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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시장 구경 / 정진권

시장 구경 / 정진권

 

 

 

 

우리 동네 미아리에는 큰 시장이 하나 있다. 걸어서 5분쯤, 왕복 10분이면 족한 거리이다. 내 아내는 거의 매일 이 시장을 다니면서 두부도 사 오고 콩나물도 사 온다.

어제는 일요일이었다. 마침 좀 볼 책이 있어서 서점엘 가겠다고 했더니 아내도 시장엘 가겠다고 따라나섰다. 그래서 우리 내외는 참 오랜만에 함께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나는 책을 사 들고 아내를 따라 시장엘 가 보았다. 시장은 풍성하기만 했다. 물건들은 그득하고 사람들은 붐비고 어느 한 구석도 부족한 데가 없었다. 아내는 우선 두부와 콩나물을 사고, 또 굴과 장아찌도 좀 샀다. 그러면서 싸우다시피 하며 20원을 깎았다.

“아니 그래 뭐가 남는다고 깎으세요, 깎길?”

장사하는 아주머니는 20원을 깎아 주면서 죽는 소릴 했다. 옆을 보니 거기서도 깎는다 못 깎는다 하고 야단들이었다. 아니, 시장 안이 온통 깎는다 못 깎는다로 들끓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다른 곳으로 발을 옮겼다. 그때 나는 아내에게 “여보 그 20원 깎자고 그렇게 아귀 다틈할 게 뭐 있소? 너무 야박하게 하지 마오” 하고 타이르듯 말했다. 그러나 아내는 미소인지 실소인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20원이 적은 줄 아세요? 세 번이면 토큰이 한 개예요. 영동도 갈 수 있어요. 버스 안 타는 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

“그러나 장사하는 사람들도 좀 남는 게 있어야 먹고 살 게 아니오? 그 어려운 사람들에게 20원 깎아서 속 편할 게 뭐 있소?”

“모르시는 말씀. 시장 한구석에 쭈구리고 앉았다고 우습게 보지 마세요. 모르긴 하지만 그들의 수입이 월급쟁이인 우리보다 훨씬 나을 걸요.”

깎는다 못 깎는다 하는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아내는 이미 면역이 된 듯, 그런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아내가 가자는 대로 따라다녔다. 아내는 이집 저집 기웃거리며 물건값을 물어 보았다.

“여보 사지도 않을 물건값은 왜 자꾸 물어 보는 거요?”

“살다 보니 버릇이 돼서 그래요. 물건값을 안 물어 보면 생활감도 느낄 수가 없으니. 나도 이런 것 저런 것 다 잊고 편하고 싶지만….”

아내는 정말 버릇이나 된 것처럼 또 아이들의 운동화값을 물어 보고는 혼자 무어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아내는 나를 데리고 순대 파는 곳으로 갔다. 뚱뚱한 아주머니가 순대와 돼지 내장을 썩썩 썰어서 팔고 있었다. 옆에서는 가마솥이 펄펄 끓는데, 시장 보러 온 부인네와 꼬마들이 둘러앉아 순대와 내장을 사 먹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한마리 휘딱 할 만큼 참으로 왕성한 식욕들이었다.

“맛있어 보이지요?”

정말 맛있어 보였다.

“먹어 보시겠어요?”

아내는 어린애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러나 부인네들 속에 끼여서 그걸 맛있다고 먹고 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좀 사다가 집에 가서 아이들이랑 먹읍시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아내는 돼지 내장과 순대를 좀 샀다. 그리고 우리는 집에 돌아와서 아이들과 맛있게 먹었다. 나는 그걸 안주로 소주 한잔을 들었다.

20원을 깎으려고 아귀다툼을 하는 사람들, 끊임없이 물건값을 물어 봐야 생활감을 느끼는 사람들, 그리고 왕성한 식욕들. 구경으로 가는 시장하고 생활로 가는 시장하고는 물론 다르겠지만, 그렇더라도 피곤하고 권태로우면 나도 좀 시장엘 가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