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형 인간 / 성병조
나는 누가 뭐라고 해도 아침형 인간이다. 그것도 보통 생각하는 그런 부류의 아침형이 아니라 남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좀 유별난 아침형 인간이다.
‘새벽 네 시 기상, 화장실, 세차, 조깅, 신문 읽기나 독서, 아침밥 준비, 세면, 식사, 출근...’
아마도 저녁형 인간이라면 무슨 요술 같은 이야기쯤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사십년 넘게 유지해 온 자랑스러운 이력인 걸 어쩌랴. 사실 이런 습관을 기르게 된 것은 우연한 일도 아니요, 그저 굴러 들어온 복도 아니다.
중학교 다닐 때의 일이다. 나는 무려 삼십 리나 되는 먼 길을 꼬박 이년동안 자전거로 통학하였다. 지금처럼 잘 포장된 도로가 아니라 온통 자갈만 깔린 미끄럽고 먼지투성이인 시골 국도였다. 힘껏 페달을 밟아도 오십여 분이 족히 걸리는 먼 길은 어린 내게 무리였다. 집에 돌아오면 저녁 숟가락 놓기가 무섭게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정신없이 자다 눈을 뜨면 또 등교할 시간, 도무지 집에서 공부할 틈이 생기지 않았다. 잠자리를 함께 하는 할머니에게 아무리 당부해 두어도 곤히 잠자는 손자를 깨우기가 안쓰러웠던지 그냥 지나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때마다 나는 할머니에게 투정을 부리고 마구 원망을 퍼부었다. 워낙 강하게 패악을 지기는 어린 손자의 간청을 뿌리치기 힘들었던지 할머니는 차츰 나를 깨우기 시작하였고, 그 때부터 새벽 네 시는 나의 기상 시간으로 조금씩 자리 잡혀 나갔다.
지금은 네 시에 일어나지 않는 것을 상상하기조차 힘들어졌다. 평소 일어나는 시간보다 조금 늦게 누워 있기라도 하면 허리가 아파온다. 특별한 저녁 행사가 없으면 보통 열한 시 가까이 잠자리에 드니 다섯 시간가량 수면을 취하는 셈이다. 하지만 잠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거의 갖지 못했다.
중학교 이학년 때 체육선생님이 나에게 준 교훈은 참 컸었다. 건강 유지법 중 제일은 ‘먹고 자고 싸고’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라는 말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즉, 적당하게 골고루 지정된 시간에 먹고, 일정한 시간에 알맞은 수면을 취하며, 눈을 뜸과 동시에 화장실에 들려 완전 배설을 하면 항상 건강한 신체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하였다. 우선 눈을 뜨면 화장실에 가는 버릇부터 길렀다. 새벽 네 시가 가까워 오면 배가 더부룩하고 화장실에 가고파 더 이상 누워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발전하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조간신문을 열심히 읽는 것도 아침형 인간으로 가는데 도움이 되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을 들릴 때 뭔가 읽을 게 없으면 어쩐지 허전하다. 신문을 들고 화장실에 가면 여러모로 효율적이다. 넉넉한 시간동안 충분히 배설할 수 있으며 누구보다 빠르게 생생한 뉴스를 접하는 즐거움을 동시에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새벽에 일어나 출근할 때까지 하는 일은 거의 기계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자칫 하나라도 소홀히 지나쳐 버리면 뒷일들이 헝클어져 혼란이 가중된다. 화장실을 들리지 않았다거나 신문을 읽지 못해도 신체의 리듬을 잃은 것처럼 부자연스럽기 그지없다. 남의 집에서 잠잘 경우에는 미리 화장실 위치를 파악해 두며, 우리 집에 손님이 많이 왔을 때도 내가 새벽에 움직일 수 있는 동선을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나의 이 같은 별난 버릇에 혹자들은 혀를 내두를지 몰라도 아침형 인간으로 정착된 내 모습에 대한 자부심은 언제나 한결같다.
성실함과 건강, 그리고 보람된 생활의 근본이 바로 아침형 인간에서 비롯된다는 평소 나의 지론에 추호의 흔들림도 없다. 아침형 인간, 이것은 지금껏 그래왔듯이 내가 앞으로도 꾸준히 계승 발전시켜가야 할 최고의 덕목임을 굳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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