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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한 다발의 꽃을 꽂고 / 권오욱

한 다발의 꽃을 꽂고 / 권오욱

 

 

 

전철에서 내려 지하도를 올라가 입구 한쪽 모서리에 풍성하게 쌓여 있는 꽃묶음들을 본다.

시내에 나갈 때 나는 이미 그 앞에 한참이나 서 있었다. 빨강, 분홍, 노랑색 장미, 주홍빛 산 나리꽃, 흰백합, 옥색 카네이션, 패랭이꽃, 안개꽃---- .

가지각색 꽃내음이 무지개 색띠처럼 환하게 목구멍으로 물결져 들어와 명치 끝으로 몰려간다. 색깔도 다르고 모양도 다른 볓가지 꽃들을 한묶음씩 사서 다발로 안고 집으로 왔다.

택시를 타고 오는 동안, 그리고 내려서 걸어 들어오는 동안 나는 코끝을 꽃들에게 대고 깊이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연속적인 입 호흡 때문인지 꽃내음 때문인지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좀 어지러웠다.

집에 와 거실문을 활짝 열어젖혀 강바람을 쏘이며 내가 누드 군상을 그려넣은 아름드리 항아리에 꽃들을 섞어 꽃을며, 내가 얼마나 많이 변했는가에 나는 놀라고 있었다.

인천 결핵 요양원에서 일할 때의 일이었다. 오전 10시부터 12시가지 안정 시간이었는데 환자들이 거의 장기 입원인 데다 위급한 환자도 없는 곳이었으므로 그 시간에 나는 병원 정원으로 내려가 금잔화, 다알리아, 그라디올라스, 백일홍 등 꽃을 잘라가지고 와서 병에 꽃아 발코니 화분대에 갖다놓곤 했었다.

내가 국내에서나 외국에 나가 일해 본 병원 중에서 그곳처럼 자연 환경과 병원 건물이, 그리고 병원 내부의 구조나 꾸밈이 마음에 드는 곳을 보지 못했다.

발코니 앞면은 전면 유리여서 병실에서도 바깥풍경, 동산과 들을 건너 바다까지 환히 보였으며, 발코니 안쪽 벽에는 추상화 유화 그림들이 알맞은 간격으로 계속하여 걸려 있었으며, 병실과 병실 사이마다 화분대가 뫃여 있었는데 겨울에는 정원사 아저씨가 화분을 바꾸어가며 놓아주었지만, 꽃이 흔한 한여름 동안은 일년생 꽃들을 우리가 꺾어다 꽂아도 정원의 아름다움에는 손상이 없었다. 그때 나는 꽃병 하나에 꽃 한 대씩만 꽂아놓곤 했었다. 같은 꽃을 여러 개 꽂거나 종류가 다른 꽃을 함께 꽃는 일이 영 싫었다.

너느 환자가 그 이유를 물은 일이 있었다.

“미스 권은 왜 꽃을 하나씩만 꽂지요? 고독을 좋아하시나요?”

나는 그때 당황했었다. 당연히 꽃은 그렇게 꽂아야 한다고 스스로 오랫동안 여겨왔기 때문이다. 날 때부터 그냥 알고 있었던 듯.

“섞어찌개를 좋아하시나요?”

나는 그 환자의 물음을 농잠으로 되받았고, 함께 있던 다른 환자들을 웃기면서 위기를 모면했었다.

친구가 수간호사로 있는 반대편 병동으로 가보았다. 친구는 이것저것 꽃을 가능한한 많이 섞어서 구겨 넣듯이 삑삑이 병목을 세워놓았다.

무슨 일로 왔느냐고 친구가 물었을 때 나는 그냥 심심하여 들렸다고만 했었다. 그 뒤로도 나는 꽃을 섞어 꽂지는 않았다.

오직 한 송이 꽃일 때 꽃의 아름다움은 절정에 이른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그렇게 하는 일이 꽃의 순결을 지켜주는 것이며, 꽃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아름드리 항아리에 각색 꽃을 한 묶음씩 듬뿍 듬뿍 꽂고 있다. 그러면서 이 풍성함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온 집안이 금시 따뜻해지는 것 같다. 왁자하게 재잘대는 어린 목소리들이 집안 구석구석으로 뛰어가는 것만 같다. 몇 묶음 더 샀어도 충분히 다 꽂을 수 있었을 터인데 하고 나는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뉘우치고 부끄러워했다. 병원 발코니 화병에 꼭 한 가지씩의 꽃을 꽂았던 일을.

가족들을 떠나 먼 곳에 와 외롭게 있는 그들에게 한 가지의 꽃은 아마도 보기 싫었을 것이다. 이것저것 섞인 풍성한 꽃이 훨씬 보기 좋았을 것이다.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미련하게 그 눈치를 못 알차린 것이다. 내게 좋은 것이 모두에게 좋은 줄만 알았었다.

“꽃 꽂는 것을 보면 미스 권의 성격을 알겠어요. 이담에 시집가면 좀 어려울 거예요.”

교양 있는 중년부인 환자가 말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내가 하는 일을 불만스러워하거나 수정해주기를 원하지 않았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일은 이런 것인가. 풍성해지는 것인가. 잡다해지는 것인가. 아무튼 나는 이처럼 놀랍게 변해 있고, 그 동안에 30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내가 살아가고 있음이 곧 내가 변해가고 있는 것임을 알겠다. 나는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며, 변하지 않는 것만이 영원히 닿을 수 있다.고 철저히 믿은 때가 있었다. 한 가지의 꽃만을 꽂던 그때도 그랬었다. 그러나 아는 이제 삶이 곧 변화임을 안다. 받아들였다. 그뿐 아니라, 그 변화를 즐기게까지 된 것이다. 한여름 푸른 바다에 뛰어들어 파도를 타듯, 내 삶의 변화의 파도를 타고 싶다.

큰 항아리에 물을 가득 붓고 꽃을 꽂았음으로 내가 원하는 자리로 옮길 숙 없다. 몇 번 시도하다 나는 그만 마루에 벌렁 누워 쉬기로 한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함께 옮겨야지.

전 같으면 다시 꽃을 빼고 물을 퍼내고라도 놓고 싶은 자리에 놓고 말았을 것이다. 내 바뀐 모양을 신기해하며 나는 혼자 웃고 있다. 이렇게 된 내가 측은하고, 어쩐지 정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