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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뛰어봤자 벼룩 / 최민자

뛰어봤자 벼룩 / 최민자

 

 

오대천에 비가 내린다. 흩어지는 안개구름 사이로 전나무 숲이 비에 젖고 있다. 난간에 기대어 비를 바라본다. 엊저녁, 출입문 앞에 방해하지 말라는 팻말을 걸어두었다. 나는 오늘 혼자다.

 

출장과 연수와 여행 일정으로, 엇갈리고 맞물리며 나라 안팎을 들락거리는 다른 식구들 틈새에서 천금 같이 얻어낸 이틀간의 공백. 무조건 떠나보기로 했다. 하루 이틀 내가 없어 어찌될 집도 아니건만 무엇을 못 잊어 뱅뱅거리고 사는지. 독재자와 전업주부의 공통점은 내가 없으면 무너질 거라는 과대망상이 아닐까. 행장을 차리고 혼자 호텔에 드는 일에 용기가 필요하기는 했다.

 

산골의 아침 한기는 여름에도 제법 으스스하여 나를 다시 이불 속으로 불러들인다. 귀하게 장만한 시간을 이리 허비하다니, 하는 생각도 잠시, ‘괜찮아!’ 하며 가볍게 털어낸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을 때 월정사나 한바퀴 둘러 올려던 계획도 일단은 젖혀두기로 한다. 대신, 일상을 벗어버린 게으름에게 유유자적이란 작위나 봉해줄 작정이다. 공복감 또한 영혼의 정화에 기여할 터, 조금 더 방관해 두기로 한다.

 

창문 너머로, 낮게 펼쳐진 삼밭과 아득한 전나무숲과 빨간 지붕의 오두막이 보인다. 논과 밭과 산과 내가 어우러진, 그대로 한 폭의 수채화다. 물러 앉아 어깨를 겯고 있는 산들, 연두의 애잔함과 초록의 싱싱함과 청록의 무성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밭뙈기들, 종알거리며 흘러가는 냇물…… 풍광을 차경(借景)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곳은 도시의 어떤 특급호텔보다 더 우월한 입지에 있다.

 

하마처럼 하품을 늘어지게 하고 팔을 뻗어 한껏 기지개를 켜 본다. 아랫배 깊이, 심호흡도 해 본다. 이제부터는 침대에 엎드려 궁싯거리거나 생각 없이 창밖을 내다보거나 창틀에 떨어져 죽은 하루살이의 숫자를 세어보기도 하면서 느릿느릿 하루를 보낼 작정이다. 빗소리, 바람소리, 물소리가 뒤섞여, 혼자 있어도 적적하지는 않겠다.

 

뜨거운 욕조에서 반신욕을 하고 풋복숭아 하나와 생수 한 모금으로 늦은 아침을 때운다. 산속이어서인지 손전화가 먹통이다. 인터넷에 접속하려해도 아래층에 있는 비즈니스 센터로 내려가야만 한다. 스스로 자초한 연금, 자발적 유배다. 아니 유폐인가? 어쨌거나 우습다. 연금을 풀고 나와 또 다시 연금이라니.

 

손님을 배웅하러 엘리베이터 앞에 나왔다가 실수로 현관문이 닫혀버렸던 적이 있다. 빈손 맨발 차림이었던 나는 외출했던 딸애가 돌아올 때까지 꼼짝없이 문 밖에서 서성거려야 하였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감옥에 갇혀 내 영역 안에 발 들이지 못하는 아이러니. 그때 알았다. 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 것만이 구속이며 부자유가 아니라는 것을. 자유란 물리적 공간의 문제가 아닌 심리적 수용의 문제라는 것을. 마음 가는 데 몸이 가지 못할 때 삶은 감옥이 된다는 것을.

 

커피 물을 얻으려 라운지에 잠시 내려간 것을 빼고는 종일 방안에서 뭉그적거렸다. 빗장을 채워버린 방 안에서는 시간도 기세가 한풀 꺾이는지 걸음새를 늦추고 고즈넉하게 출렁댄다. 늘 몸 밖을 서성거리던 마음조차 몸 안에 가만히 똬리를 틀고 옹송그리고 들앉아있다. 몸을 여기에 데려다 놓은 것은 마음일 터이지만 정작 휴식이 필요한 쪽은 몸보다는 오히려 마음일는지 모른다. 몸이 원하는 것을 마음이 챙겨주고 마음이 내키는 곳에 몸이 나서 주는 것, 그런 심신의 의기투합 상태를 행복이라 일컫는 것 아닐까. 마음이 몸 밖을 배회할 때, 삶은 들뜨고, 허허롭고, 곤고하다.

 

산과 산 사이에 아치형의 구름다리가 걸려 있다. 골짜기 이쪽저쪽에서 하얗게 뿜어내는 안개구름이 오대천 위에서 만나 무지개 같은 반월교를 이룬다. 이런 경관을 혼자 보아야 하다니. 다 좋은 데 그게 좀 아쉽다. 도시에 남겨두고온 얼굴들을 하나 둘 떠올려보다가 혼자 앉아 실소를 짓는다. 촘촘한 삼강망 그물 같은 사람의 숲을 벗어나 보려고 여기까지 숨어들고서도 하루가 안 되어 다시 사람을 그리워하다니. 밀린 시장기가 한꺼번에 발동하는지 뱃속이 돌연 굴풋하다. 정신의 허기와 육신의 포만감 사이에는 어떤 함수관계가 있는 것일까. 들어올 때 봐둔 삼거리 어디쯤의 허름한 밥집을 떠올리며 모자를 깊숙이 눌러써 본다. 쓸쓸함도 출출함도 낭만이고 사치일 뿐, 나 같은 속인은 사람 사는 언저리를 결단코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예감이 차라리 마음을 편하게 한다.

 

밥집 여자가 된장찌개와 산채 접시들을 늘어놓는 사이, 마루 끝에 앉아 담배를 꼬나문 주인남자가 코로 연기를 내뿜다말고 힐끔힐끔 곁눈질을 한다. 부부싸움 끝에 집 나온 여자로나 보이는 건가. 나무 한 그루 숨기기에 가장 적당한 곳은 울울창창한 숲 속일 것이듯, 평범한 여자가 숨어살기 좋은 곳도 산골이 아니라 대도시일지 모른다. 내일 아침, 소금강을 지나 주문진 바닷가나 바라보다 가려던 계획을 수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모처럼 감행한 일탈의 결미가 겨우 그것이라? 수만 세월 한 자리에 못 박혀 사는 큰 산의 웃음소리가 승천하는 안개구름 사이로 환청인 듯 아득하다. 뛰어봤자…… 벼룩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