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情) / 조재환
우리 집에 개 모녀가 있다. 도시의 다닥다닥 붙은 주택에서 커다란 개 두 마리를 키우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좀 억지이다.
대문밖에 사람만 얼씬 거려도 두 마리가 한꺼번에 짖어대니 이웃 사람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나에게도 소음이다. 거기다 하루에 나오는 배설물이 얼마인가. 아무리 냄새를 없애는 사료를 먹인다하지만 살아있는 동물의 뱃속을 거쳐 나온 것이 어찌 맹물이고 무취의 돌멩이 같으랴. 여름은 더하다. 그리고 또 있다. 털갈이 할 때는 말할 것 없고 평소에도 빠져 집안에 날려 다니는 털을 좋게 볼 수 없다. 우리식구들은 개털을 먹어도 한참 많이 먹었을 것이라고 방청소를 할 때마다 아내는 푸념한다.
나 또한 개를 좋아하지 않았다. 두 아이가 자라 우리 품을 떠나가니 집안이 너무 조용해서 식구도 늘일 겸 한 마리 키웠다. 개는 역시 부족하지만 아이 역을 대신했다. 또 키우고 새끼를 몇 번 빼 보니 새로운 생명에 대한 사랑 말고도 저절로 생기는 욕심이 하나 있었다. 생김새와 털색 그리고 성격까지 좀더 좋게 만들고 싶은 욕심이었다. 음양의 이치로 애비에 따라 까맣고 희게 태어나는 강아지에서 오묘한 섭리를 새삼 느꼈다. 이런 것으로 두 아이가 집에 돌아와도 개 기르기를 중단할 수 없었다.
잘 생긴 수컷에서 씨를 받았다. 그리고 눈뜨기 전부터 봐 두었던 새끼 한 마리를 젖이 떨어지고도 계속 키웠다. 더 좋은 것에의 갈망에서 어미 개를 대신할 세대교체용이었다. 그러나 새끼가 자라서 어미 개를 처분할 때가 되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든 정을 끊을 수가 없었다. 차일피일 미루는 동안 새끼가 자라 어미 개가 되었다. 좁은 마당에 두 마리가 뛰고 다녔다. 성가셨다. 내 욕심과 우유부단(優柔不斷)이 흥부네 같이 식구만 늘렸다.
개도 같이 살아보면 주인의 감정을 안다. 화장실에라도 갈라치면 뒤따라와서 문 앞에 머리를 바깥으로 두고 앉아있다. 외부의 적으로부터 주인을 지키려는 모양새다. 그러나 개에게도 역시 경륜이 필요한 것인지 새끼 개는 몸집은 이미 어미지만 행동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왔다가는 금방 떠난다. 또 젊어서 일까. 천방지축이다. 집안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단지뚜껑을 깨고 현관문이 열렸으면 마루에 올라와 흔적도 남겼다. 그놈도 이제 다 켰다고 자기 영역을 표시하려던 행동이었다.
어미 개는 새끼의 배설물을 받아먹는다. 그 뜨거운 모정도 젖을 땔 때쯤이면 식어져서 다른 개체로 인식하는 듯 했다. 그렇게 아끼던 새끼를 귀찮아하는 모습이 역역했다. 정도가 점점 심해져갔다. 그래도 유심히 보면 어미의 공격에는 힘이 실리지 않았다. 귀찮게 구는 새끼에게 위협만 주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새끼는 자랄수록 달랐다.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옛날 처첩(妻妾)의 암투같이 새끼는 주인의 사랑을 두고 어미와 그렇게 했다. 그리고 정은 가까이 있는데서 생겨난다는 것을 터득이라도 했는지 힘으로 어미를 밀어내고 항상 주인 곁에 지가 앉았다.
당초의 생각도 그것이 아니었지만 어미 개 두 마리를 키우는 내 억지를 더는 부릴 수 없었다. 날씨 더워지니 뒷집에서도 불평을 했다. 담장너머로 날아가는 개털과 냄새에 충분히 그러만했다. 이웃간의 정이 그것으로 나빠져서는 될 일이 아니었다. 나는 정 떼기가 쉽지 않겠지만 이차에 한 마리 없애기로 작정했다. 그러면 어느 놈을 처분할까. 처음 새끼를 키우려고 했을 때는 분명 어미 개를 없애려고 마음먹었었다. 그러나 이제는 좀 다르다. 다시 고민을 해야 했다.
새끼 개는 그간 몇 번의 번식 끝에 내 눈으로 골란 놈이었다. 확실히 털빛과 체형이 어미보다 좋다. 그리고 젊다. 이놈을 교배시키면 좋은 강아지를 생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역시 좋은 씨를 선택해서 더 좋은 강아지를 생산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하기위해서 또 처음의 생각 되로 어미 개를 선뜻 팔수가 없었다. 오래도록 키웠던 정 때문만이 아니었다.
흔히 우리 전통춤은 춤사위 때 살짝살짝 보이는 버선코나 겨드랑이 아래의 속살같이 보일 듯 말 듯 하는 것이 매력이라고 한다. 나도 강열한 원색보다는 은근한 파스텔 톤이 더 좋다. 그러나 개에게 주인의 이런 마음을 알아주기 바라는 것은 억지다. 그렇지만 밖에서 돌아오면 앞발을 내 가슴에까지 올리고 꼬리를 요란스레 흔드는 새끼보다 한 발 떨어져서 살래살래 흔드는 어미가 좋았다.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 하려는 심보도 싫었다. 무엇보다 그 촐랑대는 것이 미덥지가 않았다.
고민 끝에 처음의 내 생각을 바꾸었다. 나는 우리 집에 키울 개로서 어미 개를 선택했다. 더 잘난 강아지를 생산해 보려는 사육가의 욕심을 버렸다. 젊고 잘 생겨서 버리기가 아깝고 불상하지만 모두가 지 자업자득이었다.
나는 “개파”라고 골목골목 외치며 다니는 개장수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새끼 개는 나에게 매달리며 전과 다름없이 꼬리가 떨어질까 겁이 날 정도로 요란스레 흔들었다. 그리고 그 마주하는 눈길이 주인의 사랑을 갈구하는 듯 또 애원하는 듯 파란 빛이 더욱 진하다. 너무 진해서 내가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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