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010년, 봄 / 송종규
푸르스름한 밤이었다
비비새가 창가에 와서 휘파람을 불고 갔다
그 날은 보름이었고
그 날은 창문 가득 아름드리 소나무가 차오르는
밤이었다, 그날은
먼데서 누가 팍, 자지러지는 밤이었고
땅 속 깊은 데서 누가
두레박를 퍼올리는 밤이었다
나는 나뭇가지를 헤집고 다니며 비비새를 찾아가는 길이었고
나는 내 목청을 뒤집어 비비새가 허공에 떨어뜨린
휘파람을 따라가는 중이었다
목도리를 짜던 어머니는 피 묻은 내 목청에 놀라
비상벨을 눌러댔고, 펑펑 검붉은 피를 쏟았고, 나는
피의 늪 속에 누워
아득히 날아가는 비비새를 보았다
그 날을 수 세기 전이었고
먼데서 별 하나가 팍, 자지러지는 밤이었다
푸르스름한 달밤이었고, 붉고 비린 밤이었고,
그 날은 나는 강보에 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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