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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헬로우 미서방 / 정영호

헬로우 미서방 / 정영호

 

 

 

  세계는 하나 라는 캠페인이 유행 된지 한참이나 되었다. 88올림픽 때도 그렇고 2004 월드컵 때도 번졌다. 한반도에 뿌리를 내리고 반만년 역사를 품은 이 나라 백성들이다. 모두가 배달민족이니 백의민족 이라며 순수 혈통을 자랑하며 뽐낸다. 그 자긍심이 하늘을 찌른다.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등 숱한 외세의 침입을 당한 역사는역사 속에 묻어두고 이와는 관계가 없는 민족이다. 민족의 자긍심을 자랑하던 배달민족의 혈통이 이 시대에 소리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우주시대에 세계적인 교통 발달로 호랑이 담배 피우든 동화처럼 전설 속으로 묻혀져 간다. 불과 반 백년 전 그 시절에만 해도 꿈에도 생각 못할 순수 혈통이 오염되어 흐려져 가고 있다.

  여든을 바라보시는 어머니가 내세우시는 최고의 무기는 양반의 후손이라는 자존심 하나 뿐이다. 우리나라 4대 성씨에 들어가는 집안의 후손으로 우리 가문의 귀신으로 되신 후에도 맏 종부로서 집안의 교육 방침은 양반으로서의 행동거지 말씀으로 일관하셨다. 특유의 대쪽같은 꼿꼿한 성격으로 양반의 후손답게 언행을 조심하라며 그걸 앞세워 어릴 때부터 우리 남매를 닥달 하셨다. 양반의 후손이라는 단어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으면서 자랐기에 양반의 ‘양’ 자만 들어도 얼굴이 찡그려 질 정도다.

  외갓집은 고향과 지척에 있다. 우리나라 지도를 펼치면 호랑이가 황해를 향해 포효하는 모습이다. 척추 같은 백두대간의 중간 허리쯤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깨알 같은 점으로 찍혀있고 같은 굵기의 아주 작은 글씨의 지명이 반갑게 눈에 와 닿는 전형적인 시골이다. 교통기관 이라고는 중앙선 상. 하행 열차 밖에 왕래만 하던 시절에 고향을 가려면 외갓집이 있는 시골 역에 내려야 한다. 역전 광장을 지나 마을 입구에 제법 이끼가 낀 기와집이 있다. 이곳이 제일 큰 외갓집이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큰집이다. 방학 때면 어머니와 꼭 찾는 고향길이다. 어머니와 들러서 할아버지에게 큰 절로 단정하게 인사를 올려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사랑방에서 장죽을 물고 요즘 텔레비젼에서나 볼 수 있는 정자관을 쓰신 큰 외할아버지께서는 양반의 체통을 뽐내시듯 수염?! ? 쓰다듬으시며 인사를 받으신 후 반가이 맞아 주셨다. 어린 마음에도 정자관 쓰신 근엄한 모습은 뵐 때 마다 주눅이 들었다. 내어놓은 과일과 먹음직한 음식에 손도 대보지 못하고 곶감이나 한개 집어 들고 뒷걸음으로 어머니를 따라 나서곤 했다. 어머니에게는 큰아버지도 반가우시지만 친부모에 비할 바가 아니다. 마음 급한 어머니의 발길은 마을 중간쯤에 자리한 본가인 친정으로 내 달렸다. 전화나 통신 시설이 없던 그 시절에 딸과 외손자가 온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대문 앞까지 달려 나온 외할머니와 식구들의 환송에 묻혀 집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튿날이면 마을 제일 위쪽에 사시는 어머니의 숙부 댁을 찾는다. 집성촌은 아니지만 삼형제 분이 한마을에 사시는 탓으로 외삼촌 형제분들과 그 분들의 자제 분이신 사촌들 모두가 나이가 한두 살 이나 몇 달 차이로 사촌간의 형제 서열이 정해져서 서로 호형호제라 부르라며 형과 제를 구분하기 어려운 비슷한 또래 들이다. 지금은 외할아버지 삼 형제분들 모두가 천수를 누리시고 하늘나라에서도 아래 윗마을과 가운데 동네에 자리 잡고 생전처럼 다정하게 사실 것이다. 팔순을 바라보시는 어머니의 형제와 사촌 되시는 분들 모두가 아직도 정정하시다. 이번에 팔순을 맞으신 사촌 오라버니는 아들 삼형제에 딸 하나를 두신 분이다. 열 아들 보다 딸 하나가 더 낫다는 속언을 증명이나 하듯이 이 딸이 무궁화가 다섯 개나 피어있는 호텔에서 아버지의 팔순 잔치를 연다는 초청을 받았다.

  이십년 하고도 반 십년 더 넘은 세월이다. 지난날을 곱씹어 본다. 당시만 해도 국제결혼을 한다면 시골 마을이 발칵 뒤집어지는 빅 뉴스였다. 도시로 공부하러간 딸이 양공주가 되어 코쟁이와 산다고 별의별 소문이 난무했다. 미국인과 정식 결혼을 한다는 딸을 믿는 부모들도 소문에 휩쓸려 서양 도깨비에게 홀린 것처럼 반신반의했다. 하루가 다르게 퍼져나가는 소문에 가슴속은 마당 끝 거름더미처럼 썩어만 갔다. 그렇게 초가삼간에 붙은 불처럼 순식간에 번지든 소문을 순식간에 불식시켰다. 국제 결혼한 딸이 친정에 논밭도 사주고 초가집을 번듯한 양옥집으로 고쳐지으며 온갖 최신식 전자제품으로 친정집을 도배했다. 코쟁이 사위가 굴지 기업 이사로 눈이 확 띄게 엄청난 경제적 지원을 했다. 손바닥만한 시골에서 양키 사위 잘 봐서 일약 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으로 동네 모?! 寬? 부러워하는 집으로 뒤집혔다. 양공주의 도깨비 같은 사위가 선망의 대상으로 일약 스타가 된 것이다. 이 스타 사위를 외갓집 집안 친지들과 동네 사람들은 미국 사위라며 ‘미 서방’으로 통했다. 거기다 이국 객지에 나와서 제일 고생한 영어 단어가 헬로우가 아닌가. 남여 노소를 막론하고 불러 젖히는 ‘헬로우’ 를 붙여 ‘헬로우 미 서방’ 이라 불렀다. 별명이 아니라 그럴싸하게 딱 맞는 호칭이다.

  어머니가 그렇게 자랑하시던 양반의 후손이라고 내세우셨던 것이 헬로 미 서방 때문에 할말을 잃으셨다. 걸핏하면 양반의 후손이라고 큰 소리 치시던 그 기세가 풀이 꺾였다. 이세들은 황색에다 흰색을 섞으면 어떤 색이 될까. 때문에 어머니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낸 ‘헬로 미 서방’ 을 여태껏 탐탁하게 생각을 안 하셨다.

  잔치 분위기는 밴드 가락을 탄 노래 소리가 냉방기가 무색 하리만큼 실내를 덥히면서 무르익어 갔다. 오랜 한국생활에 젖은 ‘헬로 미 서방’이 불러 제치는 대중가요의 가사 발음이 완전한 원음이다. 어느 나라 말이 원음인지 분간이 안 간다. 여기저기서 앵콜의 환호가 요란하다. 인사성 밝은 ‘미 서방’이 원음의 발음으로 ‘큰 고모님, 큰 고모님’ 하고 부르며 살갑게 대접한 탓인지 어머니의 쌓였던 마음이 좀 풀렸나 보다. 옆에서 곁눈으로 바라보니 얼굴이 많이 밝아지셨다.

  “이제는 양반 상놈이 없는 기라, 돈 많으면 다 양반인 세상인기라”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고, 여자는 시집을 잘 가야 돼”

  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야 된다 며 돌아오는 차 속에서 혼자 말처럼 중얼 거리신다.

  “미국 사람에게 시집간다고, 상놈이라고 그렇게 싫어하며 흉보더니 그런 말씀을 다하시고......”

상처 받은 당신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려는 듯 옆 자리의 고명딸이 비수를 꽂는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이고, 국제 시대 아이가, 가가(조카딸을 지칭) 시집 갈 때 시대와는 다른 시대 아이가”

  “호강도 하고 미국 구경도 하게 나도 코쟁이 사위하나 더 봤으면 좋겠다”

  “없는 딸 언제 만들어서 미국 사위 보겠노, 꿈 깨시와요”

  옆 자리의 딸이 핀잔의 기름을 계속 붓는다.

  “그러 길래, 살아 있을 때 너 하나 라도 잘 해라”

  전운이 감도는 모녀간의 대화를 감지한 앞좌석의 며느리가 끼어들어 중재를 한다. 

  “어머님은!, 고모도 잘 안 합니껴, 고모부도 미국 사위 못잖고..... 그만큼 하면 딸 노릇 잘 하는 거 아입니껴”

  할말을 잃은 어머니가 허공에다 소리친다.

  “내가 무슨 말 하드나........“

  “너도 막내 며느리는 코쟁이 여자로 봐라...........” 

  양반도 배달민족의 혈통도 돈 앞에 소리없이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