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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말 많을 절 / 윤명희

 

龍龍

龍龍 / 윤명희


말을 많이 한 날은 왠지 속이 텅 빈 것처럼 마음이 허전하다. 내 속의 무언가를 다 끄집어 내 버린 듯해서 기분마저 가라앉는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많은 얘기를 할 때가 있다.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은 날은 가슴속이 꽉 차게 느껴지지만 나 혼자 떠든 것 같은 날은 찬바람이 휭 하니 지나간다.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은 왜 했을까?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기에 내 자신만 책망 하게 된다. 나는 말을 좋아하면서도 싫어한다.

옥편을 뒤적이다 획순이 가장 많은 글자는 무슨 자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획순 따라 뒷면을 펼치니 총 획수가 64획이나 되는 ‘말 많을 절’이라고 나와 있었다. 용(龍)자가 네 개 붙어 있는 글자이다. 용(龍) 한마리만 해도 획수가 많은데 위 아래로 포개듯이 네 마리나 있으니 획수가 좀 많겠는가. 그런데 왜 용이 네 마리 있으면 말이 많을까?

 용은 임금을 뜻한다. 용이 넷이나 되니 서로 임금이라 자칭하게 되고 자연 말이 많아 시끄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네 마리의 용은 각각 제 위치가 있다. 같은 용이지만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 차이가 나지 않을까? 위에 있는 것과 아래에 있는 용이 다를 것이고, 왼팔인지 오른팔인지를 따지는 입장에서 보자면 같은 위에 있더라도 왼쪽과 오른쪽은 다를 것이다. ‘말 많을 절’ 자(字)안에는 같은 용이지만 네 가지의 계급이 존재한다.

글자 안의 용들이 꿈틀거린다. 서로 더 나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물고 뜯는다. 서로를 비방하고 모함하며 모두 제가 가장 잘났다고 내세우기에 바쁘다. 남의 얘기는 들으려 하지도 않기에 나와 상대를 비교 할 수도 없다. 단지 내가 아니면 안 될 뿐이다. 그 글자 안에는 말만 많은 것이 아니라 욕심도 많다. 다수를 위해서라는 대의명분 속에 감춰진 내 욕심을 조금도 버릴 수가 없다. 한 치의 양보도 용납 할 수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진정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능력을 누가 더 갖추고 있는지 우선 차근차근 따져 볼 일이다. 나보다 더 나은 한 마리의 용에게 선뜻 여의주를 넘겨주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남은 세 마리의 용이 그 자리에서 물러나 추천된 용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준다면 아마 그 글자는 처음부터 ‘말 많을 절’자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용(龍)이라는 글자는 하나일 때 빛이 난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결코 용이 될 수가 없다. 그저 ‘말 많은 절’자에 불과한 것이다. 말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용은 모습만 용일뿐 이무기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신을 용이라 하겠지만 멀리서 보는 우리는 그들이 말 많은 한 무리 일 뿐이다. 여의주를 잡기 위해 몸부림치는 용들로 인해 그 글자는 지금도 복잡하다.

좁은 내 생활의 테두리 안에도 작지만 용의 자리는 있다. 네모난 낙관(落款)처럼 생긴 ‘말 많을 절’자를 가슴에 찍으며 내가 그 속에 들어가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한 마리의 용 뒤에서 비록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