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의 음식 / 변해명
병원에서 엿새 동안 금식을 시킨 일이 있다. 다른 일로 입원을 했는데 열이 오르고 복통에 설사까지 하니 혹 장염이 온 것이 아닌가 해서였다.
식사를 전폐하고 누워 있으니 느닷없이 떠오르는 것이 어린 날 어머니가 해 주시던 음식들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머니는 수란을 뜨고 계셨다. 숯불이 이글이글한 화로 위에 냄비를 올려 물을 끓이고, 그 끓는 물 위에 국자를 띄우고, 그 국자에 달걀을 깨어 담고 익히는 것이다. 달걀흰자가 하얗고 야들야들하게 익으면서 노른자도 안에서 알맞게 익었다. 그 수란이 익기까지 화롯가에 앉아 국자 위에서 익어가던 달걀을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그때 먹던 수란의 맛은 지금은 기억에 없지만 그런 정성이 담긴 수란이 먹고 싶어진다.
장마철에는 물 마른 밥에 굴비를 참기름에 찍어 먹던 기억이 있다. 북어처럼 말라 딱딱해진 굴비를 잘게 찢어 참기름에 찍어 꼭꼭 씹어 먹는 맛은 일품이었다. 그런 굴비도 어머니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굴비였다.
봄에 싱싱한 조기를 짝으로 사서 소금에 잘 절여서 물기가 없어질 만큼 마르면 엮어 그늘에 말린다. 몸이 활처럼 휘면서 꼬들꼬들해지면 베보자기에 싸서 다듬잇돌에 눌러 기름이 베어나오도록 한다. 그렇게 말린 굴비를 북어처럼 찢어서 먹는 것이 참 굴비 맛이다. 빗소리를 들으며 먹던 굴비 생각이 간절해진다. 요즘 시장에서 팔리는 얼린 굴비?는 굴비가 아니고 조기다. 조기가 소금에 절여져서 굴비라고 하니 옛 굴비 맛이 나지 않는다.
어머니는 고기를 씹는 것이 싫어서 고기를 먹지 않으려는 내게 약산적도 잘 해 주셨다. 소고기를 도마에 곱게 다져 양념을 하고 반대기를 네모나게 만들어 석쇠에 얹어 숯불에 굽고, 적당하게 익으면 손가락 두 마디 크기로 잘라 간장에 졸여 먹기 좋게 해 주셨다, 장조림보다 더 맛있던 약산적이 새삼 먹고 싶어진다.
적당하게 찢어 물에 띄운 오이지와 약산적과 굴비와 때로는 더덕장아치와 연근이나 인삼정과를 곁들여 밥을 먹던 그 시절의 밥상을 다시 대할 수 있다면 입맛 없을 때 밥 한 그릇쯤 맛있게 먹을 것 같다.
요즘 우리가 먹는 음식은 이미 한국의 전통에서 벗어나 국적불명의 음식이 된 것들이 많다. 여러 자료가 뒤섞어서 창안해낸 음식도 그렇고, 옛 음식에 맛을 바꾼 경우도 많고, 자료가 다양하게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많은 음식이 맵고, 짜고, 달고 고유의 맛을 잃어버린 경우도 많다. 음식이 지닌 격식도 잃고 설 자리도 잃었다. 다양하게 가지 수가 늘고 창안된 맛과 멋이 깃들인 음식이 많아진다는 것은 국제화시대에 우리 것을 세계무대에 내놓는다는 경우에서 본다면 좋은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고유의 맛을 지키고 고유의 먹을거리를 지녀 누리는 것도 우리가 지켜야 하는 문화유산일 것이다.
요즘 집안에 큰 일이 있거나 손님을 모셔야 할 일이 있을 때에 집에서 손님을 모시기보다 밖으로 나가 음식점에서 대접하고 행사를 치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생일, 돌, 환갑 집들이까지 밖에서 대접한다. 그러니 그 격식에 맞는 차림이며 법도가 희석되고 지워지고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어느 집 아기 돌날 초대되어 갔다. 물론 아기 돌만 대행하는 무슨 업자가 대행했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아기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 좋았다. 그러나 많은 음식을 차린 뷔폐는 가지각색으로 물들인 절편이나 송편 같은 떡들은 있어도 돌날 아기들을 위한 백설기와 수수팥떡은 없었다.
돌상에 오르는 떡은 백설기와 수수팥떡이다. 백설기는 신성하고 순결한 심성을 들어내는 떡이어서 아기가 순수하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고, 수수팥떡은 붉은 팥고물을 묻힌 찰수수 경단으로, 수수의 붉은 색이 귀신을 물리치고 액을 방지한다는 생각에서, 이 두 떡은 돌날 아기의 순결과 아기를 외부로부터 해침을 당하지 않도록 지킨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떡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아기가 10세가 될 때까지 생일마다 수수팥떡을 해서 아기가 무탈하기를 빌었다. 그것은 동짓날 팥죽을 쑤어먹는 풍습과 같은 것인데 그 떡은 없고 다른 서구식 퓨전음식들만 가득했다.
우리 음식에는 맛뿐만 아니라 삶의 철학과 신앙과 전래와 멋이 깃든다. 산에 가서 밥을 먹을 때는 먹기 전에 한 술을 떠서 산신령에게 고수레를 한다. 10월 상달에 집에서 고사를 지내면 도처에 존재한다고 믿는 집안에 깃든 신에게 고사를 지낸다. 그것은 미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자연 안에서 살아오는 인간의 자연친화적이고 자연에 의지하고 있는 마음을 담아내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지금은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에 살고 있어 모두 잊혀진 옛이야기속의 풍습이 되고 말았다.
이생각저생각에 젖다 보니 저녁밥 먹을 시간이 되었는지 밥을 나르는 수레가 복도를 오가고 환자들에게 밥을 먹이려고 보호자들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내게도 금식의 팻말이 거두어지고 멀건 흰죽이 배달되었다. 일주일을 굶었는데도 식욕이 일지 않는다. 내가 배가 아프다고 하면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조미음, 좁쌀과 인삼을 함께 끓여 체에 밭쳐 낸 노란 미음이 새삼 눈앞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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