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緣)의 연(蓮) / 김정화
자꾸 미련이 남는다. 단단히 포개어진 꽃잎이 속내를 감춘 채 수중에 서 있다. 꽃덮이 조각을 열고 꽃분을 터트리는 해 뜰 무렵의 우아한 자태를 눈에 담지 못한 아쉬움이 한낮 속에서 더욱 커진다. 그래도 물에 잠기지 않는 꽃잎이 반갑다. 진흙을 힘 있게 딛고 올라선 꼿꼿한 대궁이 낯설지 않다.
여름 뙤약볕에서 바라본 서출지는 더욱 요요하다. 신라 소지왕의 목숨을 구했다는 사금갑(射琴匣)의 전설이 서린 연못가에는 이요당의 기와지붕이 단아하게 내려앉았다. 이백 년 된 배롱나무 너머로, 홍련이 연실을 감춘 채 전설을 듣는 양 고개를 내민다. 바람에 실린 연꽃 향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셔 본다. 시들해졌던 삶의 의욕이 삼복 연향으로 되살아난다.
연밭에 가면 언제나 연자매(蓮姉妹)가 떠오른다. 유학자이던 아버지는 젊은 시절 만주와 일본을 오가며 공부를 하셨다. 중절모를 쓰고 신식 양복을 입은 사진을 요즘도 들여다보면 조선시대 여느 선비 못지않은 풍류를 즐긴 모습니다. 그러나 해방 후, 원하던 학문의 뜻을 펴지 못하자 스스로 고향을 등졌다. 낯선 시골, 전기도 없는 외딴곳에 흙집을 지어 평생을 적적하게 보내다 가셨다. 그 시대의 많은 사람이 그랬듯이 현실과 타협하지 못한 채 연꽃 같은 이상세계를 꿈꾸지 않았나 싶다.
아버지는 네 명의 여식 이름을 연꽃을 지으셨다. 연꽃의 꽃부리에서 큰언니인 영화(英花)를 떠올렸고, 둘째언니는 부처님께 올리는 꽃이라는 의미의 향화(香花)라 하였다. 셋째언니는 용모 그대로 연화(蓮花)이며, 정화(貞花)인 내 이름에는 곧게 피어나라는 소망을 담았지 싶다.
연방죽에 올라 연잎에 눈길을 오래 준다. 펑퍼짐한 치마폭 같은 잎은 맏언니의 내리사랑처럼 너붓대지만, 햇빛에 오그라진 잎사귀는 속 좁은 내 마음과 다름없다. 연잎은 제 몸을 낮추고 꽃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그러나 연밭에 꽃이 없다면 누가 찾아오겠는가. 순백의 맑은 빛을 담아 청초하고 고결하게 피어나는 백련은 유난히 하얀 피부를 지닌 연화 언니를 꼭 닮았다. 백련을 꽃 중의 군자라 하듯이 연화 언니는 늘 나머지 딸들의 부러움이 되었다. 연씨 또한 스스로 싹트지 않고 반드시 제 몸에 상처를 받아야만 싹이 튼다. 이천 년 묵은 종자도 발아한다는 속성은 다른 자매들을 항상 보살펴주는 향화 언니를 많이 닮았다.
춤추는 연밭을 본다. 뜨거운 햇살을 털어내는 커다란 잎자락이 바람을 몰고 온다. 연꽃은 그릇에 따라 잎과 꽃을 스스로 맞춘다고 한다. 그릇이 작으면 작게 피고 큰 그릇에 옮겨주면 크게 자라다가 방죽안에 넣어주면 방죽을 가둑 채워버린다. 연꽃을 피우게 하는 것은 비바람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꽃을 쳐다보지만 진흙 속에 숭숭 구멍 뚫린 뿌리가 깊숙이 내려져 있음을 잘 알지 못한다. 연꽃이 물에 폭삭 젖지도 못하고 홀로 피어나듯, 장맛비가 뿌려도 고인 빗물은 거침없이 쏟아져 내린다. 이슬이든 빗물이든 떨어내야만 하는 것도 우리의 삶이 아닐까.
지난여름, 약 칠 년 만에 춘천에 사는 연화 언니 집에서 네 자매가 모였다. 모두 비슷해진 얼굴에, 같은 이름자에, 중년이란 꼬리표까지 하나씩 달고 왔다. 자랄 때는 큰언니와 십오 년이라는 긴 터울이 있었는데, 지금 그 터울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그날 저녁, 자매들은 소양강이 내려다보이는 횟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커다란 회 접시는 물론 매운탕이며 밥까지 깨끗이 비워내고 남은 메추리알까지 챙겼다. 노래방도 빠트리지 않았다. 향화 언니는 마이크 줄을 곡예사처럼 빙빙 돌리며 ‘소양강 처녀’를 불렀다. 다음날은 춘천에서 유명하다는 점집에 가서 신수를 보았다. 머리에 대나무 핀을 꽂고 휘파람으로 신을 불러들이는 무녀의 표정이 진지하다 못해 엄숙했다. 나에게 앞으로 돈 많이 벌고 팔자가 좋다는 말을 하자 언니들은 얼굴 가득 질펀한 웃음이 번지며 연방 맞장구를 치기 바쁘다. 음식점에서든, 노래방에서든, 점집에서든, 온 몸짓에서 오랜만에 만난 자매애가 진하게 묻어나온다. 곁눈질을 해보니 연꽃 이름과 달리 영락없는 중년 아줌마들의 모습이다. 눈가의 잔주름과 펑퍼짐한 몸매와 능글맞은 말투들은 고상한 이미지와 꽤나 멀게 보인다.
아버지가 내 이름에 연꽃을 붙인 이유는 맑고 고귀한 연꽃을 닮으라는 줄로만 알았다. 계향충만(戒香充滿)이라고 했던가. 진흙 속에서 자라더라도 흙 한 방울 묻지 않는 연꽃이 되어 연못을 향기로 채우라는 나를 향한 기대라고 여겨왔다. 그래서 고개 치켜든 채 물옥잠과 마름에도 곁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혼자 으스대며 살아왔지 싶다. 하나, 연잎과 뿌리와 연화가 어우러져야 연밭이 온전하듯이 네 자매가 한마음으로 살아가길 남몰래 원하였음을 이제야 알게 된다. 겨울의 연뿌리는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야만 봄에 새순을 올리고 한여름에 화려한 자태의 연꽃을 피우기 마련이다. 한핏줄 자매간의 향기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구월이 되며 연꽃이 피었던 자리에 연밥이 여문다. 꽃이 피면서 열매가 생기는 것은 인과가 동시에 나타난다는 뜻인 만큼 꽃 속에 안긴 열매는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매년 알려준다. 내가 어려움을 견뎌내고 곧은 꽃으로 피아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복언니들의 따뜻한 시선 때문이다.
백련 끝자락의 맑은 기운이 다시금 온몸을 감싸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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