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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묘각사에서 / 최계순

묘각사에서 / 최계순

 

 

 

묘각사에는 매미가 울고 있었다. 나무들의 숲이 짙어 무더기 무더기 꽃봉오리 같은데 내 마음은 온갖 번뇌로 시달리고 있다. 한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일들에 맞서 싸우다 보니 내 마음조차도 칼날 같은 미움을 지닌 탓이다. 이름 좋아 다들 유명인자 허울 좋은 명예를 누리고 있지만 그안을 들여다보면 협잡과 사기와 더러움으로 가득 차 있어서 썩은 냄새가 코를 찌른다.

사람 몸에서 나는 돈 냄새가 송장 냄새처럼 악취를 풍기고 있으니 말이다. 이 나라의 온갖 고위 공직자들이 이런 권모술수와 이권에만 눈이 어두워 있고 청와대에서조차 인사청탁이니 뭐니 해서 시끄러운 세상이다.

법당에 앉아서 기도를 드리고 있자마는 나는 내 마음을 도저히 다스리지 못한다. 의상 대사께서 창건하셨다는 절의 유래처럼 첩첩 산골, 묘한 곳으로 내 마음이 와 인기는 곳이다. 의미가 있는, 마음이 청정해지는 그런 조용함이 주는 절다운 절이라 생각하면서 법당에 좌정해 본다.

늘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던 공무원이라는 신분, 만족하지도 않았고 바라지도 않은 길이지만, 그래도 시골 인심과 농부들의 정직한 마음을 나는 존경한다.

뼈를 깎는 고통으로 한 해 농사를 짓고, 거둬들이는 현장을 내 눈으로 목격하면서 내 삶에 있어서 겸손과 사람의 도리, 인간적인 이해 그런 것들을 조용히 배우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있는 이곳을 사랑한다. 겉모양과는 다른 사람 사는 냄새가 있고, 정을 나눌 줄 아는 인심에서 넉넉한 마음을 따사롭게 받고 있는 탓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보잘것없는 이 사람이 이곳에서 그래도 사람으로 대접 받고 있음을, 웃고 대하는 얼굴들이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끼며 사는 탓이다.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선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새삼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 는 것 그것만이 우리를 구제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남을 속이지 않고, 정직하고, 신의있는 사람으로 처세하고 살아가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다는 것을.

예전에는 출세한 사람들의 겉모양을 보면서 그렇지 못한 나를 보잘것없이 여겼던 때가 많았다. 그러나 나는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길보다 더 나은 길이 없다는 것을 새삼 인정하는 그런 인생의 전환점에 서 있다.

안으로 침잠해지는 일, 더 강해지는 일, 자기를 수련하는 일 등을 배우면서 나는 비움으로써 더 커지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쓸데없이 내세웠던 자존심과 내 오만과 껍데기를 비우고 또 비우라는 인생의 숙제를 부처님께서는 오랜 시간 동안 내게 주었는지 모른다.

잘난 척하는 내 치기를 꾸짖는 길로……. 부처님은 늘 내게 인내와 겸손을 가르치신다.

강한 내 성격 때문에 부딪히는 것들로 인하여 깎이고 둥글어지면서 비로소 나이 먹어 감의 지혜와 연륜을 배우는지 모른다. 어머니가 외우는 염불의 공덕과 기도의 덕분으로 그래도 나는 선택 받은 사람으로 살아가는지 모른다. 시댁과 친정으로부터 전혀 마음 고생 하나 없이 나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는 자유를 인정받고 사는 것을.

아들은 자라서 내게 또 많은 것을 가르친다. 여자답지 못하다는 등 성격 급한 애 단점도 지적하면서 가장 가까운 후견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아들한테는 정말 빵점인 엄마다. 생활 여건이 그랬었다고는 하나 나의 부족함 탓이기도 하다.

많은 것을 배우는 비움의 철학, 비움의 원리에서 나는 비로소 ‘자유롭다’ 라는 의미를 크게 깨닫는다.

내가 내 자신을 비우고 자유로울 때에 나는 겁나는 것이 없었다. 정직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큰 무기이자 내 삶의 좌표요, 내가 살 수 있는 길이었다.

비굴하지 않게 산다는 것이 어느새 내게는 좌우명이 되었다. 내가 내 정신의 주인이고, 그 주인이 남에게 부끄럽지 않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것임을, 내 아들도 자라서 그런 사람이기를 바란다. 약자에게 넉넉하고 불의를 거머쥔 강자에게 대항하는 그런 사람이기를 바란다.

아무리 세상이 혼탁할지라도 나를 믿어 주고 결려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도 감사한다.

헛된 욕심을 많이도 부리고 살았던 지난날이다. 그 욕망이 가리키는 손 끝자락을 지향하면서도 내 영혼도 그 동안 탁한 오염으로 휩싸여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인의 권리도 자기가 꼭 찾지 않고는 안 될 그런 시기가 있다. 부당한 것에 대하여, 불의에 대하여, 공정하지 못함에 대하여 내 분노는 사그라 들지를 않았고, 죽이고 싶은 증오를 꼭꼭 안으로 억눌러야 했다.

참으로 질긴 악연이었다. 그리고 왠지 늘 속고 당하기만 한 육칠 년 세월이었다. 그 쇠사슬을 남도 아니고 내 힘으로 푼다. 내 머리와 내 약한 힘으로 싸울 것을 생각하는데도 겁나지 않았던 것은 정직이었다. 정직 앞에 누가 당할 것인가. 죽을 힘을 다하여 달리기를 하면서 나는 더 강해지는 쇠처럼 그렇게 풀무질을 당했다.

고교 시절의 “승리하리라. 그리고 언젠가는 극복할 것이라”는 전영창 교장 선생님의 교훈은 내 삶의 목표점이자, 내 삶의 지향점이었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외로움이 뼈를 깎듯이 아무도 모르는 내 인고의 칼날 한 자루를 품안에 보듬고 살았지마는 내 아들이 나를 이해해 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오래 승자로 남을 것이다.

깨닫는다는 것, 인생을 안다는 것,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이해 한다는 것, 그것이 지천명의 원리다.

늘 씩씩하고 용기 있는 친구로 동행한 그녀. 그 친구의 독려로 내 마음도 한결 가볍다. 어느 누구보다도 많이 아파했고, 그 누구보다도 남을 사랑할 줄 알며 별다른 욕심 없이 살았던 그녀의 소박한 마음을 헤아리는 사이가 된 것도.

나는 묘각사에서 평온과 기도와 비움의 마음 한 자락을 가지고 현실로 돌아 온다. 그러나 법당에서 내려다보는 부처님의 마음 한 조각도 가지고 왔음이라. 내 설움과 아픔과 분한 마음까지도 조용히 다스리라는 설법을 지닌 채로.

어머니의 불심 덕분에 삼 남매가 무리 없이 살 수 있음도, 어머니의 발자국 하나하나가 눈물겹도록 서러운 것이었음도, 난 항상 잊지 않고 살아왔다.

이 세상에서 제일로 치는 것은 ‘마음’ 이다. 그 마음 하나에 우주가 담기고, 그 마음 하나에 증오가 담기고, 그 마음 하나에 기쁨이 담기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곤두박질하는 변덕스러운 마음.

그 마음의 깊은 우물을 오래 오래 응시하면서 나는 묘각사에서 정말 묘하게 깨닫는 그런 시간을 가져 본 것이다.

이름 그대로의 묘각(妙覺)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