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바람이 켜는 노래 / 반숙자

바람이 켜는 노래 / 반숙자

 




봄이 여인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읊은 시인이 있다. 그럼에도 햇살이 순해지고 대추가 익을 무렵이면, 온 감관이 현(弦)이 되어 바람에 켜지면서 고향으로 불어 가는 마음의 풍향은 어인 일인가.

나는 지금 수수목 수런대는 시골길을 걷고 있다. 벼이삭이 고개숙이는 들판에는 잠자리가 떼지어 난다. 잠자리가 꽃잎처럼 나부끼는 하늘이 가없이 넓고 깊다. 나지막했던 하늘이 올라가 호수가 도니 것일까. 들길에 섰으려니 메뚜기 잡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진다.

마당가에 분꽃이 벙그러질 때면 어머니는 보리쌀 닦아 옹솥에 안쳐 놓고 다래끼 옆에 끼고 집을 나섰다. 언니더러는 보리쌀 한소끔 끓으면, 아버지 드릴 입쌀 솥귀퉁이에 얹으라 하셨지만 들은체 만 체, 우리는 어머니 쪽머리를 놓칠세라 뒤쫓아갔다.

기차 정거장 앞 큰길을 벗어나면 야트막한 고개가 있고 고개를 넘어가면 여수골이다. 예전에 여우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 했는데, 그때도 아이들이 다니기에는 대낮에도 으스스했다.

참나무가 빽빽한 산길이 끝나면 로터리 과수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과수원까지는 논밭이 질펀했고 밭둑에 대추나무가 서 있는 곳이 우리 밭이다. 어머니는 김장배추 솎느라 여념이 없고 해는 뉘엿뉘엿 서산을 넘는다.

메뚜기 잡기에 좋은 시각이다. 낮에는 소치기만 해도 콩튀듯 튀던 메뚜기들이 해거름이면 한 마리씩 둘러 업어 굼뜨다. 콩잎에 앉은 메뚜기를 움켜 강아지풀 대궁에 꿰인다. 한 대궁이 가득 차면 또 한 대궁, 그러면 두 대궁을 합쳐 매어 목에 건다.

목띠가 꿰어 있는 메뚜기들은 가만히 있지를 않고 바르작거린다. 따갑기도 하고 간지럽기도 해서 목을 움츠리고 걀걀거린다. 해가 꼴깍 넘어간다. 어머니는 동부랑 애호박을 따서 앞치마에 담고는 다래끼를 이고 논두렁으로 내려선다.

땅거미가 지는 산길을 종종걸음으로 달려 집에 와서 보면, 메뚜기 몸통은 어디로 가고 머리만 졸루라니 매달려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언니는 연기 품으며 풍로에 불을 피우고…….

아홉 살쯤의 기억이다. 그날도 어머니는 가을걷이에 바빠서 나에게는 과심을 줄 여념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밭머리에서 혼자 놀다가 대추나무에 눈길이 갔다. 대추가 조랑조랑 열려 있었다. 손이 닿지 않아서 나무에 매달리다시피 대추를 땄다.

한 개, 두 개, 세 개……오른쪽 주먹이 가득 찼다. 자줏빛 초록빛 댕글댕글한 대추는 왼쪽 손아귀에도 가득 찼다. 그런데 웬일인지 손에는 찼어도 마음에는 차지를 않았다. 더도 말고 꼭 한 개만 더 따면 흡족할 것 같았다.

힘껏 까치발을 하고 가까스로 한 개를 따 든 순간 손에 있던 다른 대추가 빠져 나갔다. 따면 빠져 나가고, 그러기를 반복하는 동안 나는 약이 올랐다. 바로 그때였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 온 것은. 「그만하면 되었다.」어머니는 어느 사이 밭둑에 나와 계셨다.

지금도 들길에 서면 그날의 어머니 음성이 환성처럼 들린다. 작은 내 손은 생각지 않고 욕망의 수치가 늘어날 때,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라는 무언의 말씀이지 싶다. 그래서 가끔 집을 나서 정처없이 들길을 걷는지도 모른다.

한번은 친구들과 같이 참샘뜰로 메뚜기를 잡으러 갔다. 우리가 떠들썩하니 볏논에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깡통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 소리와 때를 같이하여 벙거지를 삐딱하게 쓴 허수아비가 경풍하듯 떨었다.

정작 놀란 것은 참새가 아니라 우리들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친구 오라비가 우리들을 놀려 주려고 일부러 그랬다고 한다. 그 친구도 또 오라비도 이제는 모두가 중 늙은이가 되어 나처럼 메뚜기도 없는 들녘에서 저무는 해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 사이 이내가 산그림자를 덮었다. 소달구지 몰고 가는 농부들 대신 경운기소리가 요란하고 가끔씩 고추자루 싣고 가는 자가용 차도 만난다. 도시가 변하듯 농촌도 변하고 사람도 변해 간다. 전에는 모내기나 마당질을 할 때면 온 동네가 잔칫집이 되었다.

그러던 것이 이앙기로 모를 심고 콤바인으로 수확하는 요즘에는 이웃도 모르게 심고 베게 되었다. 능률적이고 경제적일지는 모르나 한 식구처럼 살던 때와는 달리, 마음씨가 이기적으로 변해 간다고 우려한다.

내가 어머니의 치맛자락에 매달리는 아이처럼 고향에 연연하는 것도 정을 잃어버릴까 두려워서다. 세상이 변한다 해도, 사람의 정을 간직한 곳은 자연과 한데 얼려 살며 흙을 사랑하는 농부들이라는 믿음에 변함이 없다.

귀로의 고달픈 어깨를 바람이 어루만져 준다. 그리고 바람은 올때처럼 빈손으로 다른 곳으로 불어 간다. 만나서는 후회 없이 뜨겁게 사랑하고 떠날 때는 뒤돌아보지 않고 갈 대로 간다. 바람은 나에게 집착하지 말라고 한다.

머물지도 말고, 들고있는 것들을 놓아 버리라고 이른다. 어머니도 가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떠나고 이제 너도 떠날 때가 올 것이라고 속삭여 준다. 숲은 태고림 그대로, 강은 맑은 하늘 품은 그대로 잠시 빌려 쓰고 다음에 오는 이를 위하여 제자리에 제 모습으로 두라고 한다.

바람이고 싶지만 바람이지 못한 나는 오늘도 저무는 들녘에서 작은 풀씨로 뒹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