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헨리에게 / 남영숙
몇 해 전, 탁해진 그의 피는 온몸을 샅샅이 훑으며 수월하게 흘러야 함에도 그러지를 못했다. 그것이 그를 잠시 혼절하게 하였다. 퇴원 후 건강 지키기와 소득, 동행하지 못할 그 두 갈래에 대한 선택은 칡과 등나무로 한참을 얼크러져 있다가 명예퇴직이라는 생의 불시착으로 정리되었다.
이른 나이의 퇴직은 ‘밥벌이’ 에 대한 마침표를 찍지 못하게 한다. 몇 해의 안정을 취한 후 인생의 이모작에 나선 것이다. 자격증 쟁취를 위한 공부는 힘이 들고 역량은 잦아들었지만 태생적인 성실함이 그를 견디게 하였다. 하나, 결과는 허망했다. 예상 밖의 어려운 문제는 관문 통과가 무위로 끝나 버릴 것을 짐작케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자주, 삶은 기대를 배반한다.
그는 점심을 먹지 않았다. 새벽같이 일어나 도시락에 쏟는 정성이 남편의 시험 성적과 정비례하듯, 그렇게 준비해 준 아내의 ‘밥상’ 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일 년이 넘도록 투자된 물질과 정신의 비용을 생각했다. 그리고 배려해 준 가솔, 특히 아내에게 미안해서 도무지 밥알을 삼킬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인간은 어리석지 않은가. 이미 발효되어 가고 있을 한술 뜨다 만 밥이나 찬은 버려지기나 할 것이다. 먹어 주는 것이 훨씬 아내를 기쁘게 할 터인데 자신의 감정에 함몰되어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할 때 인간은 영악하지 않아 아름답다.
소금 세례를 받은 배추처럼 풀이 죽어 늦게야 집에 돌아온 그는 그제야 자신이 배가 고프다는 것을 알았다. 라면을 꺼냈다. 그것은 그의 조기 퇴직의 빌미가 된 혈액성의 질병에는 치명적이라고 아내가 생각하는 몇 개의 음식 중 순위가 높은 음식이다. 생각보다 염분이 많고, 인간에게 별로 이로울 것이 없다는 삼 백(三白)중의 하나인 흰 가루의 면발이다. 그것도 기름에 튀긴 대표적인 인스턴트 음식을 아내가 용인할 리가 없다. 엄명으로 금지된 음식이다. 아내가 돌아오기 전 얼른 하나 끓여 먹으리라. 그는 잽싸게 움직여 김치 한 보시기와 라면을 식탁 위에 얹었다. 면발 한 줄기를 입에 넣으려는 순간 퇴근한 아내가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다.
전의를 잃은 패장이지만 그래도 경위를 설명하고 ‘죽기로’ 항거할 요량이었다. 웬일인가. 라면을 같이 먹자고 한다. 영업 부서의 고참 사원인 아내는 좋은 실적에 대한 포상의 일부로 값비싼 만찬과 고위직의 간부와 대면하는 절호의 기회가 있었지만 사양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공부에 시달리고 하루 종일 시험을 치르고 돌아와 혼자 한 끼를 ‘떼우고’ 있을 지아비 생각에 혼자만 성찬을 입에 넣을 수 없었다는 반려의 전언이다.
한 사발의 라면은 두 사람의 주린 배를 그득하게 채워 주었다. 서로의 마음이 투영되고 반사된 그날 저녁, 그들에게 많은 말들이 필요하였을까. 땅심을 돋우는 퇴비처럼 그들 애정의 토양에 거름이 뿌려졌을 것이다. 미지근하게 식어 가던 부부의 사랑이 벌떡 일어나 기사회생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자꾸 낡아져 가는 삶의 항산화제이기도 하다. 그렇게 적립된 애정은, 작은 위안들은 모여서 필경은 큰 것이 되어 삶의 남루를 이기게 할 것이다.
사랑이란 서로의 아픈 곳을 안아 주는 상호 보완적인 것이지 비음(鼻音)으로 말하여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되는 산술적인 이치가 아닌 것이 사랑의 경이로움이다. 거기서 증폭되는 알 수 없는 힘을 갖게 한다. 그리하여 삶을 운행하는 연료가 된다.
반전(反轉)의 명수 오 헨리가 이것을 들었다면 좋은 소재로 차용하려 들지 않을까. 이야기의 얼개에다 상상을 덧칠하고 ‘각색’ 한다면 또 하나의 근사한 단편소설이 되었을 터이다.
부부간의 애틋한 사랑을 표현한 그의 단편 ‘크리스마스 선물’ 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짐과 델라는 서로를 위하여 선물을 준비한다. 남편 짐은 대를 이어 내려오는 금시계를 팔아 아내의 물결치는 긴 머릿결을 위하여 아름다운 머리핀을 사고, 델라는 풍성한 머리카락을 팔아서 남편의 금시계에 달 백금 시계 줄을 산다. 짐이 델라의 머리카락을 위해 핀을 사고 있을 때 델라의 머리카락은 이미 없어져 버린 남편의 시계를 위하여 잘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소중한 선물을 주려다 가장 필요 없는 선물을 주고받았지만 그것은 그들 애정의 최상의 증거가 되었다.
수제품을 만들 듯 공들여 만든 사랑의 이야기다. 들은 이야기의 절묘한 각색인지 자신의 독창적 구성이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어떠하든 사람의 가슴마다 고여 있는 정리의 오고 감이 휘청거리는 세상을 지킨다. 그가 살았던 시대가 180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입이니 동서나 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살이가 다르지 않듯 애정의 풍경도 다를 것이 없다.
‘인정도 품앗이’ 라고 한다. 인정만 그러할까. 사랑도 품앗이임에 틀림없다. 지독하거나, 지극하거나, 또는 가고 아니 오는 짝사랑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기형의 사랑일 뿐, 금방 벗겨질 도금 제품처럼 진품이 아니다. 물의 본성이 흘러서 섞이는 것이듯 사랑의 본질도 흐르며 오고 간다. 그런 품앗이 사랑이 완성형이 아니랴.
진부한 이야기라고 치부해 버리기도 할 것이지만 그 ‘흔하고 재미없음’ 으로 해서 보편성을 갖는다. 보편성은 녹슬지 않고 수명이 길어, 어느 시대라도 그 시점의 시대정신을 뛰어넘는다. 이 시대에 오 헨리가 살아 있다면 그에게 작품의 소재로 건네주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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