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로스트 비프스튜 / 오정자
미국에 와서 달라진 게 있다. 김치가 없으면 밥을 못 먹는 것이다. 아니, 김치를 먹지 않으면 밥을 먹은 것 같지 않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으면서부터 그야말로 ‘그대 없이는 못 살아’가 되어 버렸다.
게다가 요즘에 와서는 땅속에 묻어둔, 자연이 숨 쉬는 항아리에서 시나브로 익어가는, 싱싱한 김장김치가 먹고 싶어진다. 생각만 해도 침샘을 자극해 입 안에 침이 괸다.
나는 집에서 스파게티를 먹을 때 김치를 곁들여 먹는다.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은 미국 음식과 김치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구시렁댄다. 하지만 어쩌랴. 김치랑 먹어야 술술 잘 넘어가는데.
하루는 한국 식품을 사러 자동차로 왕복 6시간 걸리는 뉴욕에 갔었다. 식탐이 많은 남편은 그날따라 순댓국이며 칼국수, 돼지불고기, 자장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저 한정식이 먹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그날은 두 군데 식당을 오가며 제가끔 좋아하는 음식을 먹었다.
내가 즐겨 찾는 한식당은 흑미와 콩을 섞은 잡곡밥과 정갈한 밑반찬에 백김치, 배추김치, 겉절이, 풋김치가 나온다. 무엇보다 아삭아삭 씹히는 배추의 질감과 개운한 맛이 까다로운 나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내가 한결같이 그 식당을 고집하는 이유도 순전히 ‘김치’ 때문이었던 것이다.
김치전, 김치말이 찌개, 김치김밥, 김치볶음밥, 두부김치 등 김치가 들어간 음식이라면 사족을 못 쓰다 보니 언제부턴가 나는 이곳 명절인 추수감사절에 칠면조구이 대신 ‘김치 로스트 비프스튜’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이 요리는 오래전 지인에게서 어깨너머로 배웠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내 식으로 굳어졌다. 조리법은 간단하나 시간이 오래 걸린다. 중요한 점은, 잘 익은 포기김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감자와 양파는 껍질을 벗겨 반으로 썰어 놓는다. 고기는 등심이나 채끝살을 사용하는데, 덩어리 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토막 내어 소금과 후춧가루로 밑간한다. 달군 프라이팬에 버터를 두르고 고기 표면이 노릇노릇할 때까지 익혀낸다.
그런 다음 스튜용 냄비에 포기김치를 깔고, 그 위에 살짝 익힌 고기를 얹고 ‘프렌치 어니언 스톡’ 한 캔과 동량의 물을 붓는다. 간을 보고 짠듯하면 물을 좀 더 붓는다. 이곳 마켓에서는 캔으로 된 양과 육수를 파는데 여의치 않으면 고기 국물에 양파즙 원액을 섞어 사용해도 될 것 같다. 화씨 350도로 예열한 오븐에서 약 4시간 정도 익힌다. 고기가 얼추 익어 가면 큼직하게 썬 당근, 감자, 양파, 쪽마늘을 넣고 1시간가량 더 익힌다.
조리가 끝나면 포기김치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취향에 따라 고기도 크게 혹은 잘게 찢는다. 국그릇에 고기와 김치, 채소를 국물과 함께 떠 놓으면 그야말로 별식이 따로 없다. 그 맛은 담백하면서도 감칠맛이 난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일미이다. 쇠고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 대접을 먹어 치운다.
김치 로스트 비프스튜는 뭉근히 익혀야 한다. 그래야 김치의 매콤함과 버터 바른 쇠고기의 고소함, 양파 수프의 달콤함, 그 외의 다른 재료들이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찬조한다. 달고, 시고, 맵고, 쌉싸래한 음식 재료가 뒤섞여 우려낸 국물 맛, 이것이야말로 희로애락의 세월에서 녹여낸 삶의 진액 같은 것이 아닐까.
맛을 내기 휘해 저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소금에 절여지고 곰삭아 발효하기가지 온몸을 던져 담금질하는 배추의 일생, 김치로 거듭난 그 치열한 자기 극복. 이는 고통과 아픔 없이는 불가능하리라. 인간의 삶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살아가면서 그런 과정을 거치며 생의 진미를 맛보기 때문이다. 지지고 볶고 무엇보다 나는 이 요리를 하면서, 우리네 삶의 현장과도 같은 오븐 속에서 뜨거움을 참고 견질 줄 알 때 비로소 진중한 맛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자기완성의 길에 으르는 삶의 지혜를 배운다. 그것은 한소끔 끓여낸 것이 아니라, 서서히 오래 고아야 깊은 맛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익혀야 깊은 풍미를 자아내는 게 어디 그뿐인가. 사랑도 인생도, 문학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삶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빛깔만 다를 뿐 너나없이 아픔을 갖고 있다. 저마다 아프고 쑤시는 삶의 통증, 어쩌면 그것은 살아 있다는 아우성 같은 것으로 삶을 견디게 하는 원동력인지도 모른다. 아픔과 고통이 있는 삶은 그래서 소중하다. 피할 수 없는 고난과 시련 속에서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게 삶이요, 무던히 참고 견뎌내는 것 그것이 인생 아닐까.
오늘도 나는, 새콤하게 익은 배추김치를 쭉쭉 찢어 밥 위에 돌돌 말아 한입에 쏙 넣는다. 김치의 감칠맛이 혀끝에 착착 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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