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돌이 법칙 / 김은주
마른 전복 모양의 수로(水路)을 내려다보고 섰다.
습한 기운은 긴 세월 속에 사라지고 천 년 전 물이 흐르던 곳은 마른 먼지만 수북하다. 물살을 연상시키는 유연한 수로는 조각돌이 모여 타원을 이루고 있다. 그 위에 가만 손을 놓아 본다. 까칠하다. 어디에도 물의 기운은 없다. 차가운 돌의 기운만 내 혈관 속에 전해져 올 뿐 어디에도 물기는 없다. 옛날에는 사라진 돌 거북이 입을 통해 물을 토해 냈겠지만 그 모습이 단박에 그려지지는 않는다. 오랜 건조의 공백이 수로를 하얗게 비워 내고 있을 따름이다.
저 마른 수로 안에도 물이 차고 넘칠 때가 있었겠지. 남실거리는 물살위에 술잔을 띄우며 가없는 시(詩)를 지어 서로에게 받쳤을 것이다. 흔들리며 휘돌아 간 술잔은 목마른 주인에게 당도했을 터이고 흔쾌히 받아 마신 술 한 잔은 흉중을 털어 놓는 화답이 되어 다시 물살을 탔으리라. 마주해 다 할 수 없었던 경직된 말들이 물살의 오묘한 조화와 수로의 유연함 앞에 봇물처럼 터져 올랐을 것이다. 흔들리는 물살을 타며 휘돌아 나아가다 보면 비로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물길이 열리고 마음에 교접이 이루어졌으리라. 천년의 시간을 건너 이제와 포석정을 바라보니 물살은 사라지고 수로의 골을 따라 소통의 흔적만 오롯이 남아 있다. 오월이라 그런지 포석정 옆 느티나무 몸피가 그 옛날 물살처럼 자꾸만 불어나고 있다.
불어난 녹음이 마른 수로에 바람의 물살을 일으킨다. 본디 물의 속성은 흐름에 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굽은 곳에서는 휘돌아가며 고인 곳에서는 잠시 머무르다 가기도 한다. 머물때 보면 겉으로는 정지 한 듯 보이나 속으로는 끝없이 출렁이는 존재가 물이다. 끝없이 움직여야 마땅할 물이 어느 날 운동성이 사라진다면 그 물은 이미 목숨을 잃은 것과 진배없다. 얼은 물이 다시 융점의 순간을 맞이하지 않고서는 그 안에 호흡을 들여 놓을 수 없듯이 물은 흐르고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 잠시도 멈추지 않는 운동성은 물이 지니고 있는 특별난 재주다. 그 재주를 끝없이 이용한 무리가 인류다. 물과 함께 살아오면서 만들어낸 갖가지 진귀한 유물 중에 포석정은 우리들에게 열린 사고를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굽이 흐르는 것이 물이기에 그 부드러움은 따로 말할 필요가 없다. 생래적으로 오가는 물은 어떤 장애물 앞에서도 마주 서 부딪치는 법이 없다. 그저 담담히 회 돌아 나아갈 뿐이다.
회 돌아 나아가는 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수로의 모양새와 유속을 잘 감지하면 될 일이다. 자제 없이 흐르는 계곡물은 물살이 불규칙하므로 그대로 수로에 이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일단 물을 가두어 출렁거림을 진정시킨 후 돌 거북의 몸을 통과 시켜 다시 흐르게 했을 것이다. 물이 수로 벽에 세게 부딪치면 물살이 퉁겨져 거칠어짐으로 수로의 곡선을 완만하게 조성함으로서 물살의 부드러움을 잡았을 것이다. 물살이 부드러워 지고 나면 그 다음은 술잔이 흔들리지 않고 무사히 목적지 까지 닿기 위해 수로 벽에 흐르는 유체역학 관계를 정확히 계산 했으리라. 즉 물의 회돌이 현상을 잘 읽어 그 소용돌이를 포석정에 십분 이용했던 것이다. 지금에야 이 모두가 과학이라는 바탕아래 증명이 되고 있지만 과학이 실존하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모든 것이 직감과 본능에 의한 응용의 산물이었을 것이다.
포석정 수로 끝에 앉아 회돌이에 대해 생각해 보니 회돌이는 곧 여유인 것 같다. 급히 갈수 있는 길이 도처에 있어도 한번 쯤 숨을 몰아쉬며 여유를 부린 후 다시 흘러간다면 모서리에 부딪치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무턱대고 흐르다 보면 곳곳에서 장애물을 만날 것이고 거세게 저항하다 보면 삶이 멍드는 것은 당연지사다. 사는 일이 물 흐르는 일처럼 순리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흐름을 감지하지 못해 쓸려 떠내려 갈 때도 있고 거꾸로 역류하다 보면 흙탕물을 뒤집어쓰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구비를 만날 때마다 스스로 물살을 잘 헤아리고 그 안으로 자신을 삼투압 시키다 보면 사는 일이 한결 수월해 질수 있는 것이다.
넘어짐 없이 술잔을 잘 띄우려면 물살이 곱게 흘러야 한다. 거칠지 않고 물살이 고우려면 드는 물과 나는 물의 양이 같아야 한다. 그래야만 물의 성정이 유순해 지는 것이다. 사람 사는 일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비워야 할 것과 채워야 할 것의 무게중심만 잘 조절한다면 평형을 이룬 술잔처럼 삶이 고요하게 목적지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삶에 물살을 타며 회돌이 법칙의 중심을 알아가는 일은 마른 내 삶에 천 년 전 물꼬를 촉촉이 여는 일과 다름없다. 부풀대로 부푼 푸른 느티나무 물살이 내 발목을 적시고 가슴께로 올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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