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배 / 정서윤
아무리 예쁘게 보려고 해도 볼품이 없다. 뭉텅한 나무토막에 긴 자루 하나를 쿡 박아 놓은 저 물건! 슬쩍 봐도 못생겼고 자세히 보면 더욱 못난이다. 사람이든 연장이든 인물 보고 평가할 것은 아니지만, 못난 건 못난 것이다.
나의 어릴 적 별명은 곰배였다. 별명이 곰배인데 사람들은 이름인 양 곰배라 불렀다. 내가 엄마 뱃속에서 이 풍진 세상으로 나올 때 도대체 어떻게 생겼었기에 곰배라는 별명을 얻었을까? 내 기억에 없는 증조할머니께서 저 물건의 이름을 내게 별명으로 붙어주고 세상을 뜨셨으니, 어디 물어볼 곳도 없어 답답할 노릇이다.
초등학교에 가서도 이름은 출석부에만 올려놓고 곰배를 명찰처럼 달고 다녀야 했다. 그건 순전히 윗마을에 살던 반장 글마 때문이었다. 글마는 서윤이라는 고운 내 이름을 놓아두고 늘 곰배라 부르면서 내 심기를 건드렸다. 하도 분하고 원통해서 막내 고모에게 하소연을 했다. 고모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웃으며 자근자근 설명을 해 주곤 했다. 어른들이 귀여워서 그런 거라고, 잘 생긴 아이를 밉상이라 말하는 것처럼, 아이들에겐 좋다는 말을 거꾸로 한다고 했다. 고모의 말을 굴뚝같이 믿으려 했으나 곰배는 어른이 될 때가지 떨쳐 버릴 수 없는 나의 콤플렉스였다.
친정에 들렀더니 어머니가 무를 파 가라고 하신다. 담 밑에 깊숙이 묻어 둔 무 구덩이를 파내려고 호미를 찾으러 광에 갔다. 어머니 시대에 농사를 짓던 농기구들이 천덕꾸러기로 밀려나 광을 지키고 있었다. 농기구들은 무겁게 짊어지고 온 삶을 부려 놓고 시골집에 외롭게 있는 노인들 모습 같았다. 어머니는 처신이 궁색해진 연장들을, 당신이 입다 벗어 놓은 철 지난 옷가지들처럼 소중히 갈무리해 두었던 것이다. 컴컴한 창고 안을 더듬더듬 둘러보고 있는데 불현듯 내 어깨를 잡는 것이 있었다. 곰배였다.
보리밭은 사라지고 사람들도 떠나고 없는데, 곰배는 오랜 유배를 풀고 밭으로 나가 보리를 묻을 태세다. 나는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주제에.’하며 속으로 비웃으니, 곰배가 받아친다. ‘실체는 보지 못하고 허상만 보느냐’고 못생긴 것이 허상만 쫓아온 나를 되레 한방 먹이려 한다. 잠재의식 속에 아직도 어릴 때 느낀 열등감이 자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서투른 목수 연장 나무라듯 내 못난 탓을 곰배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다. 녹록치 않은 세상을 살아오다 만난 상처들을 그렇게 분풀이라도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내가 살던 고향은 기름진 땅이나 논은 많지 않았으나, 큰골에서 발원한 참샘이 사철 흘러내렸다. 마을 뒤 황토 언덕을 오르면 제법 널찍하게 초원이 펼쳐졌다. 먼 옛날 사람들은 그 넓은 땅을 보고 터전을 잡았으리라. 그러나 땅이 너무 척박해서 다른 농작물은 부치지 못하고 보리만 무성했다. 지척에 있는 바다 위를 질주하던 바람이, 심심하면 산을 넘어와서 보리밭으로 달려들어 파도를 일으켰다. 앞산 뻐꾸기 피울음 토하는 배고픈 오월은 느릿느릿 뒷걸음질을 치고, 익지도 않은 보리밭 사이로 걸어가면 배가 고파 현기증이 났다. 참샘물에 꽁보리밥 말아 배불리 먹을 수 있으면 행복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마을에서는 기계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농기구는 사람 손에서 노동의 부분 역할을 했다. 보리가 가난한 시절의 주식이었던 것처럼 곰배는 긴 세월 동안 척박한 땅을 일구며 살아온 사람들과 애환을 함께해 왔다. 보릿고개 허기진 길을 함께 넘어온 지난한 세월의 동반자인 것이다. 다양하게 쓰이는 다른 농기구와는 달리 곰배는 보리를 묻을 때 외에는 그 소용이 있으나마나 한 희미한 존재의 연장이다. 흔하게 굴러다니는 나무토막에 자루 한 끼워 놓았으니 처음부터 잘 생긴 것하고는 담을 쌓은 것이 곰배다. 그러나 세상 만물은 못나도 저마다 쓰임새가 있는 법. 호미가 제아무리 날렵해도 흙을 파헤치거나할 뿐 보리를 묻을 수는 없는 것이다.
곰배는 땅을 일구는 대신 일구어 놓은 땅을 다지는 데 쓰였다. 파헤쳐지고 갈아엎어진 흙의 격정의 시간을 부드럽게 다독여 주는 것이다. 그럴 때 곰배는 어머니의 손과 같다. 세상에서 상처받고 힘든 자식들의 울음을 가만히 위로해 주는 어머니와 같은 것이다. 속이 뒤집힌 밭고랑을 토닥토닥 두드려 달래고 이르는 곰배의 역할은 다른 농기구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 번도 자신을 내세운 적 없으면서 뒤에서 묵묵히 제 일을 해내는 곰배의 역할이 있었기에 우리는 배고프고 힘든 시절을 지나온 것이다.
그런 곰배도 한때는 융숭한 대접을 받을 때도 있었다. 보리밭에서 사람들의 손놀림이 바빠질 때는 자루가 반지르르하도록 윤이 났다. 집집마다 농기구를 모아 두는 헛간을 돌여다보면 식구 수보다 더 많은 곰배를 나란히 벽 쪽에다 모셔 두기도 했던 것이다. 헛간에 걸린 곰배의 수를 보고 하염없이 배가 부른 적도 있었다.
세상에는 육십억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마음을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자신이 못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어느 성직자는 말했다. 모두가 자신이 잘났다는 생각으로 산다는 것이다. 곰배라는 유년의 별명은 못생겼다는 피해 의식으로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던 것 같다. 곰배라는 말만 들어도 목에 가시처럼 걸렸던 것이 잘났다는 한 마음 때문이란 걸 이제 알 것 같다. 세월은 눈 깜빡할 사이에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요즈음 우스갯소리로 유행하는 성형 수술한 여자나 하지 않은 여자나 별 차이가 없다는 오십 대의 여자로. 이쯤에서 평생 품고 온 열등감 따윈 과감히 떨쳐 버려야 할 것 같다. 아무런 죄도 없이 내게 원망만 들어 온 곰배와도 이제 화해를 해야겠다.
증조할머니가 내게 곰배라는 별명을 유언처럼 남겨 주신 것이 단순히 못생겼기 때문만은 아닐 터이다. 내 허물 감추고 남의 허물 파헤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묘한 심리일진대, 남의 허물 덮어 주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이제 더도 덜도 말고 곰배만큼만 살아야겠다. 흙의 가슴을 가만히 덮어 주고 그 흙 속에서 푸른 보리가 자라도록 하는 곰배의 역할이야말로 너나없이 저만 잘났다고 하는 이 세태가 본받아야 할 훌륭한 가치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누가 곰배라 불러 달라고 은근히 부탁이라도 하고 싶다. 곰배의 묵묵하고 헌신적인 삶이 내 삶이었으면 하고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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