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 황성진
장마는 늘 지루했다. 벌써 사십수 년이나 맞고 보내기를 거듭하였건만, 그때마다. 장마는 늘 지루했다. 근 한 달 혹은 달포를 넘는 그 지루함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토요일인지라 나는 일찍 퇴근했다. 동료 모두들, 그 잘난 한 잔의 유혹도 없었다. 서로들 비설거지를 위해 귀가한 것이다.
겨우겨우 비를 뚫고 현관을 들어섰다. 이제 오세요, 또는 일찍 오셨네요, 따위의 말이나마 기대했으나 아내는 철퍼덕 거실에 앉아 무엇인가 열중하고 있었다.
강낭콩이었다. 처가의 텃밭에 심은, 반쯤 썩어 버린 그것을 하나하나 까고 있었다. 아내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손이 아프니 얼른 와 같이 까자 했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그 행위에 동참했다. 많이 썩은 것은 제쳐두고 성한 놈들만 골라 까기 시작했다.
푸른빛이 싱싱한, 아직 덜 여문 놈을 골라 껍질을 벗기니 흰 바탕에 보라색 눈이 박힌 알들이 모여 있다. 꼭 작은애의 새끼손톱 정도 크기인지라 앙증맞고 귀엽기까지 했다. 나는 한 알을 들어 눈 가까이 대 보았다. 알록달록한 것이 보기 좋았다. 상큼한 냄새가 코끝을 후볐다. 무어라 형언하기조차 두려운 알싸한 향기였다.
아내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일만 축나니 하기 싫으면 씻고 쉬라고 했다. 그러면서 게으른 여편네가 밭고랑만 센다는 말이 당신의 지금 행위와 다를 게 뭐 있냐며 핀잔을 늘어놓는다.
사실 이 말은, 아내에게 자주 써 온 나의 표현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역공을 당한 셈이다. 그 말을 해 놓고 무엇이 그리 통쾌한지 얼굴 가득 함박웃음이다. 참 오랜만에 보는 아내의 모습, 나의 관심은 이제 강낭콩에서 아내에게로 갔다.
우연일 수도 혹은 필연일 수도 있는 만남을 통해 사람들은 부부의 연을 맺는다. 지나는 길에 옷깃을 스쳐 맺어질 수도 있으며 월하노인의 주선으로 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수년 사귀었다느니, 맞선 두 달 만에 골인했다느니 하는 말을 들어보면 부부의 연이란 참으로 불 가사의에 가까운지도 모를 일이다.
천안이라는 도시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교통의 요지이며, 최근 고속철도의 개통으로 서울과의 거리가 불과 삼십 분밖에 소요되지 않는다는 도시, 오십만이라는 거대 식구를 거느리게 되었노라 자랑하는 도시, 땅 금이 천정부지로 솟구친다는 도시, 그 새롭게 부상하는 도시에서 나는 천 일 동안 기거한 적이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천안은, 인구 십만이 조금 넘는다는 소규모 도시였다. 당시 나는 자취를 하였는데, 하루하루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제일 어려웠다.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늘 그놈의 ‘하고’의 임무를 수행하였는데,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반찬이었다. 밥이야 전기밥솥이 해결해 주었고 설거지나 빨래는 팔뚝 한 번 걷으면 그만이었는데 반찬만은 달랐다. 그나마 시골집에서 가져온 멸치며 김 등의 밑반찬이나마 있으면 다행이었지만, 그것은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그렇다 하여 손가락을 빨 수는 없었으니, 우리는 그 고갈 이후를 라면으로 때웠다. 하나 그것도 잠시뿐, 그만 라면에 물리게 되는 것이었다. 결국, 가장 손쉬운 계란국과 두부국에 손을 대게 된 것이었다. 오죽했으면 우리 자취방을 ‘계란공화국’, ‘두부 공화국’ 이라 했을까.
그날 식사 당번은 나였다. 밑반찬의 시기는 이미 오래전에 갔고 라면의 시기도 다 지난 장마철의 저녁때였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동네 구멍가게를 향하였다. 검정 우산이 내는 투툭이는 빗소리가 서러워 발끝만 바라보고 걸어갔다.
가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할머니가 운영하는 곳인지라 나는 할머니하고 몇 번 불렀다. 이윽고 가게 안쪽에서 난 문이 열리면서 무얼 찾으세요, 하는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하연 알전구 밑에 아스라이 펼쳐진 정경, 그 곳에 한 소녀가 않아 있었다. 방 가운데는 소복이 콩깍지를 쌓아 놓고 콩을 까고 있었다. 반쯤 담긴 깐 콩 그릇이 보였으며, 그 중 한 알이 때구르르 굴러 문지방 너머 내 발 밑으로 떨어졌다. 얼결에 나는 그것을 주워 들었고, 그것을 소녀에게로 전달했다. 흰 바탕에 보라색 눈이 박힌 강낭콩이었다. 소녀는 콩알을 받으며 하얀 얼굴이 발그레 일렁였다. 강낭콩처럼 작고, 귀엽고, 앙증맞은 얼굴이었다.
그러구러 세월은 흘렀고, 나는 그 구멍가게 소녀와 한 방을 쓰게 되었다. 우연인지 혹은 필연인지 알 수 없는 그 인연의 끈으로 인하여 나는 그녀에게 그녀는 나에게 콩깍지가 되었고, 그리하여 같이 살게 된 것이다. 신혼 초, 그녀는 꽃이었다. 흰 바탕에 보라색 눈이 밖힌 꽃이었다. 꽃은 곧 열매를 맺었고, 그 열매는 장마에도 끄떡없이 잘 자라 주었다. 가끔은 비료를 쳐 주어 양분을 공급하기도 하였으며, 또 가끔은 벌레를 잡아 성장에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아직은 덜 여문 푸르스름한 여림 콩이지만, 또 몇 번의 비를 맞으며 그것들은 씨방 가득 불어날 것이다.
시인 오규원은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를 노래했다.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까지, 그런 한 잎의 여자가 잎을 늘여 그늘을 만들고 그 그늘 아래 우리 가족이 쉬고 있다. 콩깍지처럼 작고 깊은 골방이지만, 아담하고 안온한 울안에서는 콩알들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덜 여물어 풋내가 나는 가장에, 눈마저 제대로 뜨지 못한 풋콩이 그 깍지 속에 웅숭깊이 숨 쉬고 있다.
추적이며 일렁이며를 거듭하던 장마도 조만간 끝날 것이다. 그러면 쾌청한 하늘에 더위가 몰려올 것이며, 살갖을 파고드는 그 뙤약볕에 잘 버틴 콩들은 튼실히 여물 것이다. 어느 날인가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는 깍지는 결국 문을 열 것이고, 강낭콩은 세상 밖으로 떠날 것이다. 그 알록이는 무늬의 얼굴로 대지의 할례에 동참할 것이다.
무엇이 즐거운지 아내는 아직도 웃음꽃이다. 하연 얼굴에, 예의 그 보라색 눈이 박힌 모습으로 담뿍 미소를 짓고 있다.
잰 손의 놀림 덕으로 강낭콩 까기 작업은 완료 되었다. 콩을 정리하고, 깍지를 정리하고 주변 청소까지 완벽히 끝내고는 창문을 열어 본다.
비는 아침 그대로 내리고 있다. 굵었다가는 잦아지고, 잦아졌다가는 이내 굵어지며 연신 내리고 있다. 나는 그 장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정원의 초목들이 가늘게 떨고 있음을 느낀다. 저 신열이 지나면 꽃은 또 피리니, 저 아픔이 지나면 열매 또한 맺으리니, 그러다가 결국 한 생을 다하고 터진 깍지 사이로 열매 몇 개 던지리니.
시오리 장터 너머 그 텃밭 어느 언저리
한 다발 강낭콩을 거두어 까 본다
장마가 깍지마다에
철철 넘치는 그쯤에
저 신열 지나고 나면 꽃은 또 피어 몰라
흰 보라 여린 무늬 알알이 박히어서
한 꼭지 강낭콩 속에
열매 몇 개 맺으리니
풋내나는 가장으로 세월을 가장하면
만남도 헤어짐도 씨방 가득 들어차서
풋콩도 여물어지고
그게 또 콩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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