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검색 중 / 전희숙
요즘 컴퓨터가 이상하다. 종종 한글이 먹히질 않거나 화면이 까맣게 꺼져버리곤 한다. 미루어오다 오늘은 큰맘 먹고 고쳐보기로 마음먹는다. 백신프로그램에 접속하여 바이러스 검색을 신청한다.
“바이러스를 검사합니다. 환경에 따라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검색되는 폴더와 파일명, 검사된 파일 수 그리고 확인된 바이러스 등을 알리는 글자와 숫자가 빠르게 바뀌어 나간다. 컴퓨터의 어느 파일 무슨 폴더가 잘못되었는지 검색하는 중이다. 저 혼자 바삐 움직이는 컴퓨터를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사람에게도 이런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어느 마음 무슨 생각이 옳지 않은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치료 백신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그릇된 마음을 바르게 고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으니 마음이 뒤죽박죽이다. 나의 속에 나도 모르는 내가 참 많다. 세상과 이리 저리 부딪히며 울고 웃는 나의 모습이 낯설다. 때로 믿어지지 않아 어안이 벙벙해지곤 한다. 그 뿐 아니라 수많은 내가 치열하게 서로 다투기도 한다. 그 다양한 변화와 기복은 입체 영화를 보는 것처럼 어지럽고 아슬아슬하다.
그저께는 우쭐하고 잘난 척하는 나를 만나 얼굴이 뜨거웠다. 온종일 부끄럽고 창피하여 흔적 없이 사라질 수 있기를 바랐다. 어제는 유치하고 충동적인 나를 만났다. 기겁을 하고 그런 나를 달래고 진정시키느라 애를 끓였다. 놀란 가슴은 늦은 저녁까지 두근거렸다. 오늘의 나는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잔뜩 주눅 들어 있다. 허우적거릴수록 우울의 늪으로 더욱 빠져든다.
이렇듯 한 번 시작된 망상은 매번 극을 향해 치닫기 일쑤이다. 그 때마다 어떻게 이런 나를 수습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정말 컴퓨터 안에 머리를 들이 밀고 부탁하고 싶다. 어수선한 사고와 정서를 가지런히 정돈하여 달라고 말이다. 잘못된 부분을 검색한 후 수정하거나 삭제하는 치료를 하여 다시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고단한 삶의 때에 찌들 때마다 치료를 받고 항상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컴퓨터를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를 펴던 나는 ‘아하’ 하고 무릎을 친다. 나에게도 컴퓨터 부럽지 않은 훌륭한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 곁을 지키는 좋은 사람들의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의 다정한 미소를 떠 올리는 순간 밝은 햇살이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운다. 가슴 깊은 곳에서는 맑은 샘물도 퐁퐁 솟아오른다. 지금 내 안에 무엇인가 활발히 작동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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