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터널/임정희

 

터널 / 임정희

 

 

 

고속도로로 달리던 차가 갑자기 터널 속으로 빨려든다. 터널 속 전등불빛이 허공으로 뻗은 레일처럼 나와 함께 평행선으로 달린다. 얼마 후에는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보면 분명히 미래로 가고 있다. 왼쪽 차선으로 달리는 머리 위의 불빛은 현재의 길이요 오른쪽 차선 위의 불빛은 근래로 향하는 길이다.


80년대 초 에어컨도 없는 차를 타고 동해안으로 여름휴가를 다녔다. 한여름 폭염에서 창문을 내리고 달리면서 아스팔트의 달궈진 복사열을 그대로 들이킨 셈이다. 연신 부채질을 했지만 아이들을 껴안은 차 속은 찜통이었다. 울산 바다에서부터 포항, 울진, 강릉과 주문진을 경유해 군사분계선 너머 자유의 집까지 동해안 도로를 타고 누볐다.

가는 길에 교통체증에 걸리면 후끈 달아오른 차도 복판에 발이 묶인 채 비지땀을 흘리며 견뎠다. 그런 와중에 동해의 푸른 바다를 보고 감탄했고 하얗게 밀려오는 파도가 손 저어 환호했다. 민박을 구하지 못하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텐트 속에서 무더운 여름밤을 보내기도 했다. 움직일 때마다 고생을 사서 하였건만 휴가였다는 것만으로 뿌듯하였으니 젊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으리라.

가장의 나이가 쉰을 훌쩍 뛰어넘자 아이들도 제 혼자 생활할 수 있을 만큼 성큼 자랐다.  이제 저들만의 세계가 있기에 부모와 함께 여행하려 하지 않았다. 부부만의 나들이가 되었다. 남편은 중년이 넘자 신혼 초부터 즐겨오던 낚시를 중년이 넘자 약해진 건강을 보살핀다며 산행으로 바꾸었다. 생업의 흥망성쇠에 따라 차 기종도 몇 차례 바뀌었고 집도 여러 번 옮겨 다니게 되었다. 어두운 터널을 여러 개 지나는 동안 성향이 바뀌어 바닷물에 몸을 적셔본지 오래 되었다. 그 성향 중의 하나는 바닷가에 와도 파도구경만 하는 나태였다. 오늘은 그 귀찮음을 이겨보고자 작정하고 바다를 찾았다.

해변의 탈의실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해수욕장을 향하여 모래밭에 들어섰다. 모래는 삶의 매운 맛처럼 무척 뜨거웠다. 맨발로 물가까지 가기 위해서는 중간에 쳐진 천막 그늘에 뛰어들어 발을 식혀가며 달려야 했다.

원색의 비치파라솔이 텐트와 함께 해안선을 따라 바다를 향해 넘실넘실 진을 치고 있다. 멀리 수평선에서부터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물가에 앉은 사람들을 비집고 물에 들어섰다. 바닷물은 삶의 배신처럼 몹시 차가웠다. 놀라 멈춰 선 발바닥 밑에서 파도에 쓸려 가는 모래가 사람사이에서 무너지는 신뢰 같다. 모래가 스르르 빠져나간 자리에 움푹 구릉이 생긴다. 순간 몸이 움찔하여 얼른 중심을 잡는다. 생의 전선으로 발을 들여놓듯 물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물이 점점 상체를 향하여 목까지 넘쳐 오르자 팔과 다리를 휘저어 헤엄을 쳤다. 위기에 처하면 누구나 반응하게 되는 당연한 몸부림이다. 무심코 북적이는 사람들 틈을 벗어나 파도를 거슬러 바다 쪽으로 헤엄쳐갔다.

“나가세요, 그리로 들어가면 안 됩니다.”

그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렇지 사람들의 모든 행동에는 적당한 한계라는 선이 있다. 돌아보니 검정 고무보트에 앉은 구조요원이 해수욕장의 질서를 세우느라 연신 호각을 불어대고 있다. 그 옆에 하얀 스티로폼 부표들이 이쪽과 저 쪽의 경계를 지으며 물 위에 둥둥 떠 있다. 둥근 스티로폼 너머에는 감청빛 바닷물이 넘실댄다. 사람들이 와글거리는 물가 쪽을 바라보니 물속에 모래가 일어나 물이 온통 벌겋다. 흡사 어지러운 세상의 모습이다. 물기 맺힌 수경을 당겨 물모자 위로 들어 올리고 물속에 우두커니 섰다.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왔다 사라지는 생성과 소멸을 바라본다. 비로소 저런 곳에서 비바람의 고초를 겪으면서 아등바등 살아내는 것이 젊음이란 것이구나 싶다.


차는 다시 터널 속으로 빨려들었다. 여전히 천장의 한쪽 불빛은 몇 시간 전의 바닷가로 달려가는 길이고, 현재 달리고 있는 차선 위의 불빛은 바다라는 우주에서 집이라는 지구로 돌아가는 길이다. 차창 앞으로 저 멀리 보이던 작은 출구가 점점 커진다. 출구는 수 억 광년 저 쪽에서 달려온 별 빛보다 수억 배나 밝은 한 덩어리의 빛으로 다가든다. 순식간에 반원형 액자 속에서 초목 우거진 풍경이 불쑥 튀어나온다. 그 대자연 속에 내 몸이 풀쩍 뛰어든다 싶더니 품 넓은 하늘이 훤히 열렸다. 광명천지가 따로 없다.

한 생을 살면서 어두운 터널을 종종 지나가게 된다. 생각해 보면 흔적으로 남은 과거도 한순간에 이루어졌고 다가올 미래도 한순간에 도착한다. 내가 원하든 아니든 호흡도 고르지 못한 채 현재에게 자리를 내주고 곧바로 과거로 내몰린다. 억겁의 세월 속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한 덩어리로 굴러가는 찰나인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가끔 현실에서 부딪히는 절망이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침잠했다.

삼복더위를 참지 못해 헐떡이는 육체처럼 불의 앞에 분노하고 미움으로 속을 끓였다. 때로는 가정이나 사회에서 감내해야 하는 작은 일들이 억압 같아서 일탈을 꿈꾸기도 했다. 그렇게 섣부른 사람이라 터널처럼 짧은 시간에 지나가는 고통을 삶의 한순간이라 여기지 못하고 아직도 버둥거리기만 한다. 삶의 모난 구석을 아름답게 껴안는 일에 수양이 덜된 탓이리라.

사람이 산다는 것은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올 때의 환희와 같은 미래를 추구하는 것이고, 그 노정에 있는 이 터널을 비틀거릴지라도 목적지까지 바로 걸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라. 05.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