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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만 가지 걱정/조재환

 

만 가지 걱정 / 조재환

 

 



내가 못났지만 그래도 글 쓰는 사람이라고 친구가 편지 한 통을 보내왔다. 맞지 않을 문맥이나 좀 고쳐달라면서 보내 온 글은 “처형에게”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쓰여 져 있었다.

“우리부부가 비록 초혼에는 실패했어도 새로운 행복을 꿈꾸며 재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출발과는 달리 지난 4년은 불행의 연속이었습니다. 작은 일에도 부딪쳤습니다. 그때마다 양보하고 부부라는 틀에 금이 가는 내 마음을 스스로 다독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파경은 면했습니다. 물론 아내도 마음고생이었고 양보를 했겠지요. 그렇지만 아내자신으로부터 빗어진 일이었습니다. 이를 자세히 말씀드리고 싶지만 처형께서도 대략은 아실 터이고 또 나의 변명처럼 들릴 것 같아서 애써 하지 않으렵니다.

저는 작은 것이지만 오래도록 사업을 해왔습니다. 또 나름대로 사회활동도 했습니다. 이는 사람이 살아있다는 표시니 아니할 수 없지요. 이를 아내는 싫어합니다. 그러나 남자의 활동영역이 재혼을 했다고 축소되거나 달라져서야 되겠습니까? 제가 욕심이 많아서인지 가정과 처부모만으로 좁힐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가급적 아내와 충돌하지 않으려고 활동을 많이 줄였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줄여도 사업하는 제게는 버리지 못할 영역이 있습니다. 참석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모임이 있습니다.

  연말의 모임에는 부부가 함께 참석합니다. 모여 집사람들끼리도 우의를 다집니다. 그 친구들은 제가 재혼 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혼자 가겠습니까? 제 가정이 편안하지 않으니 일부러라도 함께 가고 싶습니다. 격이 떨어지거나 자주 가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내는 한사코 못가겠답니다. 우리 사이에서 난 세살짜리 아이 때문이라 합니다. 아이가 종일 외할머니 집에 있었으니 밤만은 엄마가 품어주어야 한답니다. 이를 저는 이해 못하겠습니다. 아내가 없다면 혼자 가지요. 그러나 그 사람이 아내의 자리에 앉아있는데 어찌 혼자 갑니까?

  아내가 모임에 안 가겠다는 것을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전 남편의 잔영으로 우리 부부관계를 아직 인정 않거나, 재혼한 자기의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기 싫거나, 무능한 남편으로 보이려는 계획된 행동입니다. 또는 셋 다일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제 재산 한쪽을 때어주면 달라지겠지요. 아내의 그간 언행을 보면 충분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를 돈으로 해결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백보를 양보한대도 적은 것 하나 때어서 믿고 맡길 수 없습니다.

  이것만 아닙니다. 재혼해서 사는 4년 동안 우리 집 가정부가 이십여 명이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자주 바뀐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또 어느 누가 나간 가정부를 욕하겠습니까? 잘 해 주어서 나갈리는 절대 없습니다. 물론 가정부관리는 아내와 장모님이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원성은 모두 가장인 나에게로 돌아옵니다. 듣기로 오래 사셔서 덕을 베풀어야 할 장모님이 더 했답니다.

  제게도 부모님이 다 계십니다. 또 제가 장남입니다. 그리고 형제들과 친척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부모님까지 제 집에 발길을 끊었습니다. 집으로는 전화도 하지 않습니다. 먼저 간 아내가 있을 때는 많이 오고 갔습니다. 집안에 온기가 돌았습니다. 그러나 재혼 후에는 제 자식 셋까지 따로 내 보냈습니다. 전처 자식으로 인한 아내의 불편을 덜어주려고 그래서 가정에 충실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 스스로 그랬습니다. 아직은 품고 있어야할 삼남매를 내보내는 애비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래도 다 감수했습니다. 오직 가정을 깨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그랬습니다.

  저도 이제 강해졌습니다. 지난 4년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더는 임시방편으로 우리가정 일을 처리하지 않겠습니다. 원칙을 세우고 실천할 것입니다.

  장모님이 우리 살림에 관여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세살짜리 아이는 가정부에게 맡기겠습니다. 마음대로 냉장고 문도 열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속옷은 아내가 직접 빨아야 합니다. 이렇게만 하면 가정부는 절대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또 지금까지는 처가(妻家)일의 거의 전부를 제가 책임졌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못 합니다. 처남도 있고 큰 사위도 있으니 저는 다섯 남매의 한 사람 몫만 지겠습니다.

  저의 이런 생각이 틀렸습니까? 이것이 보통사람의 상식에서 벗어나고 살아가는 도리에 어긋나는 것입니까? 조금이라도 그렇다면 제 생각을 바꾸겠습니다. 대신 틀리지 않다면 처형께서 제 아내에게 설득 한번 해 주시지요. 처형께 이 부탁을 드리는 것은 누구보다 믿어서입니다. 늦게 맺은 우리의 인연을 정말로 깨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그러나 그 선택은 이제 나에게 있지 않습니다. 처형의 동생에게 있습니다.”

옛사람들은 흔히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또 가진 것 없어도 마음 편히 살아가라고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이요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이라 했다. 그 비유는 오늘날도 다르지 않는지 친구는 참말로 만 가지 걱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열 가지 걱정도 안 된다. 그리고 또래가 모여 막걸리마시며 흥타령하고 산다. 이것만이 아니고 어디든지 가자고하면 밤중도 모르고 따라오는 아내가 있다. 속옷을 벗어서 던져놓으면 빨아서 수납장속에 차곡차곡 쌓아 놓고 술 먹은 아침에는 어김없이 콩나물국을 끊여주는 아내이다. 다만 나보다 가진 것이 많다. 또 내 자동차배기량은 그 친구의 반 남짓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