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독백 / 엄현옥
몇 년을 벼르다 여름 방학을 이용해 도배를 했다. 이사에 버금가는 번거로움이 예상되었기에 무척 망설였던 일이다. 그러나 외출해 현관문을 열 때마다 누렇게 바랜 벽(壁)이 애처롭게 바라보는 것만 같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창틀과 모든 문을 칠하고 도배지와 장판을 바꾸는 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묵은 책들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을 이리 옮기고 저리 치우고 하는 일은 만만치 않은 노동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간의 노고가 보상될 만큼 말끔해졌다.
집 정리에 지쳐 잠이든 때문일까. 깊은 밤, 무심코 깨어 거실의 스탠드를 켰다. 누렇게 바랜 벽은 간데없고 실내가 넓어 보였다. 도배지가 마르지 않았으니 못박는 일은 다음날 하라던 인부의 말에 아무것도 걸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빈 벽을 바라보며 무심히 소파에 앉았다. 은은한 조명 속에서 나는 그의 독백을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보면 답답하다고 한다. 앞뒤가 대책 없이 꽉 막힌 융통성 없는 사람을 칭할 때면 벽창호라며 나를 빗댄다. 또한 바람을 막고 풍경을 차단하는 주범으로 몰고 간다.
그들은 상대방과의 인간관계가 단절된 상태를 나의 이미지와 결부시키곤 한다. 대화가 통하지 않은 상황이면 차라리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며 또 나를 들먹인다.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진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부적절한 상황에서 회자되곤 하는 나의 불명예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어서이다.
사람들은 이처럼 나를 허물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넘어야 할 그 무엇이라 한다. 오래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운동 경기의 주제를 ‘벽을 넘어서’ 로 정한 적도 있다. 그들의 대부분은 내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해결될 듯한 기세로 몰아세운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인간들은 모두 상대방에게 몇 겹의 벽을 쌓아 놓고 산다. 그들 대부분은 나를 허물자고 할 권리도 없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은 점점 두꺼운 벽을 세우기를 일삼으면서 우리들만을 탓한다. 그저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것만 보는 어리석은 이들이 바로 사람이다.
그뿐 아니다. 끼리끼리 무리지어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고자 할 때 나를 방패삼아 온갖 공작을 일삼는다. 패거리를 드러내지 않는 밀실정치에 나를 약용한다. 그들이 만드는 맥(脈)이야말로 정서를 단절시키는 벽이 아니던가. 그들이 할게 모르게 설치한 벽들은 주로 자신들의 이익과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이럴 때면 나는 그들의 희생양이다.
나는 그들의 많은 비밀을 알고 있다. 다만 누설하지 않을 뿐이다. 나를 떠나간 집주인일지라도 나를 벽으로 의지하고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 그들의 비리를 발설하지는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무죄다. 폴란드 작가 마렉 플라스코의 소설⌜제 8요일⌟을 보라. 2차 대전 직후 폐허의 바르샤바, 그곳에 가난한 연인들에겐 벽이 없었다. 그들이 꿈꾸는 것은 하룻밤만이라도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벽이 있는 공간’이었다. 4면이 아닌, 3면이라도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꿈꾸었다. 두 남녀가 그토록 찾아 다니던 벽이 있는 세 평의 방은 자유와 행복에 대한 최후의 희망이었다. 이처럼 자심들만의 공간을 위해 나를 원하는 연인들이 그들뿐이랴.
나는 직립을 지향한다. 누워 쉬거나 앉는다는 것을 생각할 수도 없다. 서 있을 때만이 존재가치가 있다. 무너지면 폐기해야 할 건축자재로 전략해 존재가치가 없어진다. 합리적인 공간을 구분하기 위한 사람들을 위해 직립의 고행을 평생 감내하며 그들의 막이가 되어 견딘다. 내가 있음으로써 누릴 수 있는 안락감과 보호 받아야 할 사생활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들은 가족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혼자이기를 원할 때 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를 있는 그대로 놓아두지 않는다. 그들이 필요로 한 무언가를 걸어 놓기 위해 몸에 생채기를 내는 것은 예사다. 치장을 선호하는 산만한 취향의 주인을 만나기라도 하는 날엔 내 몸에 무언가를 걸고 붙이는 바람에 숨쉬기도 어렵게 된다. 나의 수난이 아니고서야 그들이 눈높이에 걸린 벽시계나 달력을 이용할 수 있으랴. 빈 벽으로 두면 좋으련만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채우고 싶은 이들은 극성스럽게 나를 괴롭힌다.
견디기 힘든 것은 내 몸이 세워진 채 완공된 아파트의 실내에서 나를 부수는 일이다. 넓은 공간을 확보하고픈 이기심에서 그런 일을 저지를 때면 심한 현기증에 몸을 가누기도 힘들게 된다.
내가 서 있는 이 집도 마찬가지다. 낡은 나를 수년간 본체만체하더니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처럼 내 몸을 단장했다. 그러나 사실은 나를 휘한 것은 아닐 것이다. 오늘 반이야 새로운 벽지가 달 마르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날이 밝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내 몸 이디엔가 그림을 걸기 위해 법석을 떨 것이다.
나는 그들의 칭송을 바리지 않는다. 다만 있는 존재 그대로의 나로 보아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허물어야 할 상징으로 여기거나, 무언가를 걸고 붙이기 위한 면(面)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들 중 힘들고 지친 자가 있거든 단단한 내 품으로 기대어 보라고 속삭이고 싶다. 혹여 나와 같은 부당한 이미지로 각인된 것들이 있거들랑 그들에 대한 고정된 편견을 버리라고 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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