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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 장 자크 루소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 장 자크 루소 

 



 지금까지 내가 살던 모든 곳들에서(거기엔 멋진 곳도 있었지만) 비엔느 호수 한 가운데 있는 생 피에르 섬같이 진실로 나를 행복하게 해준 곳, 깊은 애석의 정을 마음에 남겨 준 곳은 다른 데는 없었다. 그 작은 섬은 누샤텔에서는 "못뜨" 섬이라 불리는데, 스위스에서 조차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비엔느 호반은 쥬네브 호반에 비하면 더 야생적이고 로만적이다. 바위와 숲이 물가에 바짝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경치는 밝고 아름답다. 농경지나 포도밭이 적고 취락이나 인가가 드물어도 거기에는 자연 그대로의 초원·목장·나무그늘의 휴식처가 많고 기복과 濃淡이 풍부하다. 거기엔 고독한 명상자, 마음껏 자연의 매력에 취하고, 정적 가운데서 마음을 가라 앉히고, 그 정적을 깨는 건 단지 독수리의 울음, 이따금 들리는 알 수 없는 새들의 지저귐, 그리고 산에서 떨어지는 분류의 폭음 - 이런 경지를 사랑하는 이에게는 흥미있는 곳이다.

 이 아름다운 호수는 원형같은 형태인데, 그 속에 두 개의 작은 섬을 에워싸고 있다. 모띠에로부터 돌팔매에 쫓겨 내가 숨어든 곳이 바로 이 섬이다. 나에게는 이 곳이 참으로 멋지다고 생각됐고, 내 기질에 딱 들어 맞는 생활을 할 수가 있어서 거기서 일생을 지낼 작정이던 나는 영국에 나를 데려가려는 계획 - 그 첫 징조를 나는 이미 감지하고 있었다 - 의 방해가 될 행동을 사람들이 허락하지 않으리라는 것만이 걱정이었다. 나는 이 섬에서 사는 것이 채 두 달도 허락되지 않았지만, 가령 거기서 두 해, 두 세기, 아니 영원을 살았던들, 한 순간도 싫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서 나와 아내는 稅吏와 그의 아내, 고용인들 밖엔 얘기할 상대도 없었다. 나는 그 두 달을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때라고 여길 뿐 아니라, 일생동안 만족한 기분으로 살 수 있었을 거라고 여길 만큼 행복한 때였다.

 그 행복이란 도시 어떤 것이었는가? 또 어떻게 그 행복을 즐겼는가? 나는 거기서 가진 생활을 그려볼 테니까, 오늘의 모든 사람들이 될 수 있으면 알아주길 바란다. 존귀한 "무위"야 말로, 그 쾌적함을 맘껏 맛보았으면 하고 바랐던 즐거움의 제일의, 주된 것인데, 실제로 거기에 머문 동안에 누린 것은 모두 한가에 몸을 맡긴 사람에게 필요한 감미로운 일이었다.


 급히 혼자 입은 옷 단벌로 옮겨간 나는 뒤에 가정부(테레즈)를 불러 들이고 책 가지와 짐을 붙여 왔지만, 일체 손을 대지 않는 게 기쁘고, 상자 떼기와 짐 보따리를 그냥 놔두고, 여생을 살려는 곳에서, 내일 아침이면 떠나갈 여인숙인양 살고 있었다. 특히 가장 기쁘게 여긴 것은 책들을 언제까지 상자에 싼 채로 놔두고 더구나 펜이나 잉크를 가까이 놓지 않은 것이다. 그런그런 시시한 서류나 변변치 않은 책 대신, 꽃과 건초를 방안 가득히 펴놓았다. 왜냐하면 그 무렵 식물학에 열중하게 된 덕분에 식물학에 취미를 갖게 되어 그것이 나의 정열이 되었다.

 나는 "피에르 섬 식물지"를 써서 이 섬의 모든 식물들을 그 책에 여생을 받혀 상세하게 기술할 작정이었다. 어떤 독일인은 레몬 껍질에 관한 책을 썼다는데, 나는 목장의 목초 하나하나, 숲의 이끼 하나하나, 바위를 덮은 석화 하나하나에 대해 한 권의 책을 썼을지 모른다. 이 멋진 계획을 실행하려고 아침마다 함께 조반을 들고는 손에 확대경을 들고 책『자연의 체계』를 끼고 섬 한 군데로 탐방에 나서곤 했다. 그 때까지는 생각도 못한 식물의 通有性을 분간, 흔한 種에서 그것을 검증하는 일이 나를 경이롭게 하고 더욱 진기한 종을 만날 기대를 안겨 주었다. 저녁을 들고 나서 갠 밤이면 우리는 함께 고지에 올라 어슬렁어슬렁 산책하고 거기서 호수 위 대기와 시원한 공기를 호흡한다. 원두막에서 몸을 쉬며 흥겹게 웃고, 얘기하며, 옛 노래의 일절을 부른다. 그리고 끝으로 오늘 하루에 만족하고, 내일도 그러하기를 기원하며 잠자리에 든다.

 긴 생애의 변전 속에서 나는 이를 데 없이 감미로운 향락과 강렬한 환희의 시기의 추억이 뜻밖에도 가장 나를 매혹하고 강하게 마음을 끄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나의 마음이 애석해 하는 행복이란 금새 사라질 순간이 아니라, 하나의 단순하고 변하지 않는 상태이고 거기에 격렬한 것은 아무 것도 없더라도, 하나의 소박하고 변하지 않는 상태이며, 그 지속이 매력을 증대하고 이윽고 거기에서 지복의 행복을 찾아낼 무엇인가이다. 이 세상 만사는 끊임없는 유동 속에 있다. 그러나 혼이 강한 지반을 찾아내 거기에 안주하고 거기에 자기의 전 존재를 집중하여 과거를 불러낼 필요도 없고 미래를 걱정할 필요도 없는 상태, 시간이 혼에게 아무 의의도 없는 것 같은 상대, 언제까지나 현재가 이어지고, 그러면서 그 지속을 느끼게 하지 않는, 계기의 자취도 없이, 결핍과 향유의, 쾌락과 고통의, 원망과 공포의 어떤 느낌도 없이 오로지 우리가 현존한다는 감정만이 있고 이 감정만으로 혼의 전체를 채울 수 있는 그런 상태가 있다면, 이런 상태가 계속되는 한, 거기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런 상태야말로 내가 생 피에르 섬에서 고독한 몽상에 잠기며 가다가다 경험한 상태이다.

 그런 경지에 있는 사람은 도시 무엇을 즐기는가? 그것은 자기 외부에 있는 무엇이 아니라, 자기자신과 자기의 존재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다른 모든 정념을 내버린 존재감은 그 자체가 만족과 평온의 귀중한 감정이고, 이 감정만으로도 넉넉히 이 존재는 사랑스럽고 기분 좋은 것이 된다.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는 그런 기분 좋은 도취감을 동경하여 끊임없이 마음에 일어나는 욕구가 의무로 명하는 활동적 생활에 대한 흥미를 잃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인간사회에서 떨어져 이 세상에서 남을 위하여 또 자신을 위하여도 유익한 일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불행한 사람은 이 상태 속에서, 모든 인간적인 행복을 보상할 일을 운명도 사람들도 빼앗을 수 없는 보상을 찾아낼 것이다.

 절대의 침묵은 비애를 가져온다. 그래서 기분 좋은 상상의 구원이 필요하게 되고,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에게는 이런 구원이 극히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그러나 자연의 손으로 세계의 다른 부분으로부터 격리된 풍요한 고독에서 그런 것을 더욱 완전히, 더욱 기분 좋게 겪었 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랜 동안의 유쾌한 몽상에서 깨어나 푸른 풀·꽃·새들에 에워싸인 자기를 보고, 맑고 깨끗한 드넓은 호수로 하여 환상같은 기슭에 멀리 눈을 보내며 나는 그렇게 사랑스런 모든 것을 자기의 창작에 동화시키는 것이다. 때때로 나는 실제로 그 섬에 있었을 때 그 광경을 더욱 가까이 상쾌하게 느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