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아들 학연에게 / 정약용

아들 학연에게 / 정약용

 

 

 

여기 내가 데리고 있는 네 아우의 재주는 형인 너에 비하면 조금 모자란 듯하다. 그렇지만 금년 여름에 고시(古詩)와 산부(散賦)를 짓게 했더니 볼 만한 것들이 많이 나왔구나. 가을 내내<주역>을 베끼는 일에 몰두하느라 비록 독서는 많이 할 수가 없었지만 그 애의 견해는 제법이란다. 요즘은 <좌전(左傳)>을 읽는데, 옛 임금들의 전장(典章)이 라든지 대부들의 사령(辭令)의 법도들을 제법 잘 배워서 벌써 볼 만한 경지에 이르렀다.

하물며 너는 본래 재주가 네 동생보다 한참 낫고, 또 어려서 공부한 것도 동생에 비해서 대강은 갖추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지금이라고 용맹스럽게 뜻을 세워 떨쳐 일어나 학문에 매진한다면, 서른을 넘기기 전에 반드시 큰 선비라는 이름을 얻을 것이다. 그 후에는 쓰이고 쓰이지 않고, 나아가 행하고 물러나 숨고 하는 일이 어찌 말할 거리나 되겠느냐?

자질구레한 시율(詩律)을 가지고 어쩌다 이름을 얻었다 하더라도 별로 쓸모가 없는 일이니, 모름지기 올 겨울부터 내년 봄까지는 <상서>와 <좌전>을 읽어야 한다. 비록 어려워서 읽기 힘든 곳이나 글이 난삽하고 뜻이 심오한 대목이 있더라도, 이미 다 주석이 달려 있으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리저리 연구하면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틈틈이 <고려사>, <반계수록>, <서애집>, <징비록>, <성호사설>, <문헌비고> 등의 책을 읽고 이 중에서 중요하고 쓸모 있는 대모을 뽑아 적어두는 일도 그만두어서는 아니 된다.

너는 점점 그 공부해야 할 때를 놓치고 있다. 집안 사정으로 보아서는 마땅히 밖에서 유학을 해야 할 것 같으니, 이곳으로 와서 나와 함께 지내는 것이 여러 가지로 옳은 일일 테지만, 부녀자들이 대의를 모르고 떨쳐 보내기 어려운 인정으로 너를 놓아주지 않을 것 같구나.

너의 아우는 문학이나 식견이 바야흐로 봄 기운이 돌아 온갖 식물이 싹터 오를 듯한 기세를 보이고 있다. 형인 너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동생을 집으로 보내려고 해 보지만 차마 그렇게도 못하고 있다. 지금 생각으로는 내년을 지내고 내후년(경오년) 봄에나 겨우 네 아우를 돌려보낼 것 같으니, 너도 그 날까지 세월을 헛되이 보내서는 아니 된다.

백 번 생각해 보아도, 나와 함께 공부할 생각이 있다면 집에서 꾹 참고 네 아우를 기다리다가 서로 만나보고 교대하는 것이 좋겠다. 만약 그 사정이 만의 하나도 희망이 없다면, 내년 봄 화창해진 뒤에 온갖 일다 떨쳐버리고 내려와서 함께 공부하자꾸나. 이 일은 결코 그만 두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첫째로 네 마음가짐이 날로 흐트러지고 네 형실도 날로 거칠어지니, 이곳으로 와서 내 가르침을 받는 것이 좋겠다. 둘째로 너의 안목이 좁고 다급한 데다 뜻과 기상을 잃어 가니 이곳으로 와서 내 가르침을 받는 것이 좋겠다. 셋째로 경전 공부는 거칠고 서툴며, 재주와 식견이 빈약하고 결점투성이니 이곳으로 와서 내 가르침을 받는 것이 좋겠다. 자질구레한 사정일랑 돌아보지도 말고 아까워하지도 말아야 한다.

지난번에 성수 이학규의 시를 보았다. 거기에 너의 시를 논평했는데, 너의 잘못된 점들이 잘 지적된 것 같더라. 마땅히 승복해야 할 것이다. 그가 지은 시들 가운데는 제법 좋은 것들도 있더라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후세의 시율은 마땅히 두보를 공자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의 시가 모든 시인들 중에서 왕좌를 차지하는 까닭은 <시경> 300편이 끼쳐준 뜻을 터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경>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가 충신, 효자, 열녀 그리고 좋은 벗들의 불쌍히 여기고 슬퍼하고 충지하고 순후한 마음의 발로인 것이다.

그러니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면 시가 아니요, 시대를 아파하고 시속을 분개하는 것이 아니면 시가 아니며, 아름다움을 아름답다고 하고 미운 것을 밉다고 하며,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하는 뜻이 담겨 있지 않은 것이면 시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뜻이 서 있지 못하고, 학문이 순수하지 못하고, 인생의 대도를 아직 듣지 못하고, 임금을 도와 백성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가짐을 지니지 못한 사람은 시를 지을 수 없는 것이니, 너는 그 점에 힘써야 할 것이다.

두보는 시를 지을 때 고사를 인용하되 그 흔적이 보이지 않아서 자기가 지어낸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다 뿌리가 있느니, 시성이라 할 만하니라. 한유는 시를 지을 때 자법(字法)에 모두 뿌리가 있지만 어구는 자기가 지어낸 것이 많았으니, 시의 대현이라고 할 만하니라. 소동파는 시를 지을 때 구절마다 고사를 인용하되 그 인용한 티가 나고 흔적이 있는데 얼핏 보면 의미를 깨우칠 수가 없고 반드시 이리저리 따져 보아서 그 인용한 출처를 캐낸 뒤라야 겨우 그 뜻을 통할 수 있느니, 이것이 그가 시의 박사가 된 까닭이다.

소동파의 시로 말하면, 우리 세 부자의 재주로 모름지기 종신토록 전공한다면 아마 그 근처에는 갈 수 있을 것이다만,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해야 할 일도 많은데 무엇 때문에 여기에 매달리겠느냐? 그러나 시를 지을 때 전연 고사를 인용하지 않고 음풍영월(吟風詠月)이나 하고 장기 두고 술 마시는 이야기를 가지고 운이나 맞추어 시라고 지어 놓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서너 집밖에 안 되는 마을에 사는 선비의 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 뒤로 시를 지을 때에는 고사를 인용하는 일에 주안점을 두도록 하여라.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은 고사를 인용한답시고 걸핏하면 중국의 고사를 인용하고 있으니, 이 또한 품격이 떨어지는 일이다. 모름지기 <삼국사기>, <고려사>, <국조보감>, <여지승람>, <징비록>, <연려실기술> 등 우리 나라의 책 속에서 그 사실을 캐내고 그 지방을 가려내서 시에 인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뒤라야 세상에 명성을 떨칠 수도 있고 후세에 전할 수 있는 좋은 시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유득공이 지은 <이십육국회고시>는 중국 사람들이 출판할 정도이니, 이를 증명할 만하다 하겠다.

<동사즐(東史櫛)>은 본디 이럴 때 쓰려고 편집해 놓은 것인데, 지금은 대연이가 차지하고 있느니 너에게 빌려줄 리가 없다. 중국의 17사(史)에 있는 <동이전> 가운데서 유명한 고사들을 가려 뽑아 놓았다가 인용하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