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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고요한 미명 / 김진태

고요한 미명 / 김진태

 

 

 

‘나’라는 인간은 산책을 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모른다.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의 적지 않은 시간을 산책에 쓰고 있으니 말이다.

더구나 하루에도 가장 값진 시간인 새벽을 산책으로 소비해 버리면서 아깝게 여겨지지 않는 것은 수지 계산에 둔감한 소치임에 틀림없다.

아침 산책이지만 칸트와 같은 그런 시계바늘보다 정확한 것은 물론 아니다. 칸트가 지나는 것을 보고 시계를 맞추었다는 일화는 얼마간의 과장이 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런 흉내를 낼 생각도 없고 흉내낼 인간도 못 된다. 시간도 들숙날숙이지만 방향과 목적지도 그날따라 다르다.

그러면서도 이제까지의 경험에서 시간은 미명이라야 산책의 진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결론을 얻은 지 오래 되었다.

해가 뜨고 난 뒤의 산책은 산책이라기보다 일이 되고 말아 산책의 맛은 가시어지기 마련이다.

미명이라야만 고요하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알 수가 있다.

모든 소리가 없는 세상 소리라고는 소리가 태어나기 전의 시간이 바로 미명이다. 소리는 거의가 우리를 아니 나를 어지럽게 한다. 아직은 나라는 인간은 어떤 소리에도 흔들리거나 뒤뚱거리지 않을만한 굳센 몸가짐이 못 된다. 소란한 소리는 막아 버리고 들리지 않는 소리에만 열려야 할 내 귀는 사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하잘 것 없는 일, 대부분의 소리도 무턱대고 들어오게 열려 있기만 하고, 정작 귀한 소리, 소리 뒤에 들리는 소리에는 둔감한 귀다.

소란한 소리가 잠자는 시간인 고요한 동안이라야 나의 영혼이 고요히 쉴 수 있는 시간이다. 나의 영혼이 고요히 쉴 수 있는 시간만이 진정 나의 시간이며 평안한 시간이기도 하다.

 

장소는 아무래도 인가가 없는 곳이라야 한다. 도로나 골목길보다 오솔길이 좋다. 숲은 아니어도 좋다. 잡목이거나 하다못해 갈대나 잡초라도 오솔길을 감싸 주는 곳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이런 오솔길이 아니면 모처럼 맑고 밝음을 바라는 나의 눈이 어지러워지고 마음의 안정을 잃어 버리게 된다.

호수와 같이 잔잔해야만 할 나의 눈은 대수롭지 않은 것에도 물결이 일고 그 그림자에 어둠을 탄다.

이런 오솔길은 어쩔 수 없지만 혼자 걸어야 편하다. 누두와도 동행한다는 것은 오솔길에는 거북함이 따른다.

생각지도 않았던 까치가 머리 위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아침 인사를 하게 되는 날은 축복받는 격이다. 이름 모를 산새 소리로 소곤거리는 것을 듣게 되어도 분에 넘치는 대접이다. 그러나, 사람을 만나는 것은 이상하게도 반갑지 않다. 반갑지 않을 뿐만 아니라 되도록이면 안 만났으면 싶은 것이 본심이다. 한 술 더 떠서 사나운 개라도 앞장 세우고 오는 사람을 만나는 때는 길을 잘못 택한 것이 후회되는 때가 된다. 개가 나를 해칠 리는 없다는 것은 나도 잘 안다. 그러면서도 확신보다 불신이 앞 선다.

한 때의 불신으로 모처럼 마음의 평정을 즐기려는 시간을 방해 받는 것은 아무리 양보를 해도 귀한 손실에는 틀림없다.

따지고 보면 사람이 개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개에게 끌려 다니고 있다.

이런 귀중한 시간에 개에게 끌려 다니면서도 끌려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유쾌한 일이 될 수 없다.

그러는 나도 사실은 몇 해 전에는 부지런히 개에게 끌려 다닌 세월이 있었다. 한 쌍의 부돌을 아침이나 저녁에 끌고 다녔다. 세퍼트와 고오리에게 정말로 끌려 다니면서 도리어 사람들이 부러워할 것이란 도취를 즐긴 때도 있었다. 자아 도취에 빠지면 우물을 들여다 보는 격으로 사리를 바로 보지 못하게 되는 모양이다.

사람은 누구나 제 잘난 맛에 살아 갈 수밖에 없게 마련이니 말이다.

다행하게도 이런 새벽에 개에게 끌려 다니면서 개를 위하고, 겸사해서 자기의 건강을 유지해 가려는 인사는 선량한 소시민이다. 기특하다고 훈장은 못 줄지언정 미워할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을 거느리는 사람이, 자아 도취에 잘못 빠지면 그 파장이 큰 데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나만이, 내가 아니면’ 이 이제까지 인류 역사에 많은 얼룩점을 빚어내어 왔지만, 또 앞으로도 그의 위력은 찾아지지 않을 것이니 두려운 일이다.

‘아무도 안 나서는 데에만 편안과 행복이 깃든다. ’나요, 나요‘ 나서는 어중이들이 들끓는 데는 싸움과 시비가 여름 잡초마냥 번성한다’ 어느 책에서 본 기억이 되살아 난다.

아무도 안 나서는 시간이 바로 이런 미명이다. 밝아지면 잠자던 ‘나요, 나요’ 할 소리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미명이 가시기 전에 나의 산책도 끝을 내야 할 것이다.

자꾸만 밝음이 또렷해진다.

나의 발걸음도 밝아 오는 밝음에 쫓기기나 하듯 빨라질 수밖에 없다.

이런 걸음은 산책이 아닌데…….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미명은 나만을 위해 언제까지나 머물러 주지 않는다.

미명을 마중갔던 나는 어느 사이엔지 미명에 쫓기면서 발걸음을 부지런히 놀리고 있으니 세상사 언제나 어디서나 다를 수가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