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 / 목성균
우리 집의 진달래 분재(盆栽)가 올해도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빈 골방에서 소박데기 순산하듯 혼자 꽃을 열댓 송이나 피웠다.
입춘이 지난 어느 날 아침, 겨울 때에 찌든 거실 유리창을 투과(透過)하는 햇살에서 문득 봄을 느끼고 혹시나 싶어서 방문을 열어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지금 막 초례청에 나갈 준비를 끝낸 새색시처럼 진달래가 방안에 애잔한 꽃빛을 가득하게 밝혀 놓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감탄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나는 진달래 분재가 꽃을 피우는데 아무것도 해 준 게 없다. 봄이 되면 뜰에 내놓고 겨울이 되면 골방에 들여놓았을 뿐이다. 거름을 한번 제대로 주어보길 했나, 진딧물이 끼니 약을 제때 쳐 주길 했나, 시들면 물이나 듬뿍 주는 게 고작이었다. 마치 호란(胡亂)때, 몽고에 잡혀 간 조선 처녀같이 졸지에 나의 분재 신세가 된 진달래가 자포자기하지 않고 꽃눈을 틔워서 공들여 키우고 마침내 꽃을 피운 이 생명의 경이 앞에서 염치없이 경탄이나 한다면 나는 되놈 같은 놈이다.
진달래꽃은 한때 북한의 국화였다고 한다. 온 봄산을 물들이는 꽃빛이 피바다 같아서 국화로 정했던 것일까? 아무리 적색(赤色) 이념에 혈안이 되었기로 민족의 보편적인 서정(抒情)까지 기만(欺滿)해 가며 그 은은한 영변 약산의 진달래 꽃빛을 핏빛으로 보았을 리야―. 지금은 진달래꽃이 북한의 국화가 아니라고 하니 천만 다행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아지트에서 봄산을 물들이는 진달래꽃을 보고 빨치산들은 소월의 감성(感性)을 어떻게 주체했을까. 안타깝다. 감성을 절제해가면서까지 그들이 추구한 것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동무들 보라! 저 피바다 같은 산을…. 아무리 열악한 생존여건에서도 저렇게 온 산을 열정으로 환하게 해방시키는, 저― 진달래꽃을 보라! 우리의 혁명과업도 진달래처럼 꽃피우자!”
한 시대의 비극적인 봄산을 물들이는 진달래꽃의 의미를 지리산 빨치산 대장 이현상은 그쯤 부여했을까? 아무튼 진달래를 적기(敵旗)와 같은 이념의 아류(亞流)로 전락시킨 것이라면 진달래의 본성(本性)에 대한 모독이다.
진달래는 가난하고 소박한 꽃이다. 칸나처럼 열정적이지도 않고, 목련처럼 유혹적이지도 않고, 제비꽃처럼 깜찍하지도 않다. 은은한 정을 수줍게 입가에 물고 하염없는 기대에 까치발을 딛고 서서 담 너머 아지랑이 피는 산모퉁이를 바라보는 산골처녀 같은 꽃, 호란과 왜란, 그 가엾은 시대에 양지쪽 산기슭에 돌아갈 곳 없이 망연히 앉아 있는 겁탈 당한 조선 여인 같은 꽃, 약한 듯하면서도 질긴 그 생명의 빛―. 미처 이파리도 피우지 못한 나목의 가지에 서둘러 몇 송이씩 소복소복 꽃부터 피워서 가혹한 겨울을 물리치고 얼른 침울한 산자락을 환하게 밝혀 놓는 꽃―.
6.25 다음해 봄. 우리 고향 윗버들미의 달걀양지 산기슭에서 죽은 빨치산 여인을 본 적이 있다. 어린 나는 호기심에 떨면서 어른들 어깨너머로 긴 단발머리를 곱게 빗고 남루한 노란 군복을 입은 누님 같은 젊은 여인의 단정한 주검을 보았다. 그 주검은 내 나이 따라서 무서움으로, 슬픔으로, 미움으로 변질되어 왔다. 조선 여인은 그렇게 경거망동하게 죽어서는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누가 그 여자를 낯선 산비탈 양지쪽에서 혼자 죽게 했나 하는 생각에 나는 진달래꽃이 핀 임진강 어느 O.P에 초병으로 서 있을 때 적의(敵意)를 불태우곤 했었다.
우리 집 진달래 분재의 분수(盆樹)는 해 저문 외진 산골 길옆에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을 캐어다 심은 것이다.
그 진달래꽃은 땅거미가 지는 산속에서 조금도 두려움이나 조바심하는 기색 없이 오직 안온(安穩)한 모습으로 피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누님! 집에 갑시다’ 하는 마음으로 캐어다 분에 심어 놓았다.
나는 그 진달래꽃이 문득 동란기에 새 새댁이던 우리들의 누님 같다고 생각했다.
신랑도 없이 홀로 시집살이를 하던 열아홉 새댁이 곱게 잠든 어린것을 등에 업고 저문 고개에 서 있던 그 운명적인 모습―.
“빨리 가거라, 저물겠다.”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어린 친정 동생에게 누님은 조용히 재촉했다. 누님의 연분홍 치마는 시집살이 때가 묻어서 연자줏빛이었는데, 흡사 진달래 꽃빛 같았다.
동란이 막 끝난 어느 해 봄, 앞집 원규가 아직 아침 햇살도 퍼지기 전에 나를 찾아와서 한터골 저의 누님 댁에 같이 가자고 해서 다녀온 적이 있다. 나는 선뜻 따라 나섰다. 나는 누님이 없이 자랐다. 원규 누님이 내 누님같이 생각되어서 원규에게 늘 질투를 느끼면서 자랐다. 어느 날 나는 원규처럼 원규 누님에게 느닷없이 “누나야―” 하고 불러 보았다. 원규 누님이 몹시 기뻐했다. 그리고 나를 원규처럼 동생으로 여겼다. 그 후 원규 누님이 꽃가마를 타고 지름티재를 넘어갈 때 원규도 안 우는데 나는 울었다.
원규 매형은 좌익청년이 되어 동란 속으로 표연(飄然)히 사라지고 원규 누님은 난세(亂世)에 홀로 시집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 시절의 봄산에는 유난히 진달래꽃이 만발했는데, 원규 어머니는 원규 등을 동구 밖으로 밀어내셨다. 신랑도 없는 시집살이를 하는 딸이 눈에 밟혀 애간장이 타셨던 모양이었다.
원규 누님의 시집은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핀 삼십 리 산길을 가야 했다. 왕복 육십 리 길이 어린 우리에게는 힘든 길이었지만 나는 마다하지 않고 원규를 따라갔다. 아침 일찍 떠나서 뛰다시피 걸으면 점심나절이 채 못 되어서 원규 누님의 시집에 도착했다. 원규 누님과 우리는 겨우 한나절쯤, 꿈결같이 보내고 해가 설핏해지면 갓난것을 등에 업은 원규 누님의 애잔한 모습을 고갯마루에 세워 놓고 돌아왔다.
“잘 가거라. 어머니한테 누나는 잘살고 있으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 드려라.” 원규한테 말하고,
“성균아, 원규 길동무를 해줘서 고맙다.” 내게는 그렇게 의례적인 인사를 한 것 같은데 왜 그리 눈물겹게 그 말이 소중했던지―.
우리는 고갯마루에서 돌아서면 뛰었다. 삼십 리 산길에 이미 어둠이 깃들이는데, 우리는 어두운 고갯마루에 누님이 하염없이 서 있는 것만 같아서 뛰다 돌아보고 뛰다 돌아보고 하며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별이 쏟아질 듯 뿌려진 어두운 삽짝 밖에 원규 어머니가 서 계셨다.
“누나가 너를 보고 울지 않든…?”
“아니.”
“너도 이제 다 컸구나! 어미 아픈 속을 헤아릴 줄을 다 알고….”
원규 어머니는 울음을 삼키며 말씀하셨다. 원규 어머니는 원규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지만, 분명히 원규 누님은 우리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어린 친정 곳 동생들을 저무는 고갯마루에서 배웅하며 눈물을 보이지 않던 암담한 신세의 누님, 막막(寞寞)한 여자의 생애를 앞에 두고 어린 새댁이 정온(靜穩)한 모습을 흩트리지 않을 수 있는 의지가 어떻게 생기는 것이었을까? 나는 우리 집 진달래 분재의 꽃을 보고 생명을 소중히 이어가는 나무의 본성이 인고의 생애를 지탱해 낸 원규 누님 같아 보여서 더욱 고마운 것이다.
날씨가 하도 화창하기에 나는 진달래 분재를 현관 밖에다 내놓았다. 어두운 골방 구석에 홀로 두기에는 꽃의 자태가 너무 아까웠다.
“우리 누나 예쁘지?”
원규의 뽐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초례청에 나가려고 치장을 마치고 안방에 앉아 있는 w의 누님을 보고 둘러서 있는 동네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하던 원규―. 내가 진달래 분재를 현관 밖으로 내놓은 것은 그런 심정이었다.
그런데 어둠침침한 그늘 속에 있던 꽃을 급작스럽게 햇빛 속에 내놓아서 그런가? 아니면 꽃의 생명이 다한 것일까? 하루를 넘기더니 꽃잎이 시들었다. 나는 놀라서 진달래를 얼른 골방에 도로 들여다 놓았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점점 꽃잎에 힘이 빠지더니 그에 꽃잎이 한 잎 두 잎 지기 시작했다.
나는 진달래꽃을 경솔하게 현관에 내놓은 걸 후회했다. 며칠을 더 피어 있었을 꽃을 애들처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하고 햇빛에 급해 내놓아서 지게 한 것만 같아서였다.
나의 분재관리 지식으로는 잘못하다가 진달래 분재를 죽일지도 모른다. 이 봄에는 분재의 진달래를 저 살던 자리 외진 산골에 도로 갖다가 심어 놓아야겠다. 그리고 봄마다 난세의 우리들 누님처럼 정온한 모습으로 꽃을 피우면 보러 가야겠다.
유고수필집《생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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