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흥(興) / 도꾸도미 로까
1.
열두 살 되던 여름에 교오또(京都) 도가노오의 절에 피서를 간 일이 있었다.
절 아래에 한 줄기 맑은 시내가 있었고 시내 한 곳은 남빛을 모아 소(沼)를 이루고 있었고 소 위에는 바위가 내밀고 있었다.
햇빛 따가운 한낮이면 두 셋의 또래와 가까운 마을에 가서 수박을 사다가 이것을 계류에 식힌다면서 혹은 바위 위에서 그것을 안은 채 물 속으로 뛰어들기도 했고, 혹은 서로 빼앗으려고 물을 튀기면서 거칠게 얽혀 돌아가면 소는 백설을 비등시켜 셋의 눈을 가리고 몰래 녹옥(綠玉)덩이를 빼앗아 뜨며 가라앉으며 흘려보냈다.
너무나 다투다가 수박이 깨지면 제각기 그 한쪽씩을 헤엄치면서 먹었다. 태반은 수박이 아니라 물이었다. 절의 스님들은 우리를 물개새끼들이라고 말했다. 참으로 물의 개구쟁이들이었다.
2
누님의 집은 도깨비불이 벌겋게 타는 바닷가에 있으며 아마구사에 가깝다. <중략 >
강촌의 팔월, 마침 농어의 살이 오르는 계절. 친척 지우 3, 4명이 한척의 작은 배에 낚싯대, 냄비, 솥, 쌀, 그릇, 간장 등 이것저것을 주워 싣고 바다로 나갔다.
해는 뜨겁지만 물 위에 미풍이 분다. 조용한 섬 그늘에다 배를 멈추고 제각기 대를 드리운다.
사공의 낚시에는 척에 가까운 도미 한 마리, 농어 작은 것 대여섯 마리가 올라오는데, 아마추어인 우리 바늘에는 이따금 잡고기나 걸릴 뿐이니 분하기 짝이 없다.
이미 정오에 가깝기 때문에 저편에서 낚시질을 하는 어선을 불러 큰 농어를 사서 배를 섬 가의 소나무에 매고 사공이 밥을 짓는 동안 팔을 베고 몸을 뱃전에 눕힌다. <중략>
밥과 국은 주발에 담고, 회는 큰 접시에 수북이 쌓아 간장을 공기에 담아냈다.
소금물로 일은 밥은 짭짤해서 도리어 맛이 좋았으며, 사공이 녹슨 부엌칼로 도미며 농어를 덤벙덤벙 썰어 낸 회는 대목의 손도끼에서 튀어나오는 나무쪽보다도 굵었지만 맛은 그만이었다.
3
어느 날 밤, 머리가 뜨거워 잠들 수가 없어서 뜰을 돌아다녔다.
검은 나무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달빛은 푸른 비와 같고 벌레소리가 사방에 들렸다.
우물가에 이르러 두레박의 줄을 당기니 달은 두레박 속에 흔들리고 있었다.
입을 대어 달빛을 마시고나서 남은 물을 따르니 달빛이 폭포같이 철철 땅에 떨어졌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다시 또 한 두레박, 다시 한 두레박, 세 두레박이나 물을 쏟고 그래도 한 동안 벌레소리와 나무 그늘 속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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