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모습 / 최민자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다. 한권의 책이다.’라고 발자크는 말하였다. 얼굴은 거짓말을 안 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미셸 투르니에는‘뒤쪽이 진실이다.’라고 항변한다. 등은 거짓말을 못한다는 것이다.
둘 다 맞다. 맞을 것이다. 하지만 과장된 수사(修辭)일 수도 있다. 멀어져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쓸쓸함을 더 느끼기도 하지만 뒷모습만으로 흐르는 눈물을 감지해 낼 수는 없지 않은가. 앞모습을 토로라 한다면 뒷모습은 묵언에 가깝다.
토로와 묵언, 또는 웅변과 침묵 중 어느 편이 더 진실일까에 대하여 누구도 함부로 이야기하지는 못한다. 웅변은 진실을 토로할 수 있지만 거짓을 증언할 수도 있다. 침묵 또한 미루어 짐작하는 것일 뿐, 자체로는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앞모습은 너무 확실하여 음영을 보이지 않고 뒷모습은 너무 막연하여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동차나 자전거를 그릴 때, 정면이 아닌 측면을 그린다. 사자나 기린을 그릴 때도 그렇다. 얼굴은 정면에서 보이는 대로 그리지만 동체는 측면의 모습을 그린다. 그래야 네 발을 다 그릴 수 있고 특징을 알아보기 쉬워서이다.
어떤 인물에 대한 약평을 뜻하는 프로필(profile)이라는 말은 옆모습을 일컫는 말이다. 사람도 그 특색이 잘 드러나는 것은 앞모습이나 뒷모습이 아닌 옆모습일지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서양 동전에 새겨진 인물은 앞모습보다는 옆모습이 많다. 이집트 벽화의 인물들도 얼굴은 대부분 옆모습이다. 앞모습과 뒷모습을 반반씩 품고 있으니 본질에 더 가까울 것이다.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는 여인의 실루엣, 창가에 기대어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는 남자, 작게 몸을 구부리고 모로 누워 잠든 노인 ...... 애써 꾸미지도 의식하지도 않은 사람의 옆모습이 마음을 흔들어 놓을 때가 있다. 반쪽짜리 표정이 주는 모호함이나 불확실함이 신비감과 깊이를 더하기 때문일까. 숨겨진 저편의 표정은 숨겨진 마음처럼 짐작으로 밖에는 알 수 없어서일까. 마주 앉아 바라볼 때 느끼지 못했던 분위기가 옆모습에서는 더 감동적으로, 뭉클하게 와 닿기도 한다.
별스럽게 눈여겨보지 않았던 친구의 옆자리에서 차를 마시다 혼자 감탄을 한 적이 있다. 부드러운 눈빛과 날렵한 콧날, 견고한 턱선 어디쯤에서 강인하면서도 따스한 커리어우먼의 이미지가 풍겨나고 있었다. 마주 앉아 바라볼 때에는 보이지 않던 선이다. 평소 그가 원만하고 의욕적으로 사업을 꾸려가는 이유를 짐작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턱을 치켜들고 잘난 척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무엇인가에 주눅이 들어 고개를 숙이고 사는 사람들이나 가끔 한번씩은 자신의 옆모습을 비추어보며 살라고 권하고 싶다. 정면에서 보았을 때엔 그저 그런 사람이라도 옆모습이 근사하고 그럴듯하다면 사는 일에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 정면과 이면, 의식과 무의식,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동시에 끄러안은 옆모습이야말로 그 사람의 진면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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