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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인생의 의미 / 김시헌

인생의 의미 / 김시헌

 

 

 

사랑방에 앉아서 해가 지는 것도 모르고 바둑판에 정신을 쏟고 있는 사람을 보고 신선놀음이라고 했다. 산중턱 높은 곳에 지어 놓은 정자에 흰 수염의 할아버지들이 앉아서 시를 논하고 학문을 이야기하면 신선놀음이라 했다.

 

현대에도 신선놀음은 있다. 화가가 경치 좋은 강기슭에 그림틀을 세워 놓고, 산 한 번, 그림 한 번씩 보면서 붓대를 움직이고 있으면 그것이 곧 신선놀음이다. 음악가가 악기를 어깨에 메고 버스에 타고 있기만 해도 그것이 신선놀음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자기 뜻에 맞는 일을 하는 사람, 멋있게 생활을 엮어 나가는 사람이 모두 신선놀음을 즐기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면 멋이 무엇인데? 하는 의문부호가 온다. 틀이 잡히고 여유가 있는 행동, 아름다움을 열심히 추구하는 마음, 대상에게 정신 없이 열중하는 정열, 그래서 무아경에 빠질 수 있는 도취가 있으면 그것들이 모두 멋이 된다. 멋은 조화와 균형과 여유에서 얻어진다.

 

외국사람은 멋에 대해서 얼마만큼 관심을 가지는지 궁금하다. 우리나라 사람은 색깔이 어울리게 고운 옷만 입고 나와도 "야 멋있다"고 표현한다. 키가 늘씬하게 크고 얼굴이 시원하게 생겼으면 "그 사람 멋있는 사람이다"고 말한다. 모임에 나가서 재치 있는 농담을 잘하고, 막힌 데 없는 동작을 구사하면 또한 멋있는 사람으로 평가한다.

 

단학 공부를 하는 도장에 가 본 일이 있다. 사찰에서 도를 닦는 스님모양 단정하게 앉아 손을 모으고 눈을 지그시 감고, 굳어있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첫째가 마음을 비우는 연습이고, 다음은 빈 마음에 天地의 기운을 빨아들이는 연습이다. 몸 안에 막히는 데가 없게 하기 위해서 상당히 격렬한 운동을 한다. 다리, 팔, 가슴, 손마디까지 흔들어서 기운이 들어가기에 지장이 없도록 통로를 만든다. 그런 뒤에 마음을 모으고 天地에 미만되어 있는 기운을 체내로 흡수한다. 그렇게 되면 나와 天地가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그 연습이 숙달되고 어느 경지에 이르면 황홀경을 체험한다고 말한다. 곧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된다는 것이다.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온다. 그 중에서 나와 대상이 하나로 되는 것이 행복이라고 대답을 하는 사람이 있다. 나도 그 대답에 찬성하는 사람이다. 대상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곧 도취를 의미한다. 도취는 나의 잃음이다. 내가 대상 속에 묻혀서 없어지는 상태가 도취이다. 무존재(無存在)가 되는 것, 그러니까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나를 잃는 정도에 차이가 생긴다.

 

그 대상이, 음악이 될 수도 있고, 자연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작업이 될 수도 있다. 음악이나 그림 같은 예술과 하나가 될 때는 도취의 정도가 많이 높아지지만 그 상태에서 벗어나면 곧 식어진다. 그러나 자연이나 종교가 될 때는 취하기도 어렵지만 한 번 취하면 시간이 많이 연장된다.

 

어떠한 도취를 선택할 것인가? 사람들은 제각기의 도취 대상을 찾아서 귀와 눈을 돌리고 있다. 어떤 것은 취하되 한때 뿐 오히려 괴로움이 뒤에 따라 온다. 어떤 도취는 생각만 내면, 금방 구할 수 있지만, 어떤 도취는 구해도 좀처럼 가까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깊고, 오래 가고, 영원한 안정을 얻는 도취를 가지고자 한다. 그것을 나는 초월자에게서 찾아본다.

 

불교에서는 선(禪)을 이야기한다. 선(禪)의 의미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부처의 상태에 빠지는 것을 일컫는 것 같다. 부처의 상태란 개체로서의 나를 벗어나 우주 전체와 맥이 통해져 있는 상태이다. 나를 완전히 떠나면 남는 것은 무(無), 아니면 공(空)이다. 아무것도 없는 나인데도 오히려 꽉 찬 자기가 된다는 것이다. 껍데기로서의 나를 벗으면 그 안에 우주로서의 다른 나와 생명이 연결된다. 그 나를 의식할 때 부처의 상태가 된다. 곧 개체로서의 나 속에서 전체로서의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그 경지에 도달하기가 얼마나 어려우랴?

 

기독교에서도 하나님을 자기 가슴 안에 모신다는 말을 사용한다. 하나님을 모신다는 것은 나와 하나님이 한 몸, 한마음이 되는 상태가 아니겠는가? 하나님을 강하게 모실 수 있을 때 한없는 감사와 감동이 온다는 것이다 속되게 표현하면 그것도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가 아니겠는가.

 

신선놀음이라고 하면 마음의 사치, 귀족적?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공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나 사무실에서 서류를 만지는 사람이 퇴근하다가 친한 벗과 탁주 한 잔 기울이면서 웃기고, 웃는 한때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신선놀음이다.

人生을 왜 사느냐의 물음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즐기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즐기기 위해서'를 속된 오락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신앙도 하나의 즐거움으로 해석될 수 있다. 행복의 다른 표현을 즐거움이라고 해도 되기 때문이다.

 

건전한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건전한 도취를 찾을 필요가 있다. 예술에 취할 수도 있고, 종교에 취할 수도 있고, 학문에 취할 수도 있다. 요즘은 문화센터라는 기관에서 취미반 교육이 성행되고 있다. 동양화반, 서예반, 외국어반, 꽃꽂이반, 문예창작반, 독서반 등 많다. 어떤 대상에 나를 몰입시킬 것인가? 그 몰입이 멋으로 연결되고 도취의 경지에 간다면 그곳에 곧 인생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