 상한 듯 홱 돌아앉아 창문 밖으로 눈길을 보냈다.

“또 잘못 듣고 오해를 하는구나. 먹는 차가 타는 차로 둔갑을 했구마.” 큰 형님이 나를 보며 웃었다. 나도 형님 따라 빙긋이 웃었다. 청통형님의 오해를 풀 겨를도 없이 버스는 숙소에 닿았고, 우리는 인사를 나누며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그 웃음이 화근이었다. 청통형님 눈에는 소리 없이 웃는 내 입이 삐쭉거리는 것으로 비추어졌나보다. 그렇게도 믿고 예뻐해 주었던 동생 댁이 그런 모습을 보였으니. 믿음이 컸으니 설움과 실망도 배가 되었으리라.

집에서 떠나올 때 형님 댁에 들러 짐을 싣고 우리 차로 공항까지 갔다. 두 시간 가까이 가는 내내 형님은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수없이 했다. 마음 보드랍고 경우 바른 성격인지라 남에게 조금의 누도 용납 못하는 형님은 동기간에도 편치 않으셨던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청각신경이 약했던 형님은 젊을 때에도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 연세가 들면서 점점 더 어두워져 요즈음은 전화로는 거의 대화가 되지 않는다. 보청기를 착용해 보았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언제부턴가 악마가 약한 신경 줄을 타고 형님의 귓속에 들어 온 것이었다. 워낙 여리고 소심하고 정이 많은 형님인지라 악마조차도 감싸 안고 사셨나 보다. 악마는 형님을 조종하고 있었다. 뻑뻑하지도 대차지도 못한 형님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청통형님은 잘 들리지 않는 귀 때문에 큰 형님이 한 말을 오해를 했고, 나의 웃음에서 조차도 오해를 한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형님의 귓속에 웅크리고 있는 악마의 소행이었다. 악마는 형님과 나의 쫄깃쫄깃한 정에 질투가 났던 것이다. 악마는 형님과 나 사이에 오해라는 틈을 만들어 놓고 회심의 미소를 입가에 흘리며 해죽거렸다. 나는 형님을 붙잡고 울었다. 악마를 원망하며 울었다. 형님도 울었다. 나를 원망하며 울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