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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권화송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권 화 송

 

 

 



‘친한 사이에는 여수하지 말라’고 한다. 친한 사람일수록 어려울 때 상부상조하는 것이 도리인데 여수하지 말라니?
아무리 친해도 돈을 그저 줄 수는 없는 일, 빌린 쪽에서 생광스레 잘 쓰고 원금을 갚으면 문제는 없지만 사람 마음이 화장실 갈 때 다르고 올 때 다르므로 쉽게 갚지 않을 때는 친함도 소원해지고 척이 져서 결국 친구 잃고 돈 잃는 꼴이 되기에 생긴 말이다. 여유가 있는 빌려준 쪽이 채권을 포기하고 전과 같이 친하게 지내고 싶어도 빌린 쪽은 빚진 죄인이라 친구를 피하게 되므로 일방적으로 후의를 베푼다 해도 전과 같은 관계는 지속되지 않는다.
학창시절, 같이 하숙하는 룸메이트가 내게 쓰고 남은 돈이 있는 줄 알고 빌려달라고 했다. 용돈을 아껴서 책 사려고 모아둔 요긴한 것이었지만 한방에서 같이 지내는 고교 동창인 친구가 간청하므로 거절할 용기가 나지 않아 빌려주고 말았다. 그는 좀처럼 갚으려 하지 않고 무심했다. 마음이 약한 나는 돌려달라고 채근도 못하고 속만 끓였는데 그는 몰래 어디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 후로 오늘날까지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결혼 후에 처가에 다니러 갔었는데 친구 한 사람이 시골 우리 집에 왔다가 내가 처가에 간 줄 알고 그 먼 곳까지 찾아와서 돈을 빌려달라고 애원했다.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 급전이 얼마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오죽했으면 남의 처가에까지 와서 조르는가 싶었다. 부모를 잘 만난 덕으로 의식 걱정 않고 지내는 나를 믿고 찾아온 친구를 실망시킬 수 없었다. 며칠 후에 그가 요구하는 금액의 반을 빌려주었다. 그가 갚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좋은 일 해놓고 괜한 신경을 쓴다 싶어서 잊기로 했다.
한 10년 지나서 동창회 모임에서 만난 그 친구는 옛날의 빌린 돈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이라도 갚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내 의사를 타진했다. 나는 까아맣게 잊은지 오래 된 일을 새삼스리 뭐 그럴 것 있느냐며 사양하고 말았다. 그 후로 그와 나 사이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우의는 지속할 수 있었으나 그렇다고 가까워지지도 않았다.
금전거래가 극히 어려운 것은 친근한 남녀 사이다.
내 지인(知人) 중 한 사람은 점술가 여인과 의남매를 맺고 내왕하면서 어려운 가정사의 해결책이며 일년 신수도 물으며 우의가 도타웠다. 어느 날 의누나가 한달 지나면 갚을 수 있다며 돈 칠백 만 원을 빌려달라 했다. 중등학교 교사직을 한 지 얼마 안되는 그는 세상물정을 모르는 백면서생이었다. 그 역시 넉넉지도 않으면서 의누나 앞에서 자신을 과시하듯 쉽게 응하고 말았다. 우리의 풍토에서 남녀 간 금전거래는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일이다. 점쟁이 여인이라면 빙의(憑依) 들린 사람인데 빙의가 선신(善神)이라 단정할 수도 없다. 불순한 여인에게는 미인계라는 것이 있고 간계를 써서 어리석은 남자를 함정에 빠트릴 수단이 무궁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인은 돈을 고스란히 떼이고 깊은 고민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정신분열증에 걸려 얼마 동안 요양원 생활을 했다. 그 후 회복은 되었지만 혼자 중얼거리는 버릇이 있어 이상하게 보였는데 50을 넘기지 못하고 요절하고 말았다.
그 지인과 점쟁이 여인과의 내밀한 관계는 알 수 없지만, 술을 좋아하는 그가 취중에 여인의 유혹에 끌려 실수로 범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는 여인을 원망하기보다 스스로 자책하고 참회를 거듭하다가 스스로 옭아맨 깊은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고통에서 도피하는 길이 정신분열증이 아니었을까 싶다. 못난 자신을 학대하며 열등감에서 헤어나기 위해서 과대망상증까지 생긴 것일까? 광증이 일어날 때는 양팔을 내뻗치고 괴성을 지르며 손바닥에서 장풍(掌風)을 뿜는 시늉을 했다. 실수로 여인을 범했고 돈을 받을 길이 정녕 없었다면 일단 체념하고 본의는 아니지만 어려운 사람에게 보시한 셈치든지 하롯밤 도박판에 날린 셈치고 제 마음을 달랬으면 앞길이 열려 불행만은 면할 수 있었을 터였다. 너무도 꽁생원이었던 그는 끝내 자멸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여인 L은 50명이나 되는 회원을 리드하며 내게 각근하고 친절을 베풀었다. 그녀의 호의로 유일한 남자 회원으로서 낯가림을 타지 않고 의젓하게 몇 해 동안 여성 단체에서 함께할 수 있었다. 모임에서 청일점으로서 나의 소임은 풍물놀이 때, 꽹과리와 장구를 도맡았다. 운동경기 때, 풍물놀이로 단체응원상을 두 번이나 타는 등 이용가치가 인정되어 그녀는 나를 의도적으로 포용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그녀가 고마웠다. 겉보기에는 신심도 깊고 인격도 갖춘 듯한 그와 우의를 두고 지내는 것이 대견스러웠다.
그런데 어느날, L은 곤궁한 자신의 가정사를 털어놓고 세를 얻어 요식업이라도 경영해야 한다면서 잔금을 치를 돈이 모자라니 돈을 얼마 빌려달라고 통사정했다. 나는 친한 사이에 여수 끝이 뒤가 좋지 않음을 익히 알고 있었다. 남녀 간의 금전거래는 자칫 착각과 오해가 개입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대개 여성은 정에는 민감하지만 의리에는 어둡다고 하니 뒷일이 염려되어 거절했다. 하지만 그는 두세 번이나 애걸복걸 죽는 시늉을 하고 빌려주기만 하면 쓸개라도 빼어줄 듯 이상한 몸짓을 하며 매달렸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동안 그가 베풀어준 호의에 보답하고 남녀 간에도 우정을 지속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면 친구의 딱한 사정을 몰라라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만일의 경우 돈을 떼인다 해도 빌려줘야지 하며 그가 요구하는 금액의 반 정도를 빌려주었다. 차용증서도 없이 그의 은행계좌에 입금했다. 그러고 전화로 나의 계좌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형편이 되면 갚으라는 취지였다. 그가 갚는다면 서로를 위해 다시 없는 일. 못 갚아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마음 속 다짐이 되었던 것 같았다.
그 후 그녀는 이사를 갔고, 잘 다니던 길흉사마저 오가지 않으며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몇 해가 지난 뒤 어느날 중앙통 네거리를 건느는데 지나고 나서 얼핏 내 머리에 스치는 얼굴이 떠올랐다. 바로 그 여인이었다. 뒤돌아보니 그는 저만치 가고 있었다.
아무런 후회가 있을 리 없다. 내게 다른 미련한 생각이 있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가 되지 않는다. 단지 아쉬움이 있다면 내가 먼저 우정의 사후관리를 위해서라도 그녀를 찾아 내왕을 하면서 변함없는 우의를 살렸어야만 옳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