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줄박이의 포석 / 윤남석
"정아! 새가 집을 지으려나 봐.”
제 동생의 호기심을 잔뜩 부풀려 놓는 큰아이의 한마디에 이내 귀가 솔깃해지고, 슬그머니 반사신경이 감응전류를 찌릿찌릿 일으키게 한다.
현관 옆, 통나무탁자위엔 나락을 까부는 큰 풍구가 아닌 참깨, 메밀 등의 곡물 쭉정이를 쉬엄쉬엄 까불었을 것 같은 다릿발 없는 아주 아담한 풍구가 얹혀 있다. 그 낡은 풍구의 큰 북처럼 생긴 둥그런 통 속에 장착된 고장나버린 날개차에서 야금야금 일이 지펴지고 있었다.
곤줄박이가 먼지 낀 날개차의 널빤지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는 다른 한 쪽으로 난 큼지막한 배풍구 뿐이다.
위에 달린 곡식을 흘려 넣는 깔때기 모양의 아가리도 두툼한 입술을 굳게 닫은 지 오래되었고, 알곡을 까불면 안쪽의 날개가 돌아 쭉정이, 검불, 먼지, 겨 등을 밖으로 날려 보내게 되는, 오로지 배출시키기만 하던 배풍구로 거꾸로 거슬러 들어와서 동력을 생산하던 심장부에 안착할 수 있었다는 것에 노쇠한 풍구의 서글픈 초라함과 씁쓸한 수모가 얼핏 비치는 듯하다.
하지만 곡물의 겉껍질이나 검부러기 등이 바람에 날려 튕겨져 나오던 배풍구로 마른 잔디나 풀잎을 부지런히 물고 들어가서 두둑한 배짱을 틀어버린 곤줄박이 때문에, 더 이상 바람을 일으키기 거북스러운 날개차이지만 나와 아이들에게 야틈한 바람을 새록새록 일구고 있는 건 분명했다.
이렇게 곤줄박이의 집짓기 위한 포석(布石)은 시작되었다. 그것도 집 중앙 현관 옆, 바둑판으로 치자면 한복판에다가 기어코 서반부터 일을 벌이고야 만 것이다. 바둑에서 중앙의 집짓기는 매우 어렵고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전형이기에 보통 중앙은 공배(空排)로 생각하는 곳이기도 하다.
자칫 실수로 돌이 바둑판 위에 떨어진 것이 아닌 이상, 한 번 둔 착수를 들어내어 다른 곳에 두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흔히 보는 포석이 아닌, 마치 공명(孔明)이 면상에 일격을 가하듯이 둔 돌이 기세 좋게 두드리는 바람에 돌이 저만치 튕겨지고 다시 집은 돌을 야무지게 올려놓는 것 같아 보였다.
사실 희귀한 세간이 되어버린 낡은 풍구이지만 생김새나 연륜으로 본다면 곤줄박이의 둥지로 내어주기에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만큼 아끼는 물건임에는 틀림없다. 더구나 잘 휘지 않고 탄력감이 좋아 고급 바둑판으로 쓰이는 적실수(赤實樹)로 만들어진 것이라서, 그 내뿜는 고고한 기운이 불그무레함 속에 녹아들어 여간 은은한 멋을 자아내는 게 아니었다.
그러하니 곤줄박이의 이 수가 절호의 착점이라면 ‘기어이 싸움이 시작 됐구나.’하는 잔눈치로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그러나 문제는 대국심리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실전 당시는 이론을 거의 무시하는 미묘한 심리가 크게 작용한다. 곤줄박이의 그 대담한 포석은 유리한 고지의 점령이라지만 적잖이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었다. 361개의 교차점, 어디에 놓건 그것은 전적으로 두는 사람의 창작의도에 달려있다지만 곤줄박이가 놓은 배꼽점(天元)을 보노라면 고차원의 전략을 짜기도 만만치가 않아 보인다.
바둑의 차이는 차원의 차이이다. 인생도 차원의 높고 낮음에 따라 결정되듯이 누가 더 깊고 넓게 보느냐의 문제이다. 그 차원을 한 단계 뛰어넘을 때 비로소 전략. 전술의 멋을 알게 되고 짜릿한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둑이 늘기 위해서는 상수(上手)와 두어야 한다. 그러나 치수를 제대로 정했는데도 판판이 당하는 것은, 미리 놓인 돌의 위력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풍구의 어두컴컴한 통 속, 그것도 배풍구로 거꾸로 기어들어가 제일 깊숙한 곳에 둔 곤줄박이의 수는 활로 찾기가 쉬울 것 같지 않은데도 절절매는 내가 그 꼴이다. 배풍구를 단단히 틀어막으면 판세가 아무래도 수월하게 진행되겠지만, 좀 비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착수의 일시포기는 더구나 허용되지 않는다. 활로를 완전히 포위하게 되면 곤줄박이가 둔 돌을 반상에서 들어내는 것은 당연하지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바둑판만 물끄러미 훑고 있을 뿐이다.
벌써 초읽기에 쫓기며 시간 연장수를 둬야할 처지에 놓인 것 같은 조급함을, 곤줄박이는 오히려 엄살을 부리는 것쯤으로 여기고 전혀 개의치 않겠다는 심사인 것 같다.
곤줄박이가 절대로 무를 리 없을 것 같은 허를 찌른 검질긴 꼼수에, 이대로 가다간 불계(不計)의 규칙에 걸려들기란 그리 긴 시간을 요할 것 같지가 않아 보인다.
마른 짚 나부랭이를 줄기차게 물어 나르던 곤줄박이가, 지렁이 등 조그마한 벌레를 부리로 앙큼하게 물고 풍구 안으로 들락날락하는 게 심상한 변을 깐질깐질하게 한다.
배풍구에서 검부러기 튀겨져 나가듯 곤줄박이가 울타리 너머로 휘리릭 날아가자마자, 갱기 풀린 손잡이 틈새에 눈동자를 움질거려 보았다. 알로록달로록 꿈틀거리는 어린 것들. 울멍줄멍 부리를 한껏 벌리고 샛고운 엷은 크림색 몸뚱이를 꼼실거리고 있다. 딸아이도 어느새 훔쳐봤는지 귀여워 죽겠다고 생긋거린다.
짧은 부리깃에 기다란 벌레를 축 늘어뜨린 곤줄박이가, 앵두나무가지에서 쓰쓰 비비 씨이씨이 새퉁스럽게 울어댄다. 아무래도 멀찌감치 자리를 피해주어야 될 성싶다.
아이들과 아래채 앞에 쭈그리고 앉아, 곤줄박이의 재바른 총총거림을 관전하기로 했다. 관전자가 참견을 하거나 훈수를 해서도 안 되고 불필요하게 바둑돌을 딸그락거리는 등 시끄러운 소리도 물론 삼가야한다. 진달래 가지 끝에서 철제 빨래건조대로, 다시 투박한 돌확 위로, 암수가 번갈아 또록이며 먹이를 물어 나른다.
지나치게 두리번거리는 곤줄박이의 모습에서 몹시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해 보이는데, 조금 전에 몰래 녀석들의 집을 훔쳐보다 들킨 것이 어지간히 거슬린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다음부터는 새집을 흘깃거리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럼에도 풍구 주위에서 키득거리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닌 모양인지, 시간만 나면 손잡이틈새로 곤줄박이의 동태를 감시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으려든다.
큰애가 오늘 오후에 곤줄박이새끼들이 모두 이사를 갔다고 시무룩하게 운을 뗀다. 곤줄박이 네 마리가 풍구에서 끼우듬하더니 바닥으로 떨어지더란다.
다시 몸을 곧추세우고, 아장아장 예쁜 발걸음을 사뿐이다가 포르륵포르륵 날갯짓을 땀나도록 하더니 탱자나무울타리 너머로 날아갔단다.
아이들도 보통 섭섭한 눈치가 아니다. 큰 북처럼 생긴 풍구의 통 속을 들여다보았다. 날개차위에 틀었던 녀석들의 보금자리에는 아직 따뜻한 기운이 남아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쩌억 벌린 노오란 부리에 제발 먹이를 넣어달라고 왱강댕강하던 연연한 몸짓들이 오롯이 남아있는 것만 같다.
그러나 눈자위를 심하게 아리게 하는 것은, 알록달록 갈색반점이 어려 있는 까지지 못한 알 하나가 둥지 속에 남아있는 것이었다. 끝내 부화하지 못하고 어미곤줄박이의 애통터지는 부리쪼음(啄)때문이었던지 반쯤 으깨어져 애련함을 더하고 있다.
‘줄탁동기’라는 말이 있다. 새끼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한다는 것이다. 새끼와 어미가 동시에 알을 쪼지만, 어미가 껍질 전체를 깨주지는 않고 새끼가 혼자서 할 수 있는 범위까지만 도와주게 된다. 결국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새끼 자신이다. ‘줄탁’이 동시에 발생해야 한 생명이 탄생하는 것이니, 어느 한쪽이 다른 쪽보다 빠르거나 늦으면 생명은 그 자리에서 죽어버린다는 뜻이다. 결국은 그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제대로 부란(孵卵)되었다면 지금쯤 멋진 날갯짓을 하고 있을 터이지만, 고장나버린 날개차위에 덩그러니 남은 그것은, 이미 오래전에 동력을 잃어버린 날개차와 어쩌면 지독히도 닮아있는 것 같아 안쓰럽기만 하다.
고운 줄무늬의 곤줄박이가 올망졸망 모여앉아 지절거리던 둥지는 이제 어느 누구의 집도 아닌 빈 공간일 뿐이다. 공배(空排)는 당연히 메울 수 있으나 채워 줄 그 무엇도 남아있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채운다는 것이 덧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애틋한 뒤끝을 남기긴 했지만, 곤줄박이의 일수불퇴(一手不退)의 힘 있는 포석(布石)은 결코 엉성한 옥집이 아닌, 방향을 그르치지 않은 견고한 집짓기에 성공했다고 보인다.
벌써 계가(計家)를 끝내고서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섰고, 더군다나 완벽한 집을 지어 새끼들을 출가시켰기 때문이다.
필요한 연결점을 상대편인 인간이 차지하고 있더라도 기막히게 안형(眼形)을 빼앗을 줄도 아는 능란함은, 세(勢)에 치우치지도 실리(實利)만을 쫓지도 않는 조화로운 전략을 낳게 되고, 보다 인간친화적인 부드러운 습성이 자연스레 배지 않았겠나 생각되기도 한다.
참으로 깊고 오묘한 바둑의 이치만큼 곤줄박이의 파란곡절(波瀾曲折)어린 생태는, 나에게 부단한 노력과 과감한 배짱을 가지게끔 진한 여운을 남긴 것은 분명했다. 그것은 인생에 있어서 목전의 소리(小利)에 급급하지 않고 전체를 관조(觀照)하게 만드는 과감하고 고집스런 삶의 함수로 삼아, 두고두고 소중한 귀감이 되었으면 하는 힘 있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간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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